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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정가제 Free EPUB
나는 당신의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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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무엇입니까

[ EPUB ]
가가 | 가하 | 2011년 12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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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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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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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03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2.2만자, 약 7.2만 단어, A4 약 139쪽?
ISBN13 978896647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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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가가
재미있는 글은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다 여기지만 어떤 소설이건 사랑 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해 로맨스에 도전, 글쓴이와 읽는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소설을 써 내는 것이 현재의 목표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교와 처음으로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하루에 한두 번 정도 유주와 짧은 인사를 나눌 뿐이었고, 그녀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과 산책으로 보냈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선선해 그녀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졌다.
도연의 숙모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유주의 차는 수리를 마쳐 금방이라도 되찾아올 준비가 되었다고 했지만, 차를 당장 쓸 일도 없어 그대로 카센터에 두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이교와 같이 가서 차를 몰고 오면 될 일이었다.
그래도 전과 달라진 것이 한 가지는 있었다. 유주를 대하는 이교의 태도에는 신뢰감이 더해졌으며, 이따금 그녀가 일에 열중해 집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서재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는 눈감아주었다. 밤늦게는 거실에 나오지 말라던 금지령도 해제되어 그녀는 집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괜찮다고 했음에도 뒤뜰 쪽으로는 당분간 가고 싶지 않았고, 2층 발코니도 다시는 접근하고 싶지 않은 장소로 남았다. 그때 일에 관해 생각할 때마다 그녀는 이교와 저택에 관한 소문을 연상하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아울러 그녀는 자기의 상상력에도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이야기들 중에는 ‘수수께끼의 대저택’에 얽힌 것도 있었다. 친절하지만 어딘가 수상쩍은 집주인, 어수룩하고 순진한 손님, 밤마다 들리는 비명이나 울음소리……. 그 소음의 주인공은 언제나 여성이었고, 그 정체는 학대당하는 아내나 딸, 심지어는 죽은 사람의 망령일 때도 있었다. 소문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한번 들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몰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주는 며칠간을 그렇게 불완전한 평화 속에서 보냈다. 그러한 상태가 오래가지 않으리란 것을 그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 평화를 깨뜨리는 쪽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되리라는 것도.

발단은 사소한 일이었다.
서재의 큰 책상 아래에는 상자가 열두어 개쯤 쌓여 있었다. 구두상자 정도 되는 크기로, 뚜껑은 굳게 닫혀 있어 유주는 사진자료나 그 비슷한 것이겠거니 하고 처음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아 있다가, 상자들이 발에 차이는 것을 느꼈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그것들을 쓰러뜨릴까 봐 불안해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원고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것도 그녀가 예민해진 이유였을 것이다.
유주는 책상 밑을 들여다본 다음, 상자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마침 서재에는 책장과 벽 사이에 비는 틈이 있었다. 서재 주인은 그 틈에 선반을 달아 필기구니 문진이니 하는 것을 올려두었는데, 선반 아래의 빈 공간이 상자들을 쌓아두기에 딱 알맞아 보였다.
그녀는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상자들은 크지도 무겁지도 않았으므로 그 일은 10분 만에 끝났다. 상자를 들어내고 나서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아, 그녀는 이교가 서재 정리를 정말로 깔끔히 한다고만 생각했다.
이교는 그날따라 일찍 귀가했다. 서재 문밖을 지나는 발소리가 들려왔을 때가 저녁 여섯 시였다. 슬슬 일을 마무리하자 싶어 유주는 파일을 저장하고 그에게 줄 USB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그녀는 노트북과 함께 서재를 떠났다.
반시간 뒤, 저녁 준비를 하러 식당에 들어간 그녀를 그가 불렀다.
“유주 씨가 상자를 건드렸나요?”
그녀는 냉장고 문을 닫고 그를 마주보았다. 식당 입구에 선 그는 눈에 띄게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건드린 게 아니라, 한쪽으로 치워놓은 거예요.”
“왜 그랬습니까?”
추궁하는 듯한 그 어조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변명조로 대꾸했다.
“만나면 제가 그랬다고 말할 생각이었어요. 책상 아래로 다리를 놓기가 불편해서요. ……만지면 안 되는 거였나요?”
