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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근현대편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근현대편

: 꿈을 찾는 한국사

최태성 | 들녘 | 2018년 06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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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666g | 148*211*32mm
ISBN13 9791159253379
ISBN10 1159253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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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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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의 주역은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같은 사람들입니다. 당시 서재필의 나이가 열아홉 살이었는데요. 지금으로 치면 고 3이거나 대학 신입생 정도입니다. 그 나이에 갑신정변 쿠데타에 참가해서 국방부장관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박영효와 홍영식은 20대, 그리고 김옥균은 이보다 좀 많은 30대였어요. 다들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요?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이들은 잘나가는 집안의 자제들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꿈을 꿉니다. 기존 질서와는 완전히 다른 꿈인데요. 14개조 개혁안에 그들이 꿈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정치면에서 이들은 조선 정부의 자주성을 천명합니다. 지금 조선의 정치는 위안스카이, 묄렌도르프, 마젠창과 같은 청의 고문들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급진개화파는 청의 종주권을 부인해요. 1392년 이래로 조선 왕조에 계속 내려왔던 중화질서, 그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벗어나자고 외친 겁니다. (…) 사회면에서는 신분제 폐지를 주장합니다. 갑신정변 14개조 개혁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왜 신분제 폐지가 중요할까요? 바로 그 주장을 내세운 사람들의 신분 때문입니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이들은 모두 떵떵거리는 집안의 자제들입니다. 양반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거예요. 사실 양반이라는 신분 때문에 누리고 있는 특권을 버린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왜 민씨 정권이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나서 개화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우왕좌왕한지 아세요?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혁 없는 개화는 실패입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개화는 하나마나예요. 그저 치장일 뿐입니다. 그런데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개화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았어요. 신분제 폐지를 들고 나온 겁니다._〈130년 전 신세대의 꿈〉 중에서

동학농민운동은 지방관의 부패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894년의 전라도 고부민란은 조병갑의 학정에서 비롯되는데요. 대표적인 학정이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둘러싸고 벌어져요. 보洑는 저수지입니다. ‘봇물이 터진다’고 할 때의 그 보예요. 보를 세워 강물을 가둔 다음 그 물을 쓰는 농민들로부터 세금을 받는데 이것을 보세洑稅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병갑은 기존의 보가 있는데도 그 옆에 또 하나의 보를 만들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금을 더 걷겠다는 거죠. 그런데 보는 누가 만드나요? 농민입니다. 세금은 누가 냅니까? 역시 농민입니다. 농민 들은 부글부글 끓습니다. 필요 없는 보를 만들기 위해 노역을 시키고, 게다가 세금까지 더 뜯어가니 미칠 노릇입니다. 참고 참았던 분노가 마침내 터집니다. 전봉준이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려 사람들을 모아서는 관아를 공격합니다. 조병갑은 줄행랑을 치고요. (…) “일어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백산봉기에서 나온 말인데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봅시다. 야트막한 산에 농민들이 모였어요. 이들의 무기는 단순합니다. 죽창이에요. 대나무를 꺾어 그 끝을 잘라 뾰족하게 만든 창입니다. 이 대나무를 들고 백산에 모입니다. 그들이 앉으면 대나무만 보이겠죠? 멀리서 보면 ‘죽산竹山’입니다. 그들이 일어서면, 당시 사람들은 하얀 옷을 입었으니까 ‘백산白山’이 되고요. 이들이 진군하는 겁니다. 정부군에 맞서 싸우면서 황토현 전투와 황룡촌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요. 이처럼 농민군은 오합지졸 관군을 족족 무찌르면서 전주성을 점령합니다. 전주성이 점령됐다는 것은 전라도 전체가 농민군의 손에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해요. 전라도는 조선 전체가 목줄을 대고 있는 식량의 최다 생산지입니다. 그런 곡창지대가 농민군의 손에 떨어진 거예요. 당황한 정부는 대책을 세웁니다. 이번에도 일관성 있게 청에게 SOS를 칩니다._〈이름 없이 피었다가 지다〉 중에서

이때 유럽에서는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독일이 급성장함에 따라 독일을 주축으로 한 삼국동맹과 이를 견제하기 위한 영국 중심의 삼국협상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었죠. 이 같은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를 여는데, 우리나라에서 실추된 영향력을 회복시키고자 러시아가 고종에게 초대장을 보냅니다. 이에 고종은 이준, 이위종, 이상설 등 3인을 헤이그 특사로 파견해요. 하지만 이를 알아챈 일본이 회의장 입장을 원천 봉쇄하고, 결국 특사들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준이 그곳에서 죽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킨 다음 그의 아들 순종을 허수아비 황제로 앉힙니다. 그러고 나서 일본은 또 하나의 조약을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일 신협약, 다른 말로 정미7조약입니다(1907).
한?일신협약에서는 일본인이 차관으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군대가 해산되지요. 물론 정미7조약의 7개 항에는 군대를 해산한다는 말이 없어요. 군대에 대한 내용은 조약에 딸린 부수조항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산된 군대는 의병에 합류하지요. 1909년에는 기유각서己酉覺書를 체결하여 사법권을 박탈합니다.
더 황당한 일을 저지르는 집단이 있습니다. 1909년에 ‘한일합방’을 청원한 단체가 있어요.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한번 보세요.

우리 대일본 천황 폐하께옵서 지극하신 인덕과 하늘과 같은 넓으심으로 보위를 무한에 세워 일한합방을 창설하시고, 우리 군신을 만세에 어여삐 여기시와, 황실과 신민이 종시일천, 길이 신성 무궁한 은혜를 입도록 하여주심을 황송히 머리 숙여 감히 소원하나이다.

