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움틈은 사회의 친족 구조는 물론 노동 배분 양식, 섹슈얼리티라는 친밀성의 양식에 대한 재배치를 요구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감각에 의해 본격화되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적?사회적 감수성은 내 일상의 습속을 북돋우는 힐링 담론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정답지에 가둬지지 않은 숱한 질문들에 충돌케 하는 문제적 계기일 뿐입니다. --- p.8
5·17 페미사이드 이후, 강간 문화 폭로 이후, 메갈리아 이후, 우리의 이야기는 ‘그 이후’에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것(it)’을 넘어서기 위해서입니다. --- p.9
헬페미는 ‘남아 선호 사상’이라는 용어가 내포한 위선도 폭로합니다. 특정한 젠더를 가진 사람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죽음의 문화가 마치 논리와 이성의 산물인 ‘사상’인 것처럼 포장된 것을, ‘여아 살해 풍조’라는 용어로 해체해버립니다. 드디어 한국 사회에서 대대적으로 행해진 젠더사이드에 대한 명명이 등장한 것입니다. 여아 살해는 여성 개인의 선택일 수 없습니다. 부계 혈통을 전수할 도구로 남편의 친족 구조에 편입된 여성에게 여아 살해는 강요된 의무의 결과일 뿐이죠. (…)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율적인 임신 선택권이란 자발적인 임신 중단권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임신 지속권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대대적인 젠더사이드가 존재했던 것은 바로 생명을 살릴 권한인 임신 지속권이 여성에게 주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이죠. --- p.34~35
여성 혐오자들이 던진 이 자승자박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 메퇘지가 아니다”라는 부인의 문장을 구사할 것이 아니라, 이미 온건과 과격, 올바름과 어긋남, 승인과 낙인의 판단 배분판을 남성들이 독점했다는 사실을 폭로해야 합니다. --- p.56
그러나 메갈은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유령은 죽은 듯하지만 살아 있는 자의 공간을 계속 침범하는 존재입니다. 완전히 존재하지도 않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적출이 불가능하며, 말소(rature)될 뿐입니다. 말소란 프랑스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주목한 개념으로, 삭제하고자 하는 글자 위에 줄을 긋는 행위입니다. 즉 “자신이 지워낸 것을 읽을 수 있게 내버려두는” 이중적이고도 상반된 행위를 뜻합니다. 메갈을 삭제하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메갈이라는 기표를 더 두드러지게 남겨두어 지속적으로 읽히게 만들고 있는 것이죠. 메갈은 존재와 부재의 두 항을 끝없이 오가며 남성 중심적 현실에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 p.64
피해자는 상처의 크기와 깊이를 서사화할 권리, 욕설의 배제적 폭력성과 혐오 언어로서의 기능을 폭로할 인식론적 특권을 지닙니다. --- p.77
강간 문화는 형용모순 아닌가요? 어떻게 ‘강간’이라는 흉물스런 폭력과 ‘문화’라는 고고한 장이 조합될 수 있나요? 문화의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문화는 자연과 야만, 미개성의 영역을 설정해야만 존립 가능한 개념입니다. 즉 문화의 타자들에 대한 조작, 이용, 착취, 통제, 정복 행위가 문명화라고 불리는 것이죠. 문화란 타자에 대한 폭력의 이름인 것입니다. 남성들 간의 결속체로 이루어진 문화가 타자로 설정하고 있는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인 것이지요. --- p.85쪽
폭로 행위자들이 자신이 느꼈던 바가 무엇인지 그 고통의 강도가 어떠한 것인지에 오롯이 집중하며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세상은 폭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 혐오 사회의 긴 터널을 무너뜨리는 다이너마이트이자 새로운 사회를 상상해내는 폭죽입니다. 이미 폭로가 바로 해방의 언어 그 자체인 것입니다. --- p.100~101
왜냐하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는 당찬 포부와 결심이 ‘어쩌다 보니 엄마처럼 살게 된’ 이들의 넋두리나 하소연으로 그치고 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보다 동지애적이며 보다 근접한 세대 간의 관점 공유, 인식 공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혼 여성들의 내파적 교란 행위에 비혼 여성들에 의한 외부적 파열의 충격파가 더해지는 것으로서, 이 둘 간의 불연속적 연계 지점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 p.180
강간 문화에 대한 방관은 수동적 입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또 다른 강간 문화의 적극적 생산 지점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 p.215
그렇다면 남성들은 어떻게 미투 운동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일까요? 미퍼스트(MeFirst) 선언을 하면 도움이 될까요? 미퍼스트 선언은 폭로 현장의 남성들을 정의로운 남성과 짐승 같은 가해자 남성으로 이분화하여 자신의 정의감을 내세울 기회로 성폭력 폭로 운동에 접근하는 얕은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남성들은 자신의 방관과 침묵·가해의 역사를 은폐할 것이 아니라, 남성 카르텔의 수혜자로 직·간접적으로 복무해온 것에 대한 성찰과 내부 고발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퍼스트 운동은 여성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발화 권력의 독점 의지인 것입니다. --- p.217
강간 문화의 방관자이자 예비 가해자임을 폭로하는 남성의 위드유(WithYou)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내부 고발이자 남성 연대 문화에 대한 고발이라는 중층적 성격을 갖습니다. 다시 말해, 남성들은 미투 운동에서 여성의 피해 사실을 경청하고, 자신이 묵과한 가해자 성?침묵과 간과, 무지의 권력?을 성찰하고, 남성 연대를 내부 고발하는 위드유 운동으로 연대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여성의 착취 구조에 대한 폭로의 일환이자 행동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 p.217~218
강간 문화는 여성과 자리를 바꿔 앉아주거나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젠틀한 제스처를 몇 번 취함으로써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행위는 성폭력 가해자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떻게 공동체 내부에 폭압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게 해 가해자의 행동 양식의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항시 피해를 입는 자들의 처신과 대처법의 간구로만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 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