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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무

난무

: 폭풍의 화가 변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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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586g | 153*212*20mm
ISBN13 9791130813356
ISBN10 1130813355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인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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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넓은 바다는 미친 듯 넘실거렸다. 파도는 모든 것을 다 부숴버리려는 듯 흰 포말을 일으키며 모래밭을 때리고 또 때렸다. 파란 바다는 이미 검은색이었다. 그곳에서는 폭풍이 황제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폭풍아 오거라! 나한테 몰아닥쳐 와라! 내가 너를 기꺼이 맞아주마!”
바위 위에 앉아 가방을 열어 스케치북을 꺼냈다. 오른손에 연필을 들고 폭풍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스케치북을 날려버렸다. 벌떡 일어나 절뚝절뚝 걸어 땅에 처박힌 스케치북을 들고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흰 종이 위에 검은 선들이 그려졌다. 그것은 서너 개의 직선 혹은 곡선에 불과했다. 누군가 보았다면“ 폭풍을 그린다고? 단단히 미쳤군.” 하고 혀를 끌끌 찰 것이었다.
--- p.20

박수무당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지고 눈에 핏발이 섰다.
“초감제를 허여야 허곡, 하늘궁전의 1만 8천 신덜을 굿판더레 모시는 디만 하루가 걸릴 거라. 그걸 마치문 초신맞이를 허고, 관세우도 해야 허고…… 당주삼시왕맞이를 안 헐 수 엇이난. 그렇게 열엿새나 버틸 수 잇이카?”
정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하룻만이 끝내려면 새끼 까마귀 열두 마리가 필요허여. 귀신을 제대로 달래지 안허문 펭셍 반병신이라. 어디 그뿐이라? 천한 환젱이 귀신이 펭셍 따라다닐 거주”.
정신이 바짝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환젱이라니 마씀? 환젱인 절대로 안 될 일이라 마씀!”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정윤은 수학이나 일본어나 과학 과목을 열심히 하기를 바랐으나 그와 반대였다. 박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가를 시킬 수는 없었다.
--- p.107~108

쏟아져 들어오는 황금빛 햇살 아래로 이젤을 옮겼다. 시간은 충분했다. 물감도 넉넉했다. 피는 멈추지 않았다. 작업실 바닥은 온통 빨간 파도였다. 노란 세상에서 빨강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무틀 캔버스에 정성스레 천을 끼우고 힘겹게 망치질을 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망치질이 분명함에도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캔버스를 이젤 위에 올렸다. 눈을 부릅뜨고 하얀 캔버스에 녹색을 칠했다. 녹색일 뿐 시지의 눈에는 노란색이었다. 그 바탕이 마르자 스케치를 시작했다. 태양은 더욱 치솟고 피는 더욱 흘렀다. 노란 물감통을 열어 붓을 푹 담갔다. 붓을 움직이는 손이 빨라질수록 정신이 혼미해졌다.
자신이 무엇인지, 이 세상에 어떤 존재로 왔다가 저세상으로 갔는지 흔적을 남겨야 했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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