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서는… 야릇한 냄새가 났다. 뭐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냄새, 어디선가 꼭 맡아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냄새, 하지만 정확히 어떤 냄새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냄새, 뭔가 슬픔과 고통, 외로움을 동반한 냄새……. 그것이 정말 냄새인지 아니면 느낌일 뿐인지 자신 있게 단언하기 어려운, 무슨 냄새 같은 것. 위기의 냄새, 불온한 냄새, 위험한 냄새, 자포(自暴)의 냄새…… 그런 것. --- p.14
두 당사자가 각기 자신의 생각, 자신의 풍속, 자신의 세계에만 파묻혀 자기의 눈으로 저쪽 당사자를 알아보려 한 거야. 온전히 보일 리가 없지. 이해될 리가 없어. 그러니 괴물로 보일 밖에. 그러니 경멸하게 되지. 두려워하게 되거나. 콜럼버스가, 그리고 유럽 이민들이 인디언을 두려워하고 경멸했듯이. 인간에게서 인간을 보지 못하고 괴물만을 본 거야. 그러니까 그들은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거야. 그 순간 괴물이 되어버린 거라고 할 수 없을까. 서로에게 괴물이요,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그러니까 서로 죽이고 죽은 거지. 그렇게 죽임으로써 더 큰 괴물, 더 잔인한 괴물이 되어버렸어. 괴물이 괴물로써 완성된 거지. 서로가 더 큰, 더 무자비한 괴물이 되어버린 거야. --- pp.104-105
그는 다시 평온해질 것이다. 평온하고…… 외로워질 것이다. 거울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추궁했다. 다만 평온하고 외로워질 뿐인가? 아니었다. 그는 빼앗기는 것이다. 저 괴물에게, 저 괴물의 마술에, 진이를, 빼앗기는 것. 그의 저항을 비웃으며, 수천만 개의 거대한 황금 톱니바퀴를 굴리며, 그를 짓밟고, 진이를 짓밟고, 그들의 사랑을 짓밟고, 괴물은 코카콜라 송이라도 신나게 불러 젖히며 치달려갈 것이다. --- p.208
준성은 그날 여자들의 값비싼 명품 속옷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서진의 속옷은 그녀의 살결과 참으로 흡사했다. 흡사했으나 그녀의 살이 지닌 온기와 부드러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 속옷을 만들어 파는 장사꾼들은 바로 그것, 젊은 여자의 매혹적인 살결, 늙지 않는 피부에 가까운 모조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한히 애쓰고 있었고, 그런 살결을 지니지 못한 여자들, 혹은 나이가 들어 그런 살결을 잃은 여자들은 값을 따지지 않고 그 모방된 살결을 사들였다. 장사꾼들은 그 아름다운 살결에 주둥이를 박고 모방된 살, 모방된 매혹, 가짜를 만들어내면서 이익을 빨아들이는 셈이었다.
준성은 말했다. 서진에게는 이런 것 필요치 않아. 이보다 훨씬 매혹적인 것을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는 깔깔거렸다. 그가 다시 말했다. 이건 복제품에 불과해. 불량 복제품. 그녀는 값비싼 복제품, 하고 말했다. 값이 얼마건 불량 복제품이야.
--- p.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