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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 Jumper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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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0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590g | 130*190*30mm
ISBN13 9791185653402
ISBN10 118565340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윌은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섬이 평소보다 크게 느껴졌다. 가슴이 찌르는 듯 아팠다. 너무 한참을 달렸다. 늪지도 살폈고, 초원 구석구석을 다 뒤졌고 바닷가까지 한달음에 내려갔다 왔으며 공동묘지도 죄다 훑었다. 레녹스 하우스는 물론이고 마을 안쪽도 다 뒤졌고 스톤 서클이고 도서관이고 안 간 데가 없었다. 결국 다시 그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가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맥칼리스터 집안의 성까지 가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윌을 따라 개도 달렸다. 개의 검은 귀가 바람에 펄럭였고 큰 앞발이 늪지에 자국을 남겼다. 어떻게 발자국이 이것밖에 없단 말인가? 왜 그들은 그를 찾지 못할까? 그는 절대 개를 두고 떠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가기 전에 뭐라고 했던가? 그냥 산책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윌과 개는 좁은 길을 달려 벼랑으로 올랐다. 개가 앞서고 윌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여기 벼랑에도 사람 그림자라고는 없었다. 당연하다. 이런 날씨에 누가 이런 곳에 오겠는가. 폭풍이 불어 닥쳤다. 이제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세상이 끝나는 이곳에 윌과 개가 서 있었다. 아니, 여기서 끝나는 것은 이 섬이다. 세상은 계속된다. 천 길 낭떠러지, 그리고 수평선 어디선가와 그 너머의 다른 섬들에 가 부딪칠 물의 세상은. 결국 그도 그곳에 갔을까? 수평선 너머로?
윌과 개는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 손으로는 개의 귀 뒤를 어루만지면서 다른 손으로는 뭐가 더 보일까 하여 손우산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셜록 홈즈는 사라져 버렸다.

옛날 옛날에 섬이 하나 있었어요.

옛날에 알렉시스와 내가 살았다. 그리고 둘은 물건을 여행 가방에 집어던졌다. 스웨터, 바지, 양말…… 나는 옷장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낚아채 내 뒤쪽에 펼쳐놓은 캐리어로 집어던졌다. 알렉시스도 옆방에서 똑같이 했다. 무슨 옷을 집었는지, 좋아하는 옷을 챙겼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살피고 따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평소 하듯 차분하게 리스트를 적어서 짐을 싼다면 우리가 지금 실성한 사람들 같다는 것을 금방 깨달아버릴 테니까.
우리 집안사람들은 다 미쳤어. 왜 17살 어린 나이에 달랑 가방 하나 들고 뱃속에 나까지 배고서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났냐고 내가 물을 때마다 알렉시스는 늘 그렇게 대답했다. 당시 알렉시스는 무작정 독일로 건너갔다. 아직 미성년인 어린 나이에 아이까지 임신한 채로 말이다. 황급히, 그리고 하필이면 독일 보훔으로. 어느덧 나도 17살이 다 되었고 (아 물론 아직 14개월 더 있어야 하지만.) 보아하니 그 미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았다. 나도 오늘 아침에 밥을 먹다가 문득 이 나라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1시간 전의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오늘 오후에 떠날 저가항공 비행기를 예약했다. 떠나자면 그래도 짐을 싸야 했다. 나는 서둘러 서랍을 뒤져 팬티 몇 장과 브래지어 몇 장을 꺼냈다.
“에이미, 따뜻한 파카도 챙겨.” 알렉시스가 터질 듯 꽉 찬 캐리어를 내 방으로 끌고 와서 끙끙대며 내 베개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녀의 유기농 면 코르덴바지와 알록달록한 사과 그림이 찍힌 다완다독일 핸드메이드 오픈마켓-옮긴이 셔츠 한 장이 그 밑으로 보였다.
“7월에 무슨 오리털 파카야.” 내가 투덜댔다. 내 캐리어도 완전히 꽉 찼다. 하지만 대부분이 책이었다. 옷은 꼭 필요한 것만 골랐다. 책 한 권 더 빼느니 차라리 가디건 한 벌 덜 넣자! 이것이 내 모토였다.
“거기 날씨를 네가 몰라서 그래.” 알렉시스가 내 가방의 내용물을 보더니 마호가니 색 곱슬머리를 절래 절래 저었다. 밤새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빨갰다.
“이북 리더기 가져가. 그거면 되잖아.”
“『모모』하고 『오만과 편견』은 이북이 없어.”
“그건 둘 다 백 번은 읽었잖아.”
“거기 가서 백 한 번째로 읽고 싶으면?”
“에이미, 내 말 믿어. 그 빌어먹을 놈의 섬에는 책이 넘쳐난다니까. 넌 상상도 못할 거야.”
나는 하도 읽어서 너덜거리는 『모모』의 표지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나도 내 인생의 길을 알려줄 마법에 걸린 거북이를 쫓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이 필요했다. 이 책은 슬플 때 나를 위로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책이 필요했다.
