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게 생업과 관련이 있어 아주 미친 듯이 읽지는 않았지만 읽는 일을 쉰 적은 없어요. 여기에 묶은 에세이는 그런 저의 일상적 사유 활동의 자취를 보여줍니다. 책을 읽으며 생긴 내면의 파장, 감정의 굴절과 기분의 흐름, 그리고 마음의 무늬를 드러내죠.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보내는 책으로의 초대장이기도 해요. --- p.10~11
나는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 앞을 떠나지 않는다. 불꽃은 장작을 감싸며 타오르는데, 귀 기울이면 정적이라는 안감에 작은 한숨이 쉼표 같은 무늬를 새긴다. 불꽃은 타다닥거리며 타오른다. 가끔 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듯하다. 불꽃에 의해 분리된 장작 조각이 아래로 떨어지면 불꽃은 이내 숨을 죽이고 가끔 한숨이나 작은 신음을 토해낸다. 불꽃의 몽상가라면 이 작은 소리조차 놓칠 리가 없다. --- p.124
추천사는 책 전체를 읽고 써야 하니 의외로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 독자에게 책을 소개하되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 그게 추천사의 암묵적 책무겠다. 추천사는 익명의 독자에게 띄우는 초대장이고, 이 책이 아름다운 낙원이라는 것을 알리는 짤막한 안내서다. 때로 엉뚱한 추천사는 이슬람교도에게 성경을 내밀고, 불교도에게 쿠란을 내미는 불상사를 낳기도 한다. / 추천사를 쓸 때 내용을 너무 구체적으로 소개해서는 안 된다. 무릇 추천사는 약간 두루뭉술하게 써야 하는 법. 그 책이 어떤 기후에서 읽어야 좋을지를 말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다. 그 책이 영혼에 속하는 것인지 육체에 속하는 것인지를, 그리고 사랑, 증오, 감탄, 기쁨, 슬픔, 욕구와 같은 정념 중에서 어느 것에 충실한지는 알려줘도 좋겠다. 사실 사냥꾼에게 낚시 안내서를 보내거나 감기 환자에게 우울증 처방전을 내주는 격으로 궤도에서 이탈한 추천사를 본 적이 있다. 추천사를 쓰는 이는 조급한 결혼 중매쟁이와 비슷하다.
중매쟁이는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욕심을 앞세워 없는 것을 지어내고 있는 것은 한껏 치장하는 법이다. 그러니 책 추천사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다. 나 역시 추천사를 믿고 책을 구매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 p.142~143
표지는 책의 얼굴이다. 책이 생물이라면 표지는 그 생물의 살아 있는 감각과 표정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한데 요즘 책 표지는 과거에 견줘 세련되고 화려해졌지만 정작 소박한 개성과 고졸한 품격을 찾기는 힘들다. 몰개성과 분식扮飾으로 덧칠된 표지는 책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물론 책의 핵심은 단어와 문장, 그것이 실어 나르는 알갱이, 즉 내용, 메시지, 전언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썼느냐는 항상 책을 고를 때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선택할 때 표지도 유심히 본다. 표지가 내용과 별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책을 이루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표지가 책의 내용을 반영한다고 믿지만, 표지는 항상 그 이상이다. 표지와 텍스트 사이의 상호교감은 세상에 울려 퍼지는 화음이고 교향악이다. 그런 화음과 교향악이 없는 책의 표지를 믿지 않는다. 나는 텍스트와 상관없이 책의 표지에 매료되어 책을 고를 때도 종종 있다. 표지는 그 책과 만나는 순간을 기념하는 운명의 표징이다. 얼마나 많은 책이 볼썽사납고 통속적인 표지로 나를 실망시켰던가! 반면 얼마나 많은 훌륭한 표지가 내 심장을 뛰게 했던가! --- p.168~169
이 책의 한국어판이 나왔을 때 나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서점으로 달려가 집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을 가장 먼저 사서 읽은 독자 중 하나일 테다. 처음 산 책은 너무 낡아 누군가에게 주었다. 지금 읽는 것은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의 겉장도 낡았다. 어느덧 열다섯 해가 훌쩍 넘었다. 다양한 출구와 입구를 가진 ‘영토, 탈영토화, 재영토화, 도주’ 같은 낯선 개념이 춤추는 1,000쪽이 넘는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안,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와 유동을 체화하며 삶에서 가능한 한 가장 멀리 달아났다. 특히 ‘리좀’의 장을 반복해서 읽었다. 읽은 회수를 세거나 기록하지는 않았다. / 열 번, 아니 그 이상으로 읽었다. 그사이 들뢰즈의 다른 책을 구해 읽고, 사유의 방식과 그 외연을 확장하는 가운데 ‘철학하는 것’에 대한 사유를 밀고 나갔다. 철학은 다른 것들의 접목이고, 사유방식의 발명이며, 철학자의 등에 올라타서 철학을 건너가기다. 철학은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 사이의 전쟁이자 평화다.
--- p.328~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