“개인적인 물건입니다. 불편하면 나한테 먼저 말했어야죠.”그녀 딴에는 그에게 그렇게 사소한 일까지 부탁하기가 미안해 직접 상자를 옮겼던 것인데, 이런 말을 듣자 자연히 화가 치밀었다. 울컥한 그녀는 그의 말을 따라 했다.
“그럼 애초에 개인적인 물건을 거기 두지 말았어야죠.”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유주 씨는 타인의 사적인 영역을 존중하는 줄 알았는데요.”
“상자를 열어보지는 않았어요. 물건 위치를 바꾼 정도로 남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말을 들어야 되다니, 이쪽이야말로 황당하네요. 제가 만약 실수로 그걸 건드렸어도 똑같은 얘길 하셨을까요?”
“실수는 괜찮다고 한다면 실수한 거라고 둘러댈 생각이었나요?”
그녀는 입을 꼭 다문 채 그를 그대로 지나쳐 자기 방으로 갔다. 이교는 그런 그녀를 막지 않았다. 심지어는 뒤통수에 내리꽂히는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비난을 당한 것보다 무시를 당한 게 더 억울했다. 어차피 나는 말 잘 듣는 고용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거지.
그의 친절과 예의바른 태도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결국 남이교는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남자에 불과했다. 한순간이나마 그와 자신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었다고 믿은 그녀가 어리석었다.
유주는 문을 쾅 닫은 다음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잠갔다. 얼마 안 가 그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던 것이 생각났다. 이번에도 그가 그래주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쪽에서 먼저 사과를 하지는 않으리라. 그가 그렇게 나오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남의 물건을 멋대로 옮긴 데 대해 제대로 사과를 했을 터였다.
문밖에서도, 창밖에서도 사람의 기척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충동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집주인과 언쟁 좀 했다고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이쪽 처지가 더 불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그와 딱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밖으로 나가면 되지.’
그녀는 스니커즈를 신고, 셔츠 위에 카디건을 걸쳤다. 진을 더 편한 바지로 갈아입을까 했지만 어차피 멀리 갈 건 아니니 괜찮다. 만약 그가 사과를 하러 온다면 빈 방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라지.
유주는 창틀 위로 기어 올라갔다.

처음에 그녀는 자기가 유일하게 아는 길로 가려고 했다. 저택이 있는 언덕을 죽 내려가 호텔 길로 접어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만에 하나 호텔 손님이나 도연의 친척아주머니 같은 사람들 눈에 띈다면 저택을 나와 홀로 돌아다니는 유주 자신에 대한 소문이 돌 것이다. 그로 인해 이교에게 누를 끼치게 된다면, 그리하여 또 싫은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끝장이다.
그래서 유주는 저택 뒤로 올라갔다. 뒤뜰이 있는 담장 근처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이 기회에 집주인의 신경을 거스를 짓만 골라서 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였다.
날짜는 아직 9월 중순이지만 이 근방은 정말로 해가 빨리 떨어진다. 마음속 소심한 부분이 경고를 보냈지만 그녀는 이를 모른 체하고 저택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녀의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도 그 방향에 바다가 있을 터였다.
‘이게 다 바다가 보이는 별장을 포기한 대가지.’
중얼거리며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그놈의 태풍만 아니었어도, 호텔에서 동반자살을 꾀했다는 한심한 작자들만 아니었어도 그녀는 지금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을 후회해봐야 소용없지만, 이런 기분으로는 차라리 후회를 하는 편이 낫다. 아까 이교에게서 들은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지금은.
휴대전화와 손목시계를 전부 두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 저택에 온 날 차로 올라온 길을 계속 따라가다가, 북서쪽이라고 여겨지는 샛길에서 방향을 틀었다. 바다라고는 해도 백사장이 환상적으로 펼쳐진 해변이 아니라 바위투성이 절벽일 것이다. 하지만 달빛 아래에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가라앉지 않을까.
