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만난 손녀가 조심스럽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한 번 보자고 하니 아이는 부끄럽다며 돌아선다. 무언가 하고 물어보니 할아버지에게 줄 선물이란다. 그러면 할아버지에게 보여 달라고 부탁하자 아이는 음표가 그려진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음표 밑에는 노랫말이 적혀 있었다. 아이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였다.
본인이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쓰고 작곡을 하고 그것을 종이에 기록한 것이다. 8마디로 된 노래다. 제대로 형식을 갖추진 못 했지만 아이의 사랑이 듬뿍 담긴 ‘사랑 노래’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할아버지를 위한 사랑 노래’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할아버지 감사해요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우~리 할아버지♬
이 노래를 본 순간 나의 마음은 기뻤다. 기뻤다기보다는 가슴이 멍해졌다는 표현이 좋을 듯하다.
손녀의 사랑 가득한 노래. 자신이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노래여서 더욱 고맙고 감사하다.
--- p.12
손녀가 태어난 후 한 달 가량 지나고 나서 블로그(blog)를 개설했다. 손녀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내가 손녀와 함께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 하고 그냥 지냈다. 그러다가 불현듯 손녀의 성장일기를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식구들이 새 생명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허둥대기 일쑤여서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나는 모습을 제대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시간이 많고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나였기에 블로그에 아이의 성장일기를 기록하기로 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20여 일이 지나는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기억의 한계이다. 홈페이지를 운영해본 경험을 살려 블로그를 개설하고 나니 뿌듯함과 함께 염려가 밀려온다.
블로그에 무엇을 올릴 것인가? 우리 집안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것을 시시콜콜 올릴 것인가? 나의 일이 아닌 아이와 아이 엄마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까지 노출시킬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이의 사진을 올리는 것도 조심스럽고, 출산 후 고생하는 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올리는 것도 조심스럽다.
--- pp.20-21
외손녀의 성장이 생각보다 빠르다는 느낌이 든다. 태어나서 2개월까지는 배가 고프면 참지 못 하고 소리를 질렀던 아이가 생후 2개월 반이 되면서 부터 배가 고프면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자꾸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입을 다시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다. 수건을 목에 둘러주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입을 벌린다. 그러다가 젖병을 눈앞에 가져오면 갑자기 웃음을 띠며 좋아한다. 젖병이 눈에서 사라지면 아이는 칭얼대기 시작하다가 다시 젖병을 눈앞에 가져오면 좋아서 웃는다.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놀아주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아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을 채우는 것이나 알아가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늘 겸손해야 하는가 보다.
--- pp.30-31
어제 오후에 집안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외손녀가 ‘잼잼’을 한 것 때문이다. 아이를 보던 내가 ‘잼잼’이라고 말을 하니까 아이가 양손을 폈다 오므렸다 했다. 못미더워서 ‘짝짜꿍’이라고 말을 하니까 이번에는 손바닥을 마주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아내와 딸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시 한 번 ‘잼잼’이라고 곡을 붙여서 들려주니 아이는 좋아라 하면서 양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것이었다.
생후 8개월 남짓 된 외손녀의 ‘잼잼’과 ‘짝짜꿍’을 본격적으로 알아듣고 시작한 날에 이 글을 쓰는 기쁨은 어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일 것이다.
--- p.44
이번 추석에 강릉에 계신 친할머니댁에 다녀온 외손녀는 많이 변해 있었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칫솔질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주 싫어했던 칫솔질이었는데 할머니댁에 다녀온 후로는 칫솔질을 즐기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이는 유아용 치약에서 풍기는 달콤함 때문에 칫솔질 흉내만 냈던 것이다. 지금은 자기 엄마가 어금니까지 골고루 칫솔질을 할 수 있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두 번째로 변한 것은 어른들이 부르면 큰소리로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전에는 그냥 웃기만 하거나 작은 소리로 “네”라고 대답하였는데…….
세 번째로는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추석 때 대구에서 올라오신 큰 어머니가 아이에게 “서현이는 언제부터 그렇게 똑똑했어요?”라고 물으니 두 손을 겨드랑이에 올리면서 하는 말이 “태어날 때부터 똑똑했어요.”라고 대답을 했단다. 집에서는 한 번도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누구한테 배웠는지 할머니와 식구들을 놀라게 했다.
--- p.86
이틀 동안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헤매던 할아버지, 오늘 아침에는 그런대로 기운을 차려 손녀와 놀 수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품에 안긴 손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할아버지, 이제는 아프지 마세요.”
“그래, 앞으로는 조심을 할게”
손녀가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왜 아팠어요?”
“음식을 잘못 먹어서 그런 것 같구나.”
“무슨 음식을 먹었어요?”
“아무래도 상한 음식을 먹었나봐.”
