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종교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사회적 실체로서 중국 민중의 생활 습관, 도덕규범, 민간 풍습 등 사회의 각 방면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종교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중국종교사상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연구 자체도 중요한 현실적 의의가 있다. --- p.59
「홍범」에서 언급한 ‘오사(五事)’에 대하여 동중서는 천하를 통치하는 제왕의 기상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아마도 군주가 천명을 받드는 기능을 특별히 강조한 것 같다. 세상사[人事]의 안배는 반드시 계절의 요구에 부합해야 하고 이를 어기거나 거스르지 못한다는 것은 농경 문명의 기본 신념이다. --- p.124
도가는 도교의 근원론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순환론적 색채를 띠는데 사계절 질서와 밤낮의 변화를 그 대상으로 한다. 『도덕경』에서는 말하는 ‘귀근(歸根)’, ‘복명(復命)’, 그리고 “돌아가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고 약한 것은 도의 작용이다”라는 것이나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서 모자란 것을 보충한다”라고 하는 말이 대표적인 예다. --- p.133
음양의 관념이 변증법적 사유의 대립적 통합방식에 따라 각종의 징후를 통괄하는 하나의 체계라면, 오행 관념의 확장과 이를 종합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은 사계절 순환 속에 각종 역법, 기후, 물후의 제반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엮어서 배열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숫자를 놓고 추단한다는 시각에서 본다면 오행 체계의 구조적 특징이 단조롭고 다의적으로 해석되며 임시방편적인 것 같지만, 그 효용성은 결코 부정하지 못한다. --- p.137
원시 신앙의 발생은 선인들로 하여금 생명 의식을 각성하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생명 의식의 각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생식 숭배와 조상 숭배인데, 이러한 숭배 사상에 인류 초기의 원시적인 정감 요소를 담아 개체와 집단에 대한 강렬한 생명 의식을 후대로 전해주었던 것이다. 은주(殷周) 시기에는 생명에 대한 끈끈한 정감을 천명신학(天命神學)으로 구현하여 “덕으로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한다[以德配天]”라는 자아의 각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이로 인해 중국의 문화 사상, 특히 중국종교의 정감론 사상에 강렬한 생명 의식이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다. --- p.586~587
중국의 원시 종교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강렬한 생명 의식은 종교적 정감론의 주체적 지향점의 하나이자, 중국종교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한 요인이 되었다. --- p.587
태곡학파는 유교의 도통을 계승하면서 불교와 도교의 내용도 수용하고 있는데, 이 교파의 특징은 정감론을 다루면서 생명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의식과 호흡을 일치시키기 위해 정감을 조절하고 제어할 것을 강조하고, 인간의 유현(幽玄)한 감정 변화를 성공(聖功)의 경지와 연계했다. 구전(口傳)으로 직관적 체험을 수행하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이 교파는 신비의 베일에 가려진 부분도 많지만, 이러한 가운데 엄숙하고 신비로운 ‘성공’의 종교적 정서를 잘 보여준다. --- p.93
중국종교를 감싸고 있는 신비의 베일을 벗겨내면 많은 사실이 드러난다. 각 종파의 정신감응 사상에 창의적 사고를 활기차게 전개할 정신적 공간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조건이 주어진다면 이러한 공간에서 창조적 활동에 필요한 영감을 얻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영통하다는 소문들은 대부분 검증할 길이 없고 검증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전개되는 기이한 상상력과 남다른 심미 의식, 그리고 특유의 예술적 감각은 종종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것들은 중국종교의 정신감응 사상이 인간의 창의적 사고를 유발한 결과물로 나타난다.--- p.689~690
중국종교사상의 패러다임 전환은 그 자체로 사회적 문화체계의 중요한 현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혁의 구성 요소로서 내재적 추진력을 지니고 있다. --- p.1187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이후 반야성공학설이 비교적 크게 발전했는데, 이 또한 지배 계급의 신앙이나 정치적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 p.1194
육조 시대의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사회 현실은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미련을 가진 당시의 명사들에게 고통을 안기며 오직 죽는 날만 기약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탐구하고 신선처럼 장생불로하는 것을 갈망했다. 이 시기에는 생명에 대한 집착과 그런 사색들이 만연하여 “사는 것이 귀하다[以生爲貴]”라는 사상이 보편화되었다. 도교의 신선신앙에 대한 명사들의 기대감이 극도에 달해 장생불로하고 연년익수할 목적으로 복약을 하거나 심지어는 연단을 시도하기도 했다.--- p.1196
도교와 불교사상의 근현대적 변혁은 필연적 수순에 따른 것이었다. 한쪽으로는 종교 내부에서 세속화와 영리화가 진행되어 계율이 느슨해지고 경전의 가르침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상적 변혁을 시도함으로써 종교 자체의 생존과 발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각종 사회적 변혁에 핍박을 받아 이를 수긍하고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 p.1217
종교적 범주에서 볼 때 ‘신국공치’는 탐구의 무게 중심을 종교적 수양에 두어야 하지만, 중국종교계 인사들에게 있어 수신과 치국을 통합하는 문제는 곧 ‘공치(共治)’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p.1239
전체적으로 볼 때, 유교에서는 주로 인의예지신으로 수신과 양성을 도모하며 삼강오륜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내성외왕’의 도를 따르는 가운데 ‘즉신즉국’의 이론을 실천하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수신과 치국은 서로 일치한다. --- p.1258~1259
중국 본토의 종교 가운데 도교와 유교가 ‘신국공치’에 대해 풍성한 논의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각기 다른 시기에 전개된 ‘신국공치’에 관한 중국종교의 수많은 논의에서 제각기 다른 특징들과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았지만, 중국종교에서 이루어진 이런 논의들은 대체로 개체로서의 인간이 완벽에 이르는 길을 찾는 데 집중했다는 점, 이러한 노력이 주로 사회와 국가 간의 밀접한 관계를 도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p.1276~1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