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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영광

하늘에 영광

전은정 | 뮤즈 | 2018년 05월 0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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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592쪽 | 655g | 140*210*35mm
ISBN13 9791104917011
ISBN10 110491701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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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비명을 지른 것 같았다. 칼에 맞을 뻔해서? 아니다. 방금까지 어둠 속이긴 하나 지면에 있던 민영은 환한 햇빛 아래 허공에서 하염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날개가 없는 이의 당연한 숙명이긴 하나 어째서, 왜?
의문보다 추락하고 있는 생명체로서 절망과 위태로움이 그녀의 성대를 한껏 달구었다.
“아아아악!”
죽는다. 정말 죽는구나. 칼에 맞아 죽는 게 나을지, 땅에 떨어져 깨져 버리는 게 나을지. 어느 거든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아아아아아악!”
구름을 통과한 것 같다. 그리고 저 아래 산천초목이 보인다. 나무가 보이고 그 옆에는 호수가……. 호수?
풍덩!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디서 듣기로 고공에서 추락하면 물에 떨어진다 해도 살아남기 어렵다던데 이상하게도 어디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물도 제법 따뜻하고…… 발이 닿진 않는데 가라앉지도 않았다.
위기의 순간이 지났음을 인식하면서 허우적거리던 팔다리에 힘이 빠지려는 순간이었다. 바로 머리 위에서 흥미로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 뭐 하는 물건이지?”
민영이 이 세상에 발을 딛게 해준 이와의 만남이었다.

대답할 압박은 느껴지는데,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생각이 날아가고 말았다. 그나마 뒤늦게 생각난 말을 주워섬긴 게 바로 이것이었다.
“저, 저는 가민영이라고 해요……. ‘하늘에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지상이나 하늘에나 한 번도 영광스러웠던 적은 없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겨주신 이름이다. 이 거창한 이름 뜻은 알고 보면 드라마 주제가의 한 소절이라고 했다. 그 말을 하던 아버지의 표정을 생각하면 어쩌면 아예 기억도 못 하는 친엄마가 지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에 영광이라고?”
그가 피식 웃었다. ‘네까짓 게?’였다. 민영은 순간 발끈하려다 눈이 마주치며 그대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진짜 무섭다.
“좋아, 하늘에 영광. 여기 어떻게 온 거지?”
“그냥 민영이라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방금까지 골목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을 뻔했는데 눈을 뜨고 보니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어요.”
두서없긴 했으나 가장 정확한 설명이었다. 대답하고 나니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아, 정말 나 죽을 뻔했구나. 살았구나! 설마 죽어서 온 건 아니겠지? 아무리 죽어본 적은 없어도 저승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떠는 이유가 꼭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서는 아닌 듯했다.
무섭다. 저에게 질문하고 있는 이 존재가 손톱으로 꾹 눌러도 저를 죽일 수 있는 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왠지 정이 가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존재, 그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이였다.
그의 얼굴은 눈과 볼 부분만 빼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털이 덮여 있었다. 회색 사이사이 흰색이 섞인 털은 만지면 폭신할 것 같은 곰 인형 같았다. 눈은 흰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검은 망막이 가득한 둥근 형태였는데 가운데 마름모 같은 동공은 붉고 푸른빛이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뿔. 머리 양쪽 위로 산양처럼 둥글게 휘어진 유백색 뿔은 나선형 무늬가 있었는데 오른쪽 뿔 끝이 손가락 마디만큼 부러져 있어서 묘하게 더 위험하게 보였다. 그렇게 위험해 보이고 무서운데 그 순간 하필 왜 그런 말이 나온지는 모른다.
“거기 끝은 왜 부러진 거예요? 아깝게…….”
그때 그의 입술이 가늘어진 건 아마도 미소를 지은 것일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의 목숨은 그 순간 끝이었을지도.
“너, 꽤 신기한데 죽이지 말까?”
“히이익! 죽이지 마세요! 방금 죽을 뻔하다 살아났는데요!”
민영은 나중에 이 순간을 회상하면 한숨을 쉬곤 했다. 정말이지 간덩이가 탈출한 게 아니고선 그리 꼬박꼬박 대꾸할 수가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왔다 갔다 하는지도 모른 채 그가 어이없이 웃는 것에 배시시 따라 웃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당시의 자신은 꽃 대신 지푸라기 장식을 머리에 달고 있는 것에 더 길길이 날뛰었으니 한숨은 피식거리는 웃음으로 대치되곤 했다.
“네가 살던 곳은 어떤 곳이었느냐?”