몇 분, 혹은 몇 십 분쯤 걷자 다리가 무거워졌다. 그동안 계단과 안뜰만을 오간 결과다. 유주는 저택 주인에 대한 원망을 저택에 대고 불태웠다. 그래도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이 있어, 그녀는 머지않아 울타리가 빙 둘러쳐진 수풀과 마주쳤다. 머릿속에 근처 지도가 흐릿하게나마 펼쳐졌다. 이곳은 수 년 내에 대형 숙박시설로 개조될 예정이라는 숲이었다. 여기를 바로 가로지르면 바다가 나온다는 것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맞게 온 것이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까 말까 한 샛길은 울타리를 빙 돌아 나 있었으나, 그녀는 울타리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여기도 산림욕장으로 이용되었다고 들었다. 완전한 야생지대가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한참 뒤에도 그녀는 여전히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당혹감을 억눌렀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을 안심시켰다. 불빛도 거의 없는 곳에서 계속 걷다 보니 시간이 오래 지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리라. 그 증거로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은 아직 엷은 보랏빛이 아닌가. 여덟 시, 아홉 시가 넘었다면 하늘 빛깔은 저것보다 탁하고 진할 터였다. 게다가 그녀는 숲에 들어와 아직 한 번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계속 한 곳을 향해 걷다 보면 언젠가는 어디에라도 닿기 마련이었다.
한낮이라면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며 걸었을 터였다. 암벽 등반처럼 격한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도 트레킹에는 제법 자신이 있는 유주였다. 글이 막혔을 때에는 몸을 움직이며 머릿속 잡념을 비워내고는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방이 나무뿐인 밤의 숲에서 그녀는 감히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더 크게 느껴지고, 그래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설상가상으로 카디건의 성긴 올 틈으로 싸늘한 기운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리고 고집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는 바다를 보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이 길이 어디서든 끝나기만 한다면.
‘내일이 되기 전에 여기를 나갈 수나 있을까?’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다. 집을 나온 것 자체는 잘한 일이었지만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버린 건 현명한 선택 같지는 않았다. 차라리 호텔 길로 내려가 아랫마을로 가는 차라도 얻어 탈 걸 그랬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그녀는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에서만 살아 버릇 한 사람은, 불빛이 없는 야산의 암흑이나 냉기를 섣불리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공포는 유령이나 어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것이었다. 만일 여기서 조난을 당한다면? 밤이 깊어질수록 기온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그녀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할 시기도 이미 지나버렸다. 유주는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든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기력이 더 쇠하면 걷는 것조차 힘들어질 터였다. 더구나 그녀는 아직 저녁식사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체력을 비축해두었다가 날이 밝으면 길을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최소한 달이 뜰 때까지라도 기다려보자.
한편으로 유주는 자신의 무모함을 믿을 수 없었다. 누군가와 그런 식으로 말다툼을 한 것도 엄청 오랜만이었다. 여태까지 그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례함이었다. 마전우는 글에 관한 의견충돌이 생기면 그녀의 감정만은 상하게 하지 않으려 애썼고, 친구 도연과는 10년도 더 넘게 알아온 사이라 새삼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다. 가족 간의 사소한 다툼에서도 유주는 대개 양보하거나 체념하는 쪽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기 쪽에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테니까. 언짢은 소리를 몇 마디 들었다고 그렇게 화를 낸 것은 확실히 평소의 손유주답지 않은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 반발심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잘못했지만, 그 사람이 먼저 잘못했어.’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어린애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분한 마음보다 서운한 마음이 앞서는 걸까?
지칠 대로 지친 유주는 그나마 제일 안전해 보이는 커다란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축축한 흙을 다 털어냈는데도 바닥에 툭 불거진 나무뿌리는 차갑기만 했다. 다리가 아파도 오래 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몸은 이미 녹초가 되었는데, 머릿속에서는 잡생각이 끊이질 않아 그녀는 더욱 피곤했다.
저택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이교의 얼굴, 그에게서 들은 말, 자신이 아직도 그 외딴 집에 머물려 하는 이유 등이 두서없이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아까 있었던 언쟁도 마치 오래 전 일인 것처럼 여겨졌다. 피로와 한기 때문에 의식이 흐려진 탓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굵직한 나무줄기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았다. 잠깐만 자고 일어나야지. 학부생 시절에는 꽃샘바람이 쌩쌩 부는 초봄에도 맨몸으로 벤치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었다. 이곳은 대학 캠퍼스가 아니고, 자신은 더 이상 스무 살짜리 철부지가 아니라 서른 살짜리 어른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유주 씨.”
