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 일반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쓴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년)는 스위스 바젤에서 신교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문법학교에서 고대어를 비롯한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고, 바젤대학교에서 그리스어를 공부하였다. 한때는 신학 공부를 하기도 했으나, 1839년에서 1843년까지 당시 베를린대학의 유명한 교수들 밑에서 고대사, 예술사, 현대사 등을 공부하였다. 부르크하르트는 미술과 건축에 매료되었고, 프란츠 쿠글러(Franz Kugler)에게서 예술사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배웠다. 이 과정에서 그의 관심은 이탈리아와 르네상스에 끌리게 되었다. 베를린대학의 유명한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교수 밑에서 공부하면서, 스승과 제자는 서로 상대방의 학문적 업적과 가능성을 존경하였으나 역사에 접근하는 법은 완전히 달랐다. 뒷날 부르크하르트는 베를린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랑케의 후임으로) 거절하였다.
1848년 도이칠란트의 실패한 혁명은 그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세상과의 인연을 점점 끊으면서 연구에만 몰입하였고,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그의 보수주의는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었다. 그는 자기 시대가 지나치게 피상적이라고 느꼈으며, 역사 속으로, 예술 세계로 더욱 몰입하였다. 1849년에 그가 유일하게 애정을 느꼈던 여인 마르가레테 슈텔린(Margarethe Stehlin)이 바젤의 은행가와 결혼하자 그는 결혼을 포기하였다.
그는 밥벌이를 위해서 2년 간 보수주의 일간지 <바젤신문>에서 편집일을 하기도 했다. 바젤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으나 수강생 수가 일생 동안 한 번도 50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고 전한다. 강의 내용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프랑스 혁명까지의 유럽 문명 시대 전부를 포괄하였으며, 젊은 시절의 프리드리히 니체가 이 강의를 청강하였다. 니체에게 있어서 부르크하르트와의 만남은 감격스럽기까지 한 사건이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집안의 유일한 남성으로 성장해온 니체는 가부장적 권위를 대신해줄 수 있는, 아버지뻘 되는 연장자를 찾아 방황하고 있었다. 1870년을 전후하여 쓰여진 그의 서간문에는 부르크하르트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호감이 나타나 있다.
'풍부한 정신을 가진 기인(奇人) 야콥 부르크하르트. ……어제 저녁 나는 부르크하르트의 강의를 듣고 기쁨을 느꼈다네. ……청중 가운데 오직 나만이 그의 심오한 사상의 자취를 이해할 수 있었지. 나의 생애에서 처음으로 나는 강의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네. 그리고 더욱이 그것은 내가 나이 들어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그런 강의였다네.'
니체는 발광 직전의 편지에서도 '이제 그대는--너는--우리들의 위대한,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쓰는 등 평생 동안 부르크하르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거듭 밝힌 바 있다.
부르크하르트는 1866년부터 1893년 은퇴할 때까지는 예술사 강의만을 맡으면서, 한편으로 이탈리아와 유럽의 다른 지역을 정기적으로 여행하였다. 이런 여행을 통해서 그가 유럽의 역사 유적지들과 예술 작품들을 실질적으로 알지 못했더라면 이 책과, <여행 안내서(Cice-rone)>(1855), <그리스 문화사(Griechische Kulturgeschichte)>(1898∼1902년, 유작으로 간행됨) 같은 그의 가장 성공적인 저술들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역사 연구의 임무란 '발전'이 아니라 '항상적(恒常的)인 것, 반복되는 것, 유형적인 것'의 세 가지를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데 있다고 함으로써 우리 현대 문화의 발전에 대한 이해를 위해 결정적인 작용을 남겼다. 그는 문화사 및 예술사가로서 정통의 도이치 역사학 전통에서 벗어나 돌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 그의 독특한 위치와 영향력은 그동안에도 이미 확고불변한 것이었거니와, 오늘날 문화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오히려 더욱 커지는 일면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문학 전공(문학박사). 독일 밤베르크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강사이다. 프리드리히 쉴러의 <발렌슈타인>으로 본격적인 번역 활동을 시작하였고, 1995년에는 쉴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로 제2회 한독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걸출한 작가를 발굴, 국내에 널리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필두로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폭력에 대항한 양심>·<발자크 평전>까지 일련의 츠바이크 작품을 번역함으로써 국내에 츠바이크 마니아층을 형성하였으며, 1998년에는 원고지 7천여 장에 달하는 대작,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을 번역하였다. 원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전달한다는 번역의 기본 원칙 아래, 원문의 향기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독자들에게 마치 우리글을 읽는 것처럼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번역을 추구하는 그는 힘 있는 필체로 문학성을 지닌 깊이 있는 인문서 번역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