이 글을 쓴 자들은 놀랍게도 한국인들입니다. 1904년에 만들어진 일진회라는 단체 소속이죠. 을사조약 때도 환영하더니, 기유각서가 체결되는 이 시점에서는 결정적으로 ‘한일합방’ 청원을 넣은 거예요.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할 때 “한?일병합은 한국인들이 원해서 했다”는 내용을 넣었는데, 거기서 말하는 한국인들이 바로 일진회 인간들입니다. 을사오적 버금가는 집단이에요. 그러면, 일진회 인간들은 일제 강점기에 계속 잘 먹고 잘살았을까요?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병합되자마자 일본은 일진회도 해산시켜버립니다. 이른바 토사구팽이죠._〈어두운 굴속으로〉 중에서

3?1운동은 첫째, 일제가 무단통치에서 이른바 문화통치로 식민지배 방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됩니다. 둘째, 국내외 민족운동의 활성화에 이바지합니다. 3?1운동에 참여한 민중들이 민족의식과 정치의식을 높이게 되면서 국내에서는 각종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국외에서도 항일무장투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죠. 셋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이끌어냅니다. 3?1운동은 거족적 항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이끌어나간 지도부가 없었다는 점이 한계로 남았죠. 그리하여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연해주 지역의 대한국민의회, 서울의 한성정부,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표적이지요. 마지막으로 3?1운동은 다른 나라의 민족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3?1운동이 가져온 변화 중 가장 큰 의의를 갖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인데요. 3?1운동 이후 수립된 여러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 하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임시정부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위치와 성격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집니다._〈우리는 오늘 떨쳐 일어난다〉 중에서

박정희를 필두로 한 5?16군사정변의 주역들은 두 가지 주장을 내세웁니다. 첫 번째, “반공을 국시로 한다”입니다. 5?16군사정변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박정희가 누구인지 잘 몰랐거든요. 아니, 모른 게 아니라 박정희의 과거 행적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해방 이후에 남로당과 관련돼 있다는 의혹이 있었어요. 그래서 5?16군사정변이 사회주의 지향의 군사정변이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 거죠. 실제로 북한은 5?16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축하전문을 보낼 준비까지 합니다. 과거에 박정희의 형이 실제로 남로당과 관계있었으니까, 박정희가 자신들과 뜻을 같이할 수도 있겠다고 착각한 겁니다. 따라서 박정희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더 강하게 사회주의를 부정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반공을 국시로 내건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또 다른 약속은 “민정으로 이양하겠다”였어요. 정권만 안정되면 자신들은 다시 군대로 돌아가겠다는 건데요. 그러나 박정희는 군대로 돌아가는 대신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됩니다.
정치군인들이 5?16군사정변을 일으키기 위해 만든 조직은 군사혁명위원회입니다. 이것을 이틀 후인 5월 18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는데요. 여기서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일들을 처리합니다. (…) 이들은 최고재건회의와 중앙정보부를 세워 어떤 일들을 했을까요? 정치를 볼게요. 1962년 12월 5차 개헌을 합니다. 의원내각제엔 중심이 없어 혼란을 야기하므로 대통령제로 환원해야 한다면서요. 그리고 1963년 2월에 민주공화당이라는 정당을 만듭니다. 줄여서 공화당이라고 부르지요. 박정희는 1963년 8월 군복을 벗은 바로 다음날 이 공화당의 총재에 오릅니다. 경제면을 볼게요. 먼저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장면 정권과 마찬가지로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요. 박정희는 지하에 음성 자금이 숨어 있을 것으로 보고 화폐개혁을 통해 이 돈을 양지로 끌어올리려 합니다. 그런데 돈이 나오지 않아요. 정말로 돈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국내 자본을 이용해 뭔가 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3공화국이 되면 외국에서 돈을 끌어오는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 마침내 1963년 10월, 제5대 대선을 통해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군정이 끝나고 민정이 시작됩니다. 원칙적으로는 대통령 선거를 4년마다 해야 하므로 1964년에 치르는 것이 옳았지만 군사 정변 후이므로 1963년에 대선을 치릅니다. 그들이 정하면 곧 법이 되는 시국이었거든요. 군정을 민정으로 이양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군인 박정희가 민간인 박정희에게 정권을 이양해준 셈이니까요._〈제 마음은 이미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중에서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통일과 관련된 정말 많은 성과가 나오게 됩니다. 김대중 정부는 이른바 ‘햇볕정책’이라고 하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펼칩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라는 의미로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이 시기 남북 관계에서 인상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요. 우선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 방북’이 이루어집니다. 북한 출신인 고 정주영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소 1001마리를 지원하죠. 수백 마리의 소를 실은 트럭이 줄지어 북한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후 북한산 해로 관광이 추진됩니다. 바닷길로 북한을 방문하는 거예요. 이렇게 남북 간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드디어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이 이루어집니다.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손을 잡습니다.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지요. (…)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통일 정책을 계승합니다. 그리하여 2007년 평양에서 두 번째 남북 정상 회담이 개최되고요. 6?15남북공동선언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10?4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남북 관계가 급속하게 경색됩니다. 핵실험을 강행, 미사일 시험 발사,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북한의 잇따른 무력 도발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에 대북 지원이 중단되고 개성 공단이 폐쇄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에 2018년 4월 27일 역사상 세 번째의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냈죠. 이번에는 평양이 아니라 남측의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는 연내 종전 선언에 대한 합의 내용이 포함되기도 하였습니다.
---〈함께 가는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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