‘네.’
그녀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졸려 죽겠는데, 누가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거야. 귀찮아진 그녀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웅크렸다. 목소리는 먼 곳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유주 씨, 어디 있어요?”
그 부름이 그렇게 다급하게 들리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그대로 잠들어버렸을 것이다.
유주는 억지로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수풀 사이로 번쩍이는 불빛이 보였다. 빛이 근처까지 왔을 때에야 그녀는 그것이 손전등 불빛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군가 전등을 비추며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마주 소리쳐서 이쪽의 위치를 알리고 싶었지만, 소리를 치는 건 고사하고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 하지만 평소에 비하면 훨씬 거칠게 들리는 음성이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이윽고 몇 미터 앞에서 사람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불빛이 얼굴을 비추는 바람에 유주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교였다. 누군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것, 그게 다름 아닌 이교라는 것을 알자 거짓말처럼 기운이 났다. 이를 들키지 않으려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빛 너머에서 그가 말을 걸었다. 공교롭게도, 그 불빛 때문에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하루 안으로는 그를 다시 마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할 말을 준비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유주의 침묵을 오해한 이교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는 몸을 주춤주춤 움직여 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팔목을 꽉 붙드는 남자의 손길이 그녀를 막았다. 아무 스스럼없는 손길.
혹시 내 기분을 눈치 챈 건 아닐까……? 살그머니 시선을 들자 염려가 가득한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 깊은 눈에, 차라리 질책이나 비난이 어려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
“괜찮아요?”
그가 다시 속삭였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을 하는 입술이 이렇게 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자를 일부러 건드린 게 아니에요.”
“알고 있어요.”
그가 말하면서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녀는 거기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의 힘은 의외로 강인했다.
“열어보지도 않았어요.”
“그래요.”
그가 달래듯 말했다. 그녀는 고집을 부렸다.
“이교 씨 사생활 같은 거 전혀 관심 없다고요.”
그제야 이교는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진지한 얼굴에는 거짓이나 아첨의 빛이라곤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미안해요. 유주 씨 잘못이 아니었어요. 나도 알아요.”
저런 표정, 저런 목소리로 하는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제야 그녀는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추워서 계속 움츠러드는 그녀의 어깨에 그가 입고 있던 재킷을 걸쳐주었다. 그 무게에 일순 몸이 휘청거렸다. 어쩌면 옷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잠시나마 어깨에 얹혔던 그의 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걸을 수 있겠어요?”
“네.”
“차를 가져왔으니 조금만 가면 돼요.”
이교의 손은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힘이 있었다. 그녀는 제 손을 빼내려고도, 그걸 마주 붙잡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손에 이끌려갔다. 그녀의 걸음이 느려질 때마다 그는 멈춰 서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요?”
“절대로 오면 안 되는 곳이니까요.”
그의 대답은 수수께끼 같았다. 피곤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에도 그 의미를 캐물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주는 화제를 돌렸다. 실은 자기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까는 왜 그렇게 화 내셨어요?”
그가 똑바로 앞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대답을 듣지 못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녀의 손을 쥐고 있는 남자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 상자는 내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그녀는 ‘그 여자의 물건인가요?’라는 물음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 화제는 입에 올리지 않기로 서로 약속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여자’가 이교와 자신 사이에 끼어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유주는 그의 얼굴만 곁눈질했다. 어둠 속을 향한 남자의 얼굴은 그 어둠보다 짙은 그림자로 물들어 있었다.
“그 상자는 아내 것이에요.”
유주는 숨을 들이쉬었다.
“결혼하셨나요……?”
그는 여전히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절대로 와서는 안 되는 사람은 유주가 아니라 이교 쪽인 듯했다. 순간 그녀는 그의 음울한 눈빛이 뜻하는 바를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결혼했었죠. 예전에. 아내는 5년 전에 사고로 죽었습니다.”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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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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