“그러면 앞으로는 상한 음식을 먹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러면서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 저 어제 저녁에 울었어요.”
“왜?”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울었어요.”
“할아버지가 아파서 서현이와 놀아주지 못 해서 섭섭했어?”
“네, 그래서 자기 전에 울었어요.”
손녀의 할아버지 사랑은 진심인가 보다. 그래서 손녀에게 뽀뽀를 부탁했다. “서현아, 할아버지에게 힘을 주세요.” 서현이가 냉큼 달려와서 할아버지 볼에 뽀뽀를 해 준다. 이것은 서현이가 할아버지가 늙어서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을 주는 하나의 자기만의 방식이다. 서현아 고맙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 pp.144-145
어제 저녁 서현이와 놀다가 한 마디 들었다. 아이와 함께 놀다보면 할아버지는 방법이 서툴러 가끔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왜 자꾸 나를 놀려요?”
“아니, 할아버지는 서현이가 좋아서 그런단다.”
“엄마도 저를 놀리거든요. 그건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거예요.”
“아니야, 엄마는 서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란다.”
그러자 아이는 정색을 하며 나에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할아버지가 저를 놀리죠? 엄마는 할아버지 딸이니까 엄마가 유치원에 다닐 때 놀렸으면 엄마가 그걸 배웠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엄마는 그게 습관이 되서 지금 저를 놀리는 거예요.”
할 말이 없어 가만 있으니까 아이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더 나빠요. 할아버지는 엄마가 어렸을 때는 엄마를 놀렸고, 지금은 그 버릇을 고치지 않고 저를 놀리잖아요. 할아버지 그러니까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도 있잖아요.”
정말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그냥 오늘만은 나쁜 할아버지로 남고 싶다.
--- pp.183-184
어제 저녁 손녀가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 요즘도 글을 쓰고 계세요?”
“그래”
“무슨 내용이에요?”
“격대교육에 관한 글이란다.”
지난 여름에 출간할 계획으로 집필 중이던 ‘격대교육’을 열심히 수정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손녀가 질문한 것이다.
이처럼 손녀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이 많다. 지난 6월에도 아이는 내가 집필하고 있는 ‘격대교육’과 관련해서 관심을 나타낸 적이 있다. 6월 29일에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할아버지, 격대교육에 대한 책을 쓰고 계시잖아요. 언제 출판할 계획이에요?”
“지금 수정 중에 있으니까 여름쯤이면 가능할거야.”
“할아버지, 책 제목을 잘 정해야 돼요.”
“그래,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은 일이야.”
“할아버지, 책 제목에는 격대교육이나 손주양육 같은 말을 꼭 넣어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책을 사 볼게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손녀를 어떻게 키웠는지 궁금해서 책을 사볼 것 같아요.”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할아버지, 책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도 중요해요.”
“그렇지?”
“책을 샀는데 내용을 읽어보고 재미가 없으면 실망할 거예요. 할아버지, 격대교육을 하면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지 저에게 물어보세요. 할아버지가 저를 격대교육시키시니까 제가 잘 알고 있거든요.”
--- pp.230-232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는 자주 팔씨름을 하면서 놀았다. 손녀는 그때마다 할아버지를 이기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기분을 살펴가며 져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아이는 기분이 좋아 춤을 추기도 했다. 팔씨름에 지고 나서 나는 항상 아이에게 내년에 보자며 도전 의지를 보였다.
“네가 2학년이 되면 할아버지가 팔씨름을 이길 수 있을 것 같구나.”
손녀는 자기 나름의 논리를 내세웠다.
“아니에요. 저는 힘이 세지고, 할아버지는 힘이 약해지는데 제가 이길 거예요.”
3학년이 된 지금은 어찌된 영문인지 손녀의 태도가 달라졌다.
“할아버지, 이번에는 일부러 져주지 말고 힘을 써 주세요. 할아버지가 일부러 져주시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데?”
손녀는 대답 대신 자기의 꿈을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내년부터는 제가 정말로 할아버지에게 이길 거예요.”
지난 1년 동안 손녀는 키도 커졌지만 마음도 성장한 것 같아 고마웠다. 몇 년이 지나면 진짜로 아이가 팔씨름에서 나를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자라고 할아버지는 힘이 약해지고… 이것이 인생인가보다.
--- p.244
퇴직한 후 8년 동안 열심히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온전히 아이에게만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였던 것이다. 결국 손녀를 돌보고 입히고 먹이는 것이 나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라 삶의 여유를 가지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할아버지인 나에게는 기쁨이요 즐거움이었다. 내가 손녀를 위해 해준 것보다는 손녀가 나에게 준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어린 아이들이 바쁜 엄마 대신에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고 있다. 그 아이들이 잘 자라서 자기를 길러준 조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조부모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 pp.25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