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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맹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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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땅 위에 절망이란 없을 것이다 무심한 흰 눈과 초록의 숲 사이에서, 소년은 자란다 이야기는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이 계속되는 겨울, 폴란드의 한 숲에서 시작된다. 전쟁 통에 두 형을 잃은 열네 살 소년 야네크는 아버지에게서 숲속에 혼자 숨어 있다가 먹을 것이 떨어지면 지하 항독투쟁을 하고 있는 빨치산들을 찾아가라는 말을 듣는다. 스탈린그라드에서는 2차세계대전 최악의 전투로 기록될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홀로 남은 야네크는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끌려간 아내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뛰어들었다가 결국 목숨을 잃은 것을 모른 채 숨어 지내다 결국 빨치산을 찾아간다. 빨치산들은 자유의 날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숲속에서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곳에서 소년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야블론스키, 씩씩하게 투쟁을 계속하는 심지 굳은 체르프, 결핵에 걸렸지만 부자인 아버지의 도움을 뿌리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냉소적인 타데크 흐무라, 붉은군대의 장군인 아들을 둔 늙은 곰 크릴렌코, 그리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유럽의 교육》이라는 책을 쓰는 도브란스키 등의 빨치산 대원들을 만나고, 독일군들과 잠자리를 함께해 군사 정보를 얻어오는 소녀 조시아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들의 에피소드들 사이로 《유럽의 교육》이라는, 도브란스키가 쓰는 동화, 우화, 소설들이 등장한다. 도브란스키는 말한다. “‘유럽의 교육’이야. 타데크 흐무라가 권한 제목이지. 틀림없이 빈정거리는 뜻에서 한 말이겠지만…… 그에게 유럽의 교육이란 폭탄, 학살, 포로 총살, 짐승처럼 구덩이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뭐 그런 거지. 하지만 나는, 나는 도전에 응하겠어. (…) 진실은 역사의 순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시간 속에 있어. 그런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모든 것이 은신처를,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 나는 내 책이 그런 피난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 (…) 저들이 우리를 짐승처럼 살게 했지만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도는 없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원해.” 그러나 타데크 흐무라의 이죽거림처럼 소년 야네크에게 학교는 전쟁이다. 그는 전쟁을 통해 세상을, 인간을, 삶을 배운다. 악마처럼 보이는 독일군도 누군가의 연인이자 가족이라는 것을, 같은 폴란드 사람이지만 누구에게는 자신의 빵이 친구의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정의와 대의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보다 누군가의 앞에서 무릎을 꿇음으로써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더 숭고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는 인간 세상이라는 것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간성이란 결국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는’ 감자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배우고, ‘어른’이 될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간난신고를 헤치고 나아가는 중에도 소년의 가슴속에서 오롯이 빛나는 말이 있다. 아버지가 거듭 말해준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 가장 어두운 곳, 작고 여린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희망과 믿음에 관한 경이로운 이야기 인간성의 종말을 목도하게 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수많은 이름 없는 병사들, 전쟁의 참상 속에 스러져간 무구한 어린 생명들…… 2차세계대전 후 유럽 지식사회는 인간 이성에 대해 철저하게 회의하게 되었고, 세계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에 항변이라도 하듯 로맹 가리는 도브란스키의 입을 빌려 말한다. “사람들은 서로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어 그 이야기를 위해 목숨을 내놓지. 그들은 그로써 신화가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유, 존엄성, 형제애, 인간으로서의 명예. 우리 또한 이 숲에서 동화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있는 거야.”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절에도, 나약한 인간성 앞에서도 ‘중요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가슴속에 희망을 품은 이들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약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이야기, 신화, 동화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불을 지핀다. 그리고 그 불길은 사람들에게 옮아가 이 세상을 조금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군 장교로서 전쟁을 직접 체험했기에 로맹 가리는 섣불리 희망을 장담하고 낙관하지 않는다. 가장 절망적인 고통조차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믿는 도브란스키처럼, 그는 고통 위에 희망을 덧칠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장면들을 무정하리만치 담담하게 바라봄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는 편을 택한다. 전쟁의 끔찍함과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비참함을 부각시키는 데 열중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이 세상은 적과 동지, 선과 악, 희망과 절망이라는 이분법으로 명쾌하게 가를 수 없는 곳임을, 삶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것임을 독자 스스로 깨닫게끔 한다. 사람의 눈에 개미들이 힘겹게 옮기는 풀잎은 하찮아 보이지만 개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위대함을, 자신들이 옮기는 그 풀잎 하나가 지닌 최고의 중요성을 믿는다. 위대한 휴머니즘의 작가 로맹 가리가 역설하고자 한 것은 그만큼의 희망이다. 얼마나 많은 꾀꼬리들이 필요할 것인지, 얼마나 많은 노래가,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노래가 더 필요할 것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 인간은 한 마리 작은 개미처럼 풀잎을 옮기고, 빛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