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모습 좀 봐. 운동장에도, 나무들에게도, 저 아파트에도 내리는구나. 어? 교실 안으로 안개까지 들어오네?”
그래, 오늘은 너희가 뭐라고 해도 비 오는 모습을 느껴 보고 싶다. 우산을 받쳐 들고 저 운동장으로 함께 내려가 비를 맞아도 좋을 텐데.
히야아, 이 가을에 장대비가 쏟아지는구나. 아이들이 창가에 붙어 손도 내밀어 보고 가만히 보고 있다.
내일도 비가 온다고 했지. 내일은 함께 《비 오는 날》 그림책을 읽어야겠구나.
아! 그런데 다음 날 눈을 뜨니 하늘이 새파랗다. ‘어쩜 저리 깨끗하노.’ 머리를 잔뜩 젖히며 학교로 왔다.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아이들 몸으로, 책상으로 들어온다. 키 큰 미루나무 잎들이 햇살에 팔랑팔랑 반짝인다.
“야들아, 저기 봐라. 저 미루나무 잎, 깨끗한 공기, 하늘, 이 냄새. 아, 안 되겠다. 얘들아, 밖에 나가자.”
“와!”
그림책을 옆에 끼고 아이들이랑 운동장에 내려갔다. 축축한 운동장을 지나 ‘숲속 교실’로 갔다. 아이들 얼굴이 맑다. 아침 햇살과 함께 막 웃는다.
---「숲속 교실에서 읽은 《비 오는 날》」중에서
점심 먹고 벚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현우하고 구구단을 외웠다. 내가 “이일은 이” 하면 현우가 “이이는 사” 이렇게 주고받으면서 5단까지 했다. 처음 하는 구구셈이라서 현우가 아직 어려워한다. 현우는 학원도 안 다니고 학습지도 안 한다. 내가 공부 시간에 가르치는 것이 처음 듣는 거고 처음 배우는 거다. 현우하고 공부할 때면 가끔 소리도 지르지만 재미있다. 시내에서 아이들하고 공부할 때와는 많이 다르다. 작은 것 하나하나 일러 주고 확인해야 한다.
2시쯤 돼서 다른 애들은 이광우 선생하고 바위솔이라는 풀을 찾으러 희원이 집에 가고 현우하고 나는 그늘에 앉아 꽃밭에 심었던 조를 털면서 재미있게 구구단을 외웠다.
---「고천분교 일기 2」중에서
[즐거운 생활]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 크레파스도 필요 없고 물감이 없어도 된다. 그냥 도화지만 한 장씩 내주었다. 그리고는 밖에 나가 꽃잎과 풀잎을 따 오라고 했다. 나팔꽃, 해바라기, 장미꽃, 코스모스, 무궁화 이렇게 따 와서는 우선 꽃잎으로 꽃을 그렸다. 나팔꽃을 도화지 위에 놓고 손바닥으로 꼭 찍으니 꽃 모양이 아슬아슬, 보라색 나팔꽃이 찍힌다. 다른 꽃은 물기가 많지 않아 잘 안 된다. 그래서 조그맣게 접어서 꼭꼭 찍어 나갔다. 노란 꽃도 생기고 분홍 꽃도 생긴다. 다음에는 풀잎으로 줄기도 그리고 잎도 그렸다. 아이들 도화지에 나팔꽃도 있고, 코스모스도 있고, 해바라기도 있다. 희원이가 풀잎을 도화지에 막 문지르니 시원한 풀밭이 생겼다. 일용이도 하고 현우도 했다. 복도에다 걸었다. 다 하고 남은 것은 동화책 사이사이에 끼워서 눌러놨다.
다 마르면 이번에는 그걸 요리조리 붙여서 또 해 봐야지. 이제 나뭇잎이 빨갛게 노랗게 물이 들면 그것도 주워 잘 말려서 이것저것 해 봐야겠다.
---「고천분교 일기 2」중에서
“김민호, 박민호, 잘 왔다. 학교 땡땡이치고 노니 재밌더나?”
“……아니요.”
“박민호, 너 어제 엄마한테 꾸중 많이 들었구나. 눈이 퉁퉁 부은 걸 보니.”
“예.”
“김민호, 아버지가 걱정 많이 한 거 알지?”
“예.”
“일기장 내고 아침 공부 할 준비하거라.”
자리로 돌아가는 걸 보고 아이들이 써 온 일기를 보고 있었다. 좀 있으니 두 민호가 일기장을 들고 온다.
학교 가지 않아서 (동백초등 5학년 박민호)
엄마가 화가 나서
내 다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다리가 벌겋게 붓고
멍이 들었다.
엄마는
“이제 그러지 마.” 하시고
밥을 채려 주었다.
나는 밥을 훌떡훌떡 먹고
잤다.
아빠 (동백초등 5학년 김민호)
오늘 학교에 안 갔다.
그래서 저녁에 살짝 들어갔다.
아빠가
나한테 할 말 없냐고 했다.
그래서 들켰나 보다고
학교에 안 갔다고 말했다.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밥 먹어라” 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박민호, 김민호 시 맛보기 (동백초등 5학년 이가연)
선생님이
김민호, 박민호 시를 들려주시며
이야기하신다.
우리 반 애들 눈이
꼭 눈물 흘린 눈 같다.
우린 지금 서로 통하고 있다.
---「학교 땡땡이치고 노니 재밌더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