“사람 많고 차도 많고 인연도 많은데 제 건 하나도 없는 곳이요.”
“어째 준비한 듯한 대답이구나.”
“아…….”
정말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고 나서야 민영은 제가 살던 세상을 너무나 간단하게 뭉뚱그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여기가 자신이 살던 곳은 절대 아니라는 것도.
‘아, 정말 내가 다른 세상에 온 거구나.’
그런데 여태 살던 세상과의 단절이 왜 이렇게 놀랍지 않은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곳에선 좋은 기억이나 애착 같은 것이 하나도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를 죽이려는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일 수도. 뭐가 됐든 지금 민영을 지배하는 감정은 낯선 세상에 떨어진 충격이나 놀라움, 망연함이 아닌 안도감과 궁금함이었다. 그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네 입으론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겠구나. 네 기억을 읽어도 되겠느냐?”
“우와……! 그런 것도 하실 줄 아세요? 어떻게요? 전 뭘 하면 돼요?”
눈을 빤짝이는 민영에게 판고는 코웃음을 쳤다.
나중에 판고가 말하길, 그럴 땐 가능 여부가 아니라 거부감과 두려움이 먼저 아니겠느냐고 했다. 기억을 읽다가 조금만 달리 마음먹으면 백치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민영은 그 부분에서 다시 한 번 감탄만 하다가 꿀밤을 먹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다음 순간 그는 민영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가 제 인생 전체를 한눈에 훤히 들여다보게 되었는데도 민영은 그에게 머리를 맡긴 채 그저 눈만 감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주 길었던 것도 같고, 찰나였던 것도 같고. 마지막엔 무언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면서 그가 손을 떼었다. 눈을 뜨면서 민영은 감탄을 내뱉었다.
“앗, 제게 상식을 주신 건가요? 우와, 와……!”
민영은 마냥 신기해하기만 했다. 이미 제가 살던 세상과의 단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존재를 부르는 말이 있었다.
“너는 공간의 미아로구나.”
“공간의…… 미아요?”
“그래, 너도 짐작하다시피 이곳은 네가 살던 세계가 아니다.”
“……네, 주신 기억을 보니 그런 것 같았어요.”
민영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이전 세상에 큰 미련이 없으니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 건 그리 서러울 게 없다. 하지만 미아라는 말이 통렬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넌 ‘꿰뚫는 자’이기도 하다.”
꿰뚫는 자란 인형을 갖춘 이의 본질을 보는 이를 말한다. 그가 준 상식 속에 있는 말이었다. 덕분에 그의 본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도.
“공간의 미아는 꿰뚫는 자가 되는 건가요?”
“아니다. 꿰뚫는 자는 이 세상에도 있었던 이다. 네가 꿰뚫는 자이기에 나와 인연이 되었는지도 모르지.”
“그러면 꿰뚫는 자는 드문가요?”
“수백 년에 한 번씩 나타나니 너희 시간으로 치면 드물다고 할 수도 있겠지.”
내리깐 그의 눈을 마주쳤다가 또 간이 졸아들었다. 생김새도 이질적이지만 그가 얼마나 오래 살아오고 또 얼마나 오래 살아갈 존재인지 그가 준 상식으로 헤아려도 아득하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습이 다르게 보여요.”
민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모습이 달라졌다. 푸른 머리와 뿔은 어디 가고 반백의 회색 머리에 평범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필요 없으니 내가 눌러놓았다. 말하자면 두 번째 금제다. 하지만 그건 언젠가 네게 필요할 때 풀어질 것이다.”
그거야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깨를 으쓱하는 민영에게 그가 갑자기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너, 말해보아라.”
“네?”
“내가 어찌 아비처럼 느껴지느냐?”
“네?”
또다시 반문하던 민영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말았다.
그랬나? 그랬다. 생각을 다 읽었으니 그것까지 알았던 모양이다. 정말 뜬금없이 왜 그를 보고 아버지를 연상한 걸까? 아버지와는 정말 한 치도 닮은 점이 없는데. 두렵고 무섭고 심지어 인간이 아닌데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아련한 향취가 너무도 그립고 애달파 저도 모르게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다.
“그게……. 그게…….”
눈물이 똑 흘렀다. 갑자기 떨어진 낯선 곳이 이세계라는 충격보다 기억을 내주면서 속마음까지 읽히고 만 것이 서러워지고 말았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아득해진 채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데 그가 짐짓 야단치듯 말했다.
“어이, 내가 싫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우느냐?”
무슨 간덩이가 이렇게 고무풍선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지 모르겠다. 그의 말 한마디에 냉큼 대꾸가 나왔다.
