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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도벽이가

그날 도벽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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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472쪽 | 128*188*30mm
ISBN13 9791125861126
ISBN10 11258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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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참아! 너 이제 1학년이야. 대선배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야이 가시나야! 너 최 선배한테 대들면 그 바닥 떠나야 해! 너희 과 선배들 하극상이라면 치를 떠는 거 이 학교에서 모르는 인간 없다고! 선배들한테 찍혀서 그 좁은 공사판 바닥에서 어쩌려고 그래!”
“야, 이 기지배 기절 좀 시켜봐! 기운 딸려서 허리 놓칠 것 같아!”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러대며 말리는 친구 세 명을 양팔과 허리에 매달고 나는 분노의 에너지를 폭발하며 캠퍼스를 가로질렀다. 수많은 시선이 집중됐지만 그따위 것에 신경 쓸 내가 아니다.
“이거 놔! 이제 못 참아! 도저히 못 참는다고!”
도둑놈을 단죄하고 이 대학을 버리리라. 꿈꾸던 대학 생활은 도둑놈 때문에 편할 날이 없다.
10월 말인데도 가을 한낮의 태양은 아침과 저녁의 쌀쌀함을 비웃는 것 같이 후끈했다. 지글지글 끓고 있는 내 뇌처럼. 친구들까지 매달고 걷다 보니 노란색 긴팔 후드와 청바지가 땀에 푹 젖었다.
마침, 공대 건물을 지나는데 도둑놈이 친구들과 나왔다.
“돌려주십시오, 선배님.”
단호한 어조와 서늘한 목소리. 폭발하기 직전의 분노가 억눌려 오싹하게 들렸다. 놀란 친구들이 후다닥 떨어져 팔을 비벼댔다.
도둑놈과 대선배 네 명이 내려오다가 두 계단 위에 우뚝 멈췄다. 놀란 얼굴로 쳐다보기만 하는 대선배들 가운데 서 있는 도둑놈에게 요구했다.
“선배님이 도서관에서 가져가신 음료수, 볼펜, 형광펜은 제 겁니다. 돌려주십시오!”
친구들 말에 의하면 2시간 전부터 도둑놈이 내 옆자리에 있었단다. 알았다면 절대 내 물건을 두고 그냥 일어나지 않았다. 도서관 한자리에 앉아 내리 세 시간 넘게 공부를 하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내 물건을 도둑맞았다. 친구들 증언에 의하면, 집에서 얼려 온 오렌지 주스 1.5리터와 볼펜, 형광펜을 아주 자연스럽게 가져가서 도둑놈 물건인 줄 착각했단다. 꽝꽝 얼어서 맛도 못 본 오렌지 주스가 이제 좀 마실 만큼 녹았는데 그걸 통째로 가져갔다. 그리고 두툼한 노트에 달랑 볼펜 하나, 형광펜 하나를 끼어서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여분도 없었다. 친구들이 사준다고 합창을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처음 본 그날부터 그는 뭔가를 뺏어 갔다. 도깨비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것을. 내 허락도 없이 말이다. 그가 돌려준 것은 없다. 단 하나도. 그것들은 쫓아다니며 돌려달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작은 것들이다. 볼펜, 지우개, 머리끈, 립밤, 손수건, 먹던 음료수까지. 그 외에 생각나지도 않는 수많은 작은 것들이지만 어쨌든 그건 내 거다.
선배의 탈을 쓴 도둑놈이 빤히 나를 내려다보다가 계단을 내려왔다. 내 앞에 선 도둑놈이 팔짱을 꼈다. 옆에서 대선배들이 싱글거리며 한마디씩 거들며 웃었지만 나는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말없이 빤히 내려다보기만 하는 도둑놈에게 그간 뺏긴 내 물건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그것이 없어서 곤란했던 상황도 설명했다. 그리고 경고했다. 앞으로 절대 내 물건을 가져가지 말라고.
저놈에게 뺏긴 지 6개월. 이만큼 참았으면 많이 참은 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과 따위 도둑놈한테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내가 말하는 동안 뚫어져라 내 눈을 쳐다보면서 집중하기에 조금 기대했다. 둘러싼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의식해서라도 오늘은 내 물건을 돌려받을 수 있겠다고. 도서관으로 돌아가면 자리가 있을까, 하고 막 생각할 때였다.
“너 성격 지랄 같구나.”
도둑놈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내뱉은 말에 내 이성이 훌떡 날아갔다.
본능만 남은 내 짐승 같은 몸이 먹이를 낚아챘다. 도둑놈의 하얀 셔츠가 피로 흥건해질 때까지 팔뚝을 물고 놓지 않았다. ‘지랄’의 끝판을 보여줬다.
그 뒤로 내 앞에서 아무도 ‘지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내가 ‘지랄’을 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닌데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건 도둑놈이다. 그 난리를 쳤으면 중단할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내 것을 가져갔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가을을 넘어 겨울 내내 코트 안에 반팔을 입고 다니면서 내 위대한 치력(齒力)을 홍보했다. 왼쪽 팔뚝에 난 선명한 잇자국 때문에 나도 돌려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도둑놈을 피해 다녔다. 나는 그놈을 ‘도벽이’라 명명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놈이 대학교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문자가 날아왔다. 완벽하게 도둑놈을 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가지 못했다. 나보다 많이 배운, 아이큐까지 높은 도둑놈의 수법은 언제나 몇 수 위였다.
‘도벽이’가 유학을 떠난 날,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모든 신께 진심을 다해, 우렁차게 포효했다.
“Thank you!”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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