알렉시스가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하던지 파카는 넣어. 알았지? 상당히 추워질지도 모르니까.”
알렉시스가 캐리어에 걸터앉아 끙끙대며 지퍼를 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하는 짓이 아냐. 거기 밖에 없어? 바람 쐬러 꼭 거기까지 가야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만 한 보트가 파도 위에서 널을 뛰었다. 바다가 보트를 이리저리 패대기치며 공처럼 가지고 놀았다. 검은 먹구름이 뭉쳐있는 하늘에서 번개가 움찔할 때마다 귀를 찢는 천둥소리와 섞여 바다가 비현실적인 잿빛 속으로 가라앉았다. 번쩍할 때마다 환해지는 그 잿빛 속으로. 바닷물은 슬레이트 색깔을 띠었고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무겁고 날카로운 재색 빗방울이 파도 위로 내리 꽂히며 물마루의 날을 세웠다. 수평선에 우뚝 솟은 가파른 해안과 그곳의 벼랑으로 사납게 밀려드는 엄청난 바닷물이 어우러지며 감동적인 장관이 펼쳐졌다. 무섭고 섬뜩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물론 너무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험한 날씨에 바로 그 손바닥만 한 보트에 내가 타고서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앉은 자리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거품이 얼굴에 튀었다. 알렉시스는 짐을 붙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보트를 몰던 선장은 연신 엔진을 돌려댔다.
느닷없이 시작된 빗줄기는 불과 몇 초 만에 우리를 홀딱 적셨다. 너무 추워서 어서 배가 당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도르트문트에서 에딘버러까지 비행기를 타고 올 때만 해도 날은 화창하여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해가 쨍쨍했다. 거기서 다시 스코틀랜드 해안 셰틀랜드 군도의 제일 큰 섬 메인랜드의 섬버그 공항까지 경비행기로 이동할 때는 구름 몇 조각이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이런 장면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소금물 탓에 눈이 쓰라려서 눈을 껌벅이던 찰나 또 한 차례 파도가 보트를 덮쳤다. 알렉시스가 하마터면 직접 만든 숄더백을 놓칠 뻔했다. 나도 배를 붙들고 있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얼음 같은 바람에 손가락이 곱아서 말을 듣지 않은지가 이미 한참 전이었다. 책에서 이런 폭풍 장면을 읽을 때는 훨씬 안락했다. 무서워 소름이 돋거나 최악의 자연재앙을 만나더라도 책을 읽을 때는 늘 어딘가 따뜻한 담요를 덮고 소파에 누운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느낌이 한 톨도 없었고, 나는 내가 소설이 아닌 진짜 폭풍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어 조금 전보다 더 매몰찬 파도가 정통으로 나를 덮쳤다. 유감스럽게도 하필 그 순간 너무 놀라 숨을 들이쉬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왈칵 입으로 들어왔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헐떡대면서 폐로 들어온 바닷물을 뱉어내는 내 옆에서 알렉시스가 홀딱 젖은 내 등을 두드렸다. 그 바람에 알렉시스의 숄더백이 바다에 빠졌다. 이런! 하지만 알렉시스는 이미 짐을 하나도 잃지 않겠다는 생각을 접은 모양으로 자기 짐을 살피지도 않았다.
“다 왔어, 에이미. 다 왔어!” 알렉시스가 고함을 질렀지만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바람이 그 말을 낚아채 가버렸다.
“우리가 원해서 온 거잖아. 스톰세이에서 꼭 멋진 휴가를 보낼 거야.” 알렉시스가 억지로 명랑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무서움을 숨기느라 오히려 숨이 가쁘고 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우린 이리로 도망 왔어.”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하지만 너무 작은 소리여서 아마 알렉시스는 못 들었을 것이다. 그녀도 나도 굳이 우리 여행의 진짜 이유를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잊기 위해서 집에서 달아났다. 도미니크가 알렉시스를 버리고 아내와 자식들에게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그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우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우리 학년의 그 미친 얼간이들을 잊기 위해서…… 아니, 그 일은 두 번 다시 떠올리지 말자고 나는 작심했다.
보트 외벽에 달린 엔진이 폭풍우와 경쟁이라도 하듯 굉음을 내질렀고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어져 내 머리와 어깨를 때리고 얼굴을 강타했다. 이젠 더 젖으려야 젖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섬이 실제로 가까워지는 것 같자 기분이 좋아졌다. 스톰세이, 우리 선조의 고향. 커튼처럼 눈을 덮은 젖은 머리카락 틈으로 해변이 보이나 살피면서도 나는 보트 선장이 혹시 배를 절벽에다 갖다 박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바위벽은 육중해보였고 모서리가 뾰쪽하여 치명적이었다. 잿빛 바다의 수면 위로 20~30미터 높게 불쑥 솟았는데 바람이 특히나 위험하게 몰아치는 제일 꼭대기의 모퉁이에, 그곳에 ……
……누군가가 서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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