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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여자 1

가면 쓴 여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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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622g | 148*210*30mm
ISBN13 9791132245360
ISBN10 1132245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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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디가 어때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 비서는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세후는 이 불쾌함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저를 아끼고 위했는데. 일부러 커피도 사다 줬지, 아플 때 병원까지 데리고 가서 그 늦은 시간까지 곁에 있어주기도 했는데. 은혜를 끊임없는 거절로 갚다니 배신감도 이런 배신감이 없었다. 세후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나와는 사적인 관계가 안 될 것 같아?”
더 이상 그 이야기에 대해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다시 묻는 그의 제안은 그녀에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으니 순순히 다시 생각해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차마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 없는 보란은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아마 그로서는 당장 ‘예’라는 대답은 못 듣더라도 ‘조금 더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같은 대답 정도는 들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기분이 상한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옛날로 치면 왕 같은 남자가 나 같은 일개 무수리를 좋아한다는데 당연히 얼씨구나 감사합니다! 큰절이라도 하면서 간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었다.
역시나 끝까지 대답이 없는 그녀를 보다 못한 세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유를 물었다.
“대체 왜 싫은 거야?”
“죄송하지만…… 사장님은 제 이상형이 아니십니다. 물론 사장님은 멋지시고 카리스마 넘치시고 어느 여자든 바라는 이상형이실 겁니다. 그런데 저는 아닙니다. 저는 인간미 넘치면서 푸근하고 저한테만 자상하고 인자한 그런 남자가 이상형입니다. 죄송합니다.”
길게 둘러서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너는 성격이 뭐 같아서 싫다는 거였다.
고작 그따위 이유가 날 거절하는 이유가 될 것 같아? 엄 비서, 당신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여러 번 기회를 줬는데도 끝까지 싫다 말하다니. 나에 대해 이것밖에 모르고 있다니 실망인데?
활활 타오른 세후의 눈이 그녀의 대답은 상관없다는 듯 번쩍였다.
“엄 비서. 사람 일이란 게 한 치 앞도 모르는 건데 너무 장담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네?”
“팬 사인회 때도 만났겠지만 나한테는 권우빈이라는 조카가 하나 있지. 그 아이의 엄마가 죽고 그 애한테 남아 있는 피붙이는 나밖에 없어. 마찬가지로 나한테 남아 있는 피붙이도 걔밖에 없지.”
아, 이제 보니 우빈이가 부모님이 안 계셨구나. 너무 밝아 보여서 전혀 몰랐는데.
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도 잠시, 보란은 난데없이 웬 가족 이야기인가 싶었다. 지금이 자기 가족 소개 시간도 아니고.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보란은 뜬금없는 그의 가족사가 대체 어떤 숨은 의도가 있을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사장은 절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나한테 제일 소중한 건 그 아이의 행복이야. 그 말인즉 나는 걔를 위해 못 할 게 없다는 말이지. 알겠지만 우빈이가 당신이 쓴 동화를 너무 좋아해. 얼마 전 그러더군. 동화책에 나오는 퍼플이 외삼촌의 여자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그게 소원이라고.”
보란의 눈이 동그래졌다. 슬슬 사장의 이야기가 어디로 치닫는지 명백해지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퍼플은 동화 속의 아이라서 사장님이랑 진지한 관계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서 나는 생각을 전환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퍼플과 교제를 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으니 퍼플을 만들어 낸 작가하고라도 해야겠다고.”
“하지만 사장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사장님과 사귈 마음이 추호도 없는데요?”
자리에서 일어난 세후가 앉아 있는 그녀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긴 허리를 접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다 대고 으르렁거렸다.
“함부로 장담하지 마. 이제부터 내가 전력으로 당신을 꼬셔볼까 하니까. 기대해도 좋을 거야.”
보란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갓 스물일곱의 그녀, 엄보란. 스물일곱 해 동안의 인생에서 난생처음으로 잘생기고 멋진 남자가 그녀를 꼬셔보겠다고 나섰는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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