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쯤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수없이 자고 깨었기 때문에 며칠이 흘러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락방 안은 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인기척이라고는 나지 않았다. 고요함 속에서 누군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마다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누군가가 무거운 부대 자루 같은 것을 질질 끌고 있었다. 둔탁한 것 위에 또 다른 둔탁한 무언가가 포개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쉭쉭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 대고 물었다. “누, 누구세요?” --- p.50
엄마와 이모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경찰은 모든 시신들에서 저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모들답지 않았다. 이모들은 공장을 드나드는 거친 사내들을 상대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상대가 누구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올려다보았다. 죽음이 코앞에 있었더라도 이모들이라면 대들고 보았을 것이다. 엄마 성깔이라면 죽을 때 죽더라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이모들은 그날, 그곳을 자신들이 죽을 시간, 장소라고 믿었던 것 같다. 엄마는 죽으면서도 내게 안녕,이라는 짧은 인사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 pp.120~121
나는 그날 그 아수라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나는 눈뜬장님이었지만 대신 두 귀로 피부로 냄새로 내 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을 다 보았다. 나는 죽음의 아우라를 보았다. 죽음이 커다란 외투처럼 이모들 몸에 드리우는 것을 보았다. 이모들의 코와 입으로 가느다랗게 생명이 빠져나오는 것도 보았다. 우리의 몸에 깃들어 우리를 움직였던 생명은 누군가 한 모금 깊이 빨고 천천히 뱉어내는 담배 연기처럼 가느다랬다. --- p.153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 누군가를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이 상실이나 금기를 뜻한다면 신신양회집 아이들에게 아버지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였다. 모든 단어들이 관계 속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어머니’, ‘어머니’라는 단어는 ‘아버지’가 있어 힘을 얻게 되지만, 우리들에게 엄마, 어머니란 단어는 독립적인 단어였다. 이모들은 자신들이 만나고 사랑했던 남자들, 결국 신신양회집 아이들 중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남자들에 대해 언제나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다. 그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아버지와는 무관한 다른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모들에게 남자들이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거였다. 이모들 또한 바람과도 같아서 그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았다. --- p.164
신신양회 사건은 스물세 명의 신도를 교살한 ‘삼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마무리가 된 사건이었다. 온갖 언론에서 호들갑스럽게 사건을 보도했지만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사망한 이상 진실을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건이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도 그 이유였다. 죽은 자들은 있는데 그들이 왜 죽었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억측과 추측도 잠시뿐이었다. 메아리가 없는 외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 누구도 사교도들의 집단 난동이라는 경찰의 발표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관광 상품을 만드는 공예 공장을 운영하며, 한 시골 마을에는 시멘트 공장을 세워 단기간에 급성장한 ‘신신양회’. 시멘트 공장 기숙사에서는 20여 년을 함께 일하고 살아온 여자들이 자매처럼 지내며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녀들은 신신양회의 대표인 여자를 ‘어머니’라 부르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들을 낳아 함께 길러왔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공기처럼 가벼우며 마음껏 사랑하고 한없이 당당해 보였던 그녀들이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집단 자살한다. 이때 죽은 사람은 모두 24명(여자 21명, 남자 3명). 경찰 쪽에서는 그들 중 남자 한 명이 나머지를 교살하고 자신도 목을 매달아 죽은 것으로 발표한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의 몸에서도 저항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이 자의에 의한 타살로 죽었음을 뜻한다. 언론에서는 ‘어머니’라는 여자가 남편을 잃은 오갈 데 없는 여인들을 끌어 모아 그녀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신흥 종교의 교주이며, 그 사건은 광신도들의 집단 히스테리라고 추측 보도한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증거 부족으로 아무것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는 종결된다.
그날 사건으로 죽은 여자들 중 한 명인 서정화의 딸인 ‘나’(열아홉 살)는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현장에 있었으나 후천적 맹인인 탓에 눈으로 목격하지는 못했다. 대신 ‘어머니’와 엄마인 서정화를 비롯, 이모들이 무엇인가에 쫓겨 다락방으로 피신하고 마지막을 맞이하듯 죽음을 받아들인 순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 뒤 시신들을 더듬다 우연히 닿게 된 누군가(그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의 차가운 손길도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진정 무엇이 그들을 죽게 했는지, 그들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까지 감추려 했던 비밀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나고, 함께 자란 이모들의 자녀들과도 뿔뿔이 헤어진다.
3년 뒤 어느 날, ‘나’의 (씨 다른) 언니인 정인이 그 시절 함께 자란 자녀들을 향해 신문에 광고를 내고 그들은 약속한 날짜에 시멘트 공장으로 되돌아온다. 그들은 모두 예전의 친밀했던 공동체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그들은 곧 함께 모여 살게 되었고, 그로부터 2년 뒤 ‘신신양회의 아이들’ 중 한 명인 기태영이 신신양회를 재건하자는 뜻을 품은 채 합류한다. 그는 얼마 전 수소문해서 찾아낸 아버지(그는 대기업의 총수다)의 물적 도움으로 신신양회의 시멘트 사업을 다시금 번창시킨다. 한편 신신양회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낳아 키우기를 바라는 ‘나’는 그런 아이들을 낳게 해줄 수 잆을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을 골라 발신인란에 주홍글자 ‘A'가 인쇄된 편지를 보낸다. 편지에는 공동체를 향한 그들의 꿈과 그 꿈을 함께할 의사를 묻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하지만 편지를 받는 남자들은 대부분 내용을 읽지 않고 버린다. 그러나 신신양회의 그들은 다른 통로를 통해 남자에게 접근하여 결국 임신에 성공하고 아이를 낳은 뒤 함께 키운다. 편지를 받았던 남자들은 어딘가에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게 순조로운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게 삐걱거린다. 신신양회를 재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승승장구하게 된 기태영은 오로지 사업 확장에만 눈이 팔려 무리하게 일을 벌인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는 쓰레기 시멘트 제조도 서슴지 않는다. ‘나’는 기태영을 말려보지만 소용없다. 이미 신신양회 식구들 중 주요 인물 몇몇은 기태영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한편, 오래전 신신양회 사건을 조사하던 최영주 기자는 당시에 죽은 여자들의 과거를 알게 되고, 사회의 유력 인사들이 그 사건과 얽혀 있음을 감지하게 되는데……
분뇨, 오수, 짐승의 사체, 과일향의 냄새들 속으로 한 발 들여놓자, 고약한 숙취에서 깨어나듯 머릿속이 기분 좋게 맑아졌다. 젊은 여성들의 노동이 빚어내는 땀내와 거침없는 사랑, 우리 시대의 세태에 풍부한 물질성을 부여하는 문체, 그로 인해 소설에 대한 나의 오랜 갈망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결혼 의식도 없이 사랑을 나누고, 상대 남자도 모르게 아이를 배고 낳아서 기르는 젊은 ‘엄마’들의 자족적인 공동체는 나의 내면에 오래 잠들어 있던 인간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을 강하게 흔들어 깨웠다. 그런데, 그녀들의 소박한 꿈이 그토록 위태로워 보이는 까닭은 이 시대의 결혼제도와 성 풍속이 그만큼 타락한 탓이리라. 황광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