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성이 뜬금없이 마주본 상태에서 목걸이를 걸어주려 하자 겨울은 깜짝 놀랐다.
이거 왠지 안기는 거랑 비슷하지 않나.
슬쩍 올려다보니, 태성은 뒤로 돌아가면 더 편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려줄까 하다가 겨울은 조개처럼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목덜미를 살짝 스치는 그의 손이 너무나 따뜻하고 기분 좋았기에 이 잠시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점점 그가 가까워졌다.
시선을 둘 곳이 없어 그의 목 언저리를 보고 있자니 남자의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렸다. 일순 기분이 이상해진 겨울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눈앞이 캄캄하고 숨이 가빠왔다.
그의 아찔한 머스크 향과 거친 숨소리가 온통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이대로 품에 꼭 안겨 그의 심장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이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렸지만, 아쉽게도 얄미운 잠금 고리는 간단하게 걸리고 말았다.
서운해서 울고 싶을 정도였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몰랐던 겨울은, 피식 웃으며 뒤로 물러나는 태성을 도저히 마주볼 수가 없었다.
“예쁘다. 잘 어울려.”
하얀 목덜미 위에 반짝이고 있는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성이 씩 웃으며 칭찬했지만 겨울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멍청히 서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태성은 몸을 숙여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는 겨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녀는 곧 터질 것처럼 새빨간 얼굴에 몹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쩔쩔매고 있었다.
태성은 어색한 분위기를 날리려는 듯 키득거리며 장난을 걸었다.
“콩쥐 너, 혹시 나 좋아하니? 잘됐다. 후딱 60년 전속계약 맺어 버리자.”
아아, 그런데.
그 순간 겨울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새빨갛게 익어 버렸다. 이젠 목덜미고 귓불이고 할 것 없이 말 그대로 물러 터지기 직전의 토마토였다.
‘꽥! 누가요! 노예계약은 사절입니다요!’ 하며 펄쩍 뛰면 ‘이게, 확 그냥! 덮쳐 버린다!’ 하고 맞받아치려고 기다리고 있던 태성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당황한 태성이 말을 잇지 못하자 겨울이 못을 박듯 선언했다.
“조, 좋아해요.”
태성은 3년 전 고속도로에서 3중 추돌 당했을 때 터진 에어백에 직격으로 안면 강타당한 순간보다 10배는 더 큰 충격에 잠시 비틀거렸다.
“자, 잠깐만. 뭐라고?”
“좋아한다고요. 저, 사장님, 아니 하태성 씨 좋아해요.”
겨울의 맑고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본 태성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겨울아.”
처음으로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태성의 목소리는 매우 감미로웠지만 한편으론 몹시 슬프게 들리기도 했다.
“네.”
“내가 아무래도 순진한 너한테 못할 짓을 한 것 같다. 그러지 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한테 맞선 넣었을 때,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한 상태였어. 그래. 실수였어. 인정할게. 늦었지만 보라카이까지 따라가서 계약서로 낚시질한 것도 진심으로 사과할게. 시집도 안 간 처녀한테 입주 서비스 신청한 것도 내가 다 잘못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태성이 진지하게 말하자 겨울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왜요? 내가 태성 씨 좋아하면 안 돼요? 60년 전속계약 하자면서요.”
파들파들 떨면서도 제 할 말은 확실히 다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녀는 적어도 장난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겨울이 ‘태성 씨’라고 자기 이름을 부를 때, 태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생소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몽실몽실, 따뜻한 온기가 태성의 심장에서부터 말초까지 빠르게 타고 퍼져나갔다. 아깝고, 아깝고, 너무나 아깝고 소중했다. 그래서 더 안 되는 걸 알고 있는데.
“겨울아. 네가 날 좋아해주는 건 정말 고마운데, 나…… 네 친구들 말마따나 마누라 세 번이나 갈아치운 양심 없는 놈이야. 남들이 손가락질 해. 그렇게 순진하게 살지 말라고. 내가 전에 말했었지? 너, 네 안에 있는 그 등신 같은 천사 안 죽이면 평생…….”
겨울이 태성의 말을 자르고서 사납게 대들었다.
“마누라 세 번 갈아치운 양심 없는 놈이기만 하면 다행이게요? 태성 씨는 속 좁고 뒤끝이 구만리에다 유치원생 저리가라 할 정도로 유치하기까지 하잖아요! 그래도 좋다고요! 내가 좋은 걸 어떻게 해요! 등신 같은 천사가 어쨌다고요? 그딴 거, 태성 씨가 죽이라고 하면 몇 번이고 죽일게요. 그럼 돼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씩씩거리고 있는 겨울을 한번 내려다본 태성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틀렸다.
이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누르고, 누르고 꼭꼭 누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저 순진한 계집애가 기어이 뚜껑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무슨 말을 들어도 어떤 손가락질을 받아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게 그저 행복하고 기쁘기만 했다.
“겨울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 태성 씨 좋아…….”
“좋아해.”
“네. 좋아해요.”
“아니, 내가.”
태성의 말에 겨울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네, 내가, 아니, 네가, 그, 그러니까…… 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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