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떨면서 울음을 짜냈다. 어머니가 알까봐 울음소리를 꾹꾹 누르면서 온몸 구석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던 눈물의 고삐를 풀어버렸다. 평생 이렇게 많은 눈물을 세상으로 내보낸 적이 없었다. (……) 약간 현기증이 났으나 몸은 가벼웠다. 나는 처음으로 눈물이 얼마나 무거운지, 때로는 몸보다 눈물이 무겁다는 사실을 알았다. --- p.47
땀이 턱을 타고 아래로 뚝뚝뚝 떨어졌다. 영락없이 눈물을 닮았다. 그러고 보니 몸속으로 흐르는 것들은 다 눈물을 닮았다. 피, 오줌, 땀, 물…… 심지어 고름까지도. --- p.57
“마음으로 봐라. 눈보다는 손이 더 마음에 가까워. 눈이란 그런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쉽게 볼 수는 있어도 마음하고는 멀다. 그러니까 눈을 너무 믿지 마라.” --- pp.59-60
나는 나중에 개로 태어날 거다. 바람처럼 달려다니는 들개로…… --- p.65
이 세상은 넓지만 도망칠 곳은 그리 많지 않거든. --- p.90
이건 네가 풀어야 한다고, 힘들고 도망치고 싶어도 이겨내야 한다고, 그건 아무도, 부모도 해줄 수 없다고. 세상에 생겨난 죄로, 세상에 생겨난 모든 풀과 나무들이 그렇듯이 너도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게 있다고. 이번 일로 인해서 너는 더 당당해지고, 당당해지는 것은 더욱 너다운 모습을 찾는 거라고. --- pp.92-93
나는 산다는 것이 먹고 움직이고 배우는 게 아니라 웅크리고 두려움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벌써 알아버렸다. --- pp.116-117
촛불시위니 수업거부니 하는 것도 다 먼 나라 이야기다. 이곳 분위기는 그야말로 침통함, 그 자체다. 그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안개가 농촌을 뒤덮고 있다. 뭔가 반항이라도 하면 싹 쓸어버리겠다고 무시무시한 서슬이 도사린 안개. 들에서 돌아오는 농민들의 뒷모습에서는, 얻은 것보다는 잃어버린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쓸쓸함이 흘러내리고 있다. 한숨가락에 맞춰 힘겹게 담배타령을 하는 그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줄을 놓아버리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뿐이다. 농민의 자식들도 대도시 학생들이 주도하는 촛불시위니 뭐니 하는 인터넷 동영상을 부럽게 바라다볼 뿐. 왜, 멍청하게 가만히 있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촛불시위조차도 사치로 보인다면 뭐라고 할까.
성인식 과학고등학교에 다니는 나(시우)는 어버이날을 맞아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다. 얼마 전 맹장수술을 받아 몸이 허해졌다는 이유로, 집에서 길러온 개 칠손이를 잡으려하는 어머니의 모정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한 생명을 제 손으로 죽이고, 먹어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한편, 나의 절친한 친구인 진만은 여자친구 새봄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미래를 설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어른스러운 진만이를 부러워하며 그와 “통째로 바뀌어버렸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마침내 칼을 들고 칠손이 앞에 선다.
문자 메시지 발신인 중학생 슬기는 오늘부터 갑자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한다. 늘 함께였던 맑음새, 윤지, 푸른이, 다해, 우인이, 예지는 마치 짠 것처럼 일방적인 문자 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한다. 슬기는 그제야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지난번 무리에서 내쳤던 친구 정미를 떠올린다. 가해자였던 자신이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되자 슬기는 뒤늦은 죄책감을 느낀다. 정미의 집에 연락을 해보지만 정미는 여전히 그때의 상처를 안은 채 지내고 있다. 슬기는 결코 싸워 이길 수 없는 괴물 같은 ‘왕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전학을 결심하는데…….
암탉 나(예분)는 가족들과 함께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왔다. 부모님과 함께 암탉과 오리들을 키우면서 지난 학교에서의 아픈 추억을 치유해나가고 있다. 친구관계를 어려워하는 나에게 있어 동물들은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전해지는 진정한 친구다. 하지만 우아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동네 주민들이 위생과 소음 문제로 항의를 하기 시작한다. 나와 가족들은 닭과 오리를 지키고 싶지만 ‘법대로’ 운운하는 박회장 앞에서 무력해진다.
욕짱 할머니와 얼짱 손녀 ‘욕짱’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얼짱’ 여학생 필분이는 요즈음 조류독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할머니가 자신보다 더 어여삐 여기는 듯한 ‘때까우’, 거위들 때문이다. 거위들을 지키려는 할머니와 살처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네 사람들 -학교 선생님부터 이장, 교회 목사, 경찰들까지-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간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필분이는 다른 누구보다도 할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산목숨을 생매장시킬 수 없다”며 홀로 버티던 할머니는 결국 거위들을 데리고 산 쪽으로 뛰쳐나가버린다.
먼 나라 이야기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고민 중인 모범생 오연이는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말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삶의 낙이며, 그 삶을 이루게 해주는 소들도 함께. 최근 정부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개방을 선언한 후 전국은 연일 촛불시위로 떠들썩하다. 소 값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인근 축산농민이 자살을 하는 등, 오연이는 광우병이란 단어를 현실로 체감하고 있다. “촛불시위마저 사치로 보인다”는 오연이에게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늘 문자메시지로 대화를 나누던 어머니가 연락이 되지 않는 어느 날, 아버지는 검은 비닐봉지 속에 수상한 농약병을 담아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