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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의 한 사람

내 눈앞의 한 사람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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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456g | 128*185*30mm
ISBN13 9788956059587
ISBN10 8956059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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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는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는 모든 것이 고통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결혼도 예외가 아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결혼이 사랑을 옭아매고 갉아먹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기혼자들은 수천 가지 배우자의 문제점을 들며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호소한다. 그런데 다시, 불가에서는 이 수천 가지 문제들이 단 한 가지 처방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말한다. 배우자(뿐 아니라 실은 세상만사)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그러면 나는 이제, 배우자를 바꾸려 들지 않고 내가 그와 조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배우자를 향한 나의 생각과 배우자를 향한 나의 태도에 변화를 준다. 신비롭게도 그제야 결혼생활에 평화가 온다. ---「결혼반지」중에서

어둠이 내렸다. 터미널 안으로 서울행 버스가 들어왔다. 나와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몸을 부렸다. 창밖은 매우 평범한 소도시의 밤 풍경이 되었다. 노래방의 네온, 약국 간판의 큼지막한 고딕체, 떡볶이 포장마차에 몰려든 여고생들, 검은 비닐봉지에 소주를 들고 가는 사내, 그 뒤를 묵묵히 따라가는 동남아에서 온 아내…… 그다지도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 그다지도 비범한 사랑이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는 것에, 문득, 목이 메었다. 길 위에서 언제나 다시 깨닫는 것. 함부로 지나쳐도 되는 풍경은 없다. 풍경 안에 놓인 작은 고양이 하나, 깨어진 장독 하나, 취해 넘어진 이 하나, 함부로 스쳐가도 좋은 것은 없다. 모두가 진한 사연의 귀한 주인공들이다. ---「가화 김밥」중에서

사랑은 반드시 크고 어려워서 정해진 대상과, 특정한 상황에서만 나눌 수 있는 것일까? 바람처럼 나눌 수는 없을까? 잠시 앉았다 가는 공원의 벤치에서, 근교를 향해 달리는 버스의 뒷좌석에서, 새싹이 움트는 봄 음료수를 사러 들른 동네 편의점 앞에서, 모처럼 흥얼거리는 노래처럼 가볍고 청량할 수는 없을까? 상대가 이성이든, 어린아이든, 할머니든, 상관없이 스치는 것이 기뻐 가진 것을 나누고 돌아서서는 이내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 그 사랑에 빠지기 위해 또 산책을 나선다. 짐을 꾸리고 장거리 버스를 탄다. 마음을 열면 사랑을 주고 사랑할 대상이 지천이다. ---「그들이 짓는 성당처럼」중에서

여행의 좋은 점을 나열하라면, 나란 사람, 아마 천 개쯤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하나는 이것일 게다.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진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면서, 수많은 장소가 ‘지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세상의 땅을 돈으로 사지만, 나는 세상의 땅을 사랑으로 산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지명이 마음의 지도에 나의 땅으로 오롯이 새겨지는 것이다. 지명이 늘어날수록, 당연히, 세상은 더 사랑스러운 곳이 된다. ---「은별이」중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한 번에 만날 수 없다. ‘만나다’는 행위는 ‘뛰다’나 ‘먹다’ 같은 동사처럼 한 번 행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완성되는 동사가 아니다. 첫 만남에, 우리는 손쉬운 편견이나 기대를 갖고 등장한다. 두 번째 만남에, 첫 만남을 강화하거나 해체한다. 서너 번째 만남 이후에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돌멩이처럼 작지만 단단한 것을. 이때부터 한 번의 만남으로 한 개씩 돌멩이가 쌓인다. 이것이 시간 속에서 하나의 건축물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건축물 안에 의자를 놓아둔다.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보았을 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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