“네? 이, 이름도 안 불러주시면서…….”
“……고얀 녀석이로고. 그래, 민영아. 애비라 불러도 좋다.”
“정말요?”
받아들여졌다. 새 인연이 생겼다.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치 아이로 퇴행한 듯 생각이 어려지고 유치한 저가 우스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중에 정신만 퇴행한 게 아니라 실제로 모습도 퇴행했다는 걸 알게 되어 놀라긴 했지만 세상이 뒤바뀐 것도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는데 뭐. 민영은 당장 제 소원풀이부터 했다.
“아버지! 아버지!”
“계집애가 목소리 하고는. 어험, 나는 판고다. 너는 이제부터 판민영이라고 하면 된다.”
“판민영……. 판민영. 저는 이제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는 건가요?”
“그래, 하지만 네가 새 인연을 찾는다면 그날로 끝이다.”
“왜…….”
민영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기억을 읽고 나서 넣어준 상식에 이곳에도 세상을 지배하는 대부분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인간만 사는 건 아니었다. 판고처럼 인형(人形)을 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들과 수인과 신수와 영물, 요괴와 마물들이 각자 영역을 나눠 살았다. 신분제가 있고 공력과 주술을 사용해 초인을 방불케 하는 이들이 있고 시간 축도 다르다. 한 달이 28일이고 일 년이 열네 달에, 백 년에 한 번, 열다섯 번째 달도 있었다. 일반 사람을 제외한 그 외의 존재들이 백 년을 넘겨 수백 년까지 사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금제도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 대해 말하거나 그곳의 상식, 문물 같은 건 아예 입 밖으로 내거나 기록할 수 없다. 민주주의나 컴퓨터에 대해선 말할 수 없지만 비행기를 말하는 건 가능한 걸 보면 아마도 이곳 세계를 흔들 수 있는 다른 문명에 관한 금제인 것 같았다. 많은 것이 불편하여 중세 시대를 연상케 했지만 과학을 능가하는 주술의 효율에 감탄하는 곳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모순이 느껴졌다.
“음, 여기서 아버지와 오래오래 살래요!”
“흥, 인연이라는 거 안 만들 생각은 없구나?”
“헤헤헤.”
‘오래오래’라지만 영원히는 아니다. 그 말을 비꼬는 판고를 민영은 눈물 꼬리를 단 채 웃으며 덥석 손을 잡았다.
“아버지?”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공짜는 아니다. 우선 청소하고 밥부터 지어라.”
“네, 아버지!”
민영이 떨어진 호수 옆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어째 딸이 아니라 식모로 취업한 듯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여기가 내 자리다. 내 집, 내 가족, 내가 살아갈 곳. 민영은 이 세상의 첫 번째 보금자리를 향해 씩씩하게 뛰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보금자리가 될 그곳에서 판고가 말한 인연을 만나기까지 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1.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
풍덩!
무언가 호수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영이 있는 부엌까지 들리려면 실제론 굉장히 큰 소리가 난 것이었으리라. 민영이 달려 나가자 호수 위에선 파문이 일고 있었다. 그저 파문만은 아니었다. 호수 중간에 떨어진 존재로부터 피가 흘러나오고 있기도 했다. 호수에 떨어진 건 작은 동산만 했다. 그 커다란 몸체가 호수 속으로 가라앉으며 떨어져 나온 작은 존재를 발견한 순간 민영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사람이잖아!”
그 사람도 호수로 가라앉으려 했다. 매일 그녀가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호수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더 큰 존재가 더 큰 문제긴 하겠지만 제 능력 밖은 아예 논외였다. 지금은 하필 판고가 집에 없어서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 제가 수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올린 것은 허우적거리며 그를 끌어낸 다음이었다.
“맙소사!”
뭍으로 끌어올린 그는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같이 처참한 모습이었다. 가슴 언저리가 무언가에 뜯겨 있었고 허벅지와 팔다리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무엇보다 얼굴의 반이 험하게 긁혀 있었다. 옅은 숨을 쉬기에 시체가 아니란 건 알았지만 가슴에서 계속 피가 새어 나와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안 돼, 죽지 마요!”
이 남자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이 남자를 살리면 제 것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마침 그녀는 지혈하는 약초를 잘 알고 있었다.
