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 뼈저리게 느끼지만 20대의 나는 스스로가 중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30대 중반이 됐을 때 당황했다. 또래 친구들이 차례차례 결혼해서 부모가 됐고, 20대 때 입던 옷이 더는 안 어울렸으며, ‘아저씨 아줌마가 알 리 없지’라는 방파제가 제구실을 못하게 됐다. 이제 내가 아줌마가 거의 다 됐으니 방파제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
그때 나는 뭔가를 깨우쳤다고 생각한다. 젊음과 새로움이 동의어가 아니듯,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아마 나는 이대로 완전한 중년이 돼도 20대와 같은 호된 실연을 하고 10대 소녀처럼 상처받을 테지. 한편 체력은 점점 달리겠지. 나이와 정신과 육체는 점점 불균형해지겠지. --- p.8~9
응원 깃발은 꽤나 재밌었다. ‘우리 사장님 파이팅!’이라는 깃발이 몇 개나 있고 응원객이 많은 것으로 봐서 회사 사람들이 몽땅 응원하러 끌려 나온 듯했다. ‘히로시, 완주를 노려라’라고 손으로 쓴 깃발을 들고 홀로 서 있는 노신사는 히로시의 아버지겠거니 싶어서 감개무량해진다. ‘적은 자기 자신의 게으른 마음’이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문구에는 뜨끔했다.
직접 만든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있다. ‘한 걸음씩 나아가면 반드시 길은 열린다’라든지 ‘환갑 달리기, 앞으로도 계속 달리겠습니다’, ‘해낼 테다’, ‘ FUN RUN’ 등의 글귀가 인쇄돼 있었다. 뭐랄까, 죄다 긍정적인 말이다. ‘이 대회가 끝나면 두 번 다시 달리지 않겠습니다’라거나 ‘얼른 마치고 집에 가자!’, ‘지금 당장 지하철 타고 맥주 마시러 가고 싶다’라고 쓴 티셔츠를 일부러 만드는 사람이 없는 건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이겠지. 그래도 다들 정말 훌륭하네. 나처럼 마지못해 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아닐 수도 있다. 다들 너무너무 싫은데도 어째서인지 달리기를 하다가 도쿄 마라톤까지 나오게 돼버렸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긍정적인 척이라도 해야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긍정적인 글귀를 쓴 티셔츠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틀림없이 그럴 거다. --- p.29~30
40대 중반쯤 되면 대개는 자신이 대충 하는 것과 대충 하지 않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청소를 대충 하든 혼자 있을 때 저녁식사를 대충 만들든 그건 이제 일상적인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다. 물건을 살 때 하는 암산도 자동차 운전도 ‘못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안 한다. 안 하려 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도 비겁한 녀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 생활하면서 ‘와, 나 지금 어물쩍 넘기고 있네’, ‘꾀부리는군’ 하는 생각이 드는 일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다. --- p.141~142
갑자기 맹렬한 고독을 느꼈다. 고독이란 정신적이며 추상적인 것이라고 줄곧 생각했다. 뭔가가 충족되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고독이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스스로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이며 구체적인 상태다. 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쓰려져도 자동심장충격기가 없을지 모른다, 구급차조차 안 올지도 모른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쓰러질 수 없다. 어제의 지나친 산책도 와인 다섯 잔도 연습 부족도 전부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몸이 싸악 차가워지며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것이야말로 고독이다! 깨달음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미쓰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서 눈길을 돌리자 포동포동한 노부인이 격려하듯 손뼉을 치며 나를 들여다보고 “미쓰요!”라고 계속 외친다. 그 몸짓과 응원 소리에 나 자신이 지금 울음을 터트릴 듯 고개를 숙인 채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웃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로 들어 올리면서 응원이란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의지할 수는 없지만 고독을 달래주는 건 역시 타자라는 사실을 통감했다. --- p.168
즈시, 하야마, 미우라는 어린 시절부터 몇 번이나 놀러 갔던 곳인데도, 다 각각 전철로 가서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실은 이날 이렇게 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저쪽이 어디 어디라는 W 군의 설명을 듣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마쿠라·즈시·하야마·요코스카·미우라 그리고 가나자와 팔경’이라는 장소가 한 묶음이 됐다.
달리는 건 여전히 싫지만 이럴 때는 감동한다. 자신의 다리로 땅을 누빔으로써 따로따로 알던 마을이 입체적으로 연결되는 이 고요한 흥분. ‘언젠가 하루를 들여 산을 헤치며 미우라 쪽까지 가보고 싶네, 에노시마라면 더 짧은 시간 안에 갈 수 있을지 몰라.’ 그 흥분에 마음이 들떠 이런 생각을 한다. 실제로 간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할 게 뻔하지만.--- p.228
39km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주자 대열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뭔데, 뭔데, 궁금해하며 다가가 봤더니 우와, 굴이다. 수북한 굴 접시가 긴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주자들은 무리 지어 차례로 손을 뻗어 굴을 먹는다. 굴이 수북한 접시는 눈 깜짝할 사이에 껍데기만 남지만 관계자가 산더미 같은 접시를 잇달아 가져온다. 관계자를 둘러싸고 다들 굴을 계속 먹는다.
이럴 때는 대부분 밀치락달치락하거나 자칫 앞다투게 돼서 그 자리가 다소 시끄러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전혀 없다. 서로 양보하는 건 아니지만 다들 조용히 굴을 연신 먹으며 유리잔에 담긴 화이트와인을 마신다. 굴을 가져오는 관계자도 쾌활하게 “ 봐요, 굴 왔어요”라는 듯한 말을 하며 등장하고, 연달아 뻗는 손에 접시를 내밀며 “드세요~ 마음껏 드세요~” 하고 미소 짓는다.
--- p.260~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