외모는 한 끼에 소 한 마리도 찜 쪄 먹을 것처럼 생겼지만 의외로 판고는 육식은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식성을 맞추기 위해 민영은 집 주변을 샅샅이 뒤져 재료를 조달해야 했다. 입맛 까다로운 판고의 식성을 맞추느라 온갖 종류의 나물을 덖고 찌고 말리고 삶아온 민영은 풀에 관해 거의 도사가 되었다. 집 주변에 한해서라지만 그녀가 모르는 풀이 없을 정도라 적어도 남자를 이대로 보내진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반드시 살리고 싶었다.
급히 피가 흐르는 곳만 동여매고 약함을 뒤지자 지혈과 상처에 듣는 약초들이 후두두 쏟아졌다. 쏟아진 약을 다시 정리할 경황 같은 건 없었다. 필요한 것만 찾아 뛰어갈 때까지 남자가 살아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남자는 민영이 치료를 마칠 때까지 살아 있었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판고는 그를 보자마자 냉정하게 말했다.
“버려라!”
“아버지!”
“네가 버리기 어려우면 내가 버리리?”
“제발, 아버지. 아직 살아 있어요. 살리고 싶어요. 이 사람 버리면 제가 나갈 거예요!”
판고는 거역할 수 없는 이였지만 가끔 민영의 풍선 간은 외출도 하곤 했다. 식모가 나가면 누가 아쉬운지 모르느냐는 식으로 대들고 나서야 헉했다. 금방이라도 불호령을 맞을까, 움츠린 그녀에게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또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순 없다!”
“제가 다 할게요. 그냥 살릴 수 있게만 해주세요!”
그땐 너무 경황이 없어 ‘또’라는 말의 연유를 물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났을 때는 물을 상대가 없어진 후였지만.
“이놈을 살려내면 이놈 목숨은 네 것이다. 이놈과 연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나와의 인연은 이렇게 끝난다.”
첫 번째 말은 어쩌면 저가 어렴풋이 한 생각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버지를 잃게 생겼다. 민영은 양자택일을 하라는 판고의 말에 겁이 덜컥 났다. ‘오래오래’라는 말은 겨우 삼 년을 뜻함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신을 잃고 제 손에 생이 좌우되는 그를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네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그를 더욱 살리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이 사람, 살릴래요. 살리고 싶어요. 하지만 아버지, 당장 떠나지는 마세요. 이 사람 깨어날 때까지만 곁에 같이 있어주세요.”
민영의 마지막 애원에 판고는 웃었던 것 같다. 제가 사는 곳이 누구의 집인데 인연을 끊는다면 그가 이곳을 떠날 거라는 민영의 확신에 웃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판고는 그녀의 마지막 바람을 저버리진 않았다.
정말 판고는 그를 살리는 데 터럭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와 함께 떨어진 거대한 괴생명체는 감쪽같이 없앴지만, 민영이 조잡한 들것을 만들어 그를 싣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옮기는데도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를 간신히 방에 옮기고 나서도 문제는 있었다. 임시방편으로 치료한 상처를 다시 제대로 살피려면 옷을 벗겨야 했다. 사심 한 푼, 수줍음 구할 구 푼을 이겨내고 남자의 옷을 벗겨내자 그때까지 팔짱 끼고 지켜만 보던 판고가 냉큼 그의 옷만 챙겨가 버렸다. 돌아온 그에게 왜 옷을 가져갔느냐고 묻자 판고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태워 버렸다.”
그때 민영은 판고가 그를 ‘버리게’ 두었다면 그도 저 옷처럼 그렇게 ‘태워 버렸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으슬으슬 떨리는 어깨를 감싸며 민영이 몸을 부르르 떨자 판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 살려나 보다. 깨어났다.”
“어? 여보세요, 이봐요, 정신 들어요?”
“으으…….”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신음이었지만 반가웠다. 그리고 판고가 산다고 말했으니 살 것이다. 그러나 그 반가움은 판고가 하는 말에 단숨에 희색되고 말았다.
“놈이 깨어났으니 난 간다.”
“아버지!”
벌써 방 밖으로 발을 내디딘 판고의 다리를 붙잡고 민영은 애타게 물었다.
“아버지, 다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웬만하면 너 죽기 전엔 한 번 보마.”
그 말을 끝으로 판고는 방문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판고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지만, 민영은 마당에 달려가 외쳤다.
“아버지, 감사해요, 감사해요, 아버지! 보고 싶을 거예요, 아버지, 아버지!”
처음 이 낯선 곳에서 만나고 그녀를 받아들여 준 소중한 인연이 그렇게 떠나 버렸다. 민영에게 남겨진 건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처투성이 남자 하나, 그의 신음이 그녀를 슬픔에 잠기지 못하도록 불렀다.
“들어가요!”
아버지가 떠나는 날, 민영의 남자가 깨어났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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