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주차 월요일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子曰:“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學而篇 1.1
자왈:“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학이편 1.1
[해석]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닌가?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반갑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몰라준다고 노여워하지 않으니 덕인(德人)이 아닌가?”
유교에서는 인(仁)을 가장 중시하는데, 『논어(論語)』는 학(學)으로 시작하고 있다. 바로 다음 장에서 유자(有子)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를 존중하는 것이 곧 인의 시작이다”라며 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이 들 수 있다. 내 생각에는 공자가 사학(私學)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학을 맨앞에 둔 것이 아닐까 한다.
'학이편'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논어』 특유의 문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장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다. 공자는 이 문장에서 배움의 세 가지 측면을 이야기한다. 첫째 ‘학이시습지’가 강조하는 것은 습(習)이다. 여기서 습은 연습을 의미한다. 배운 것은 실천으로 옮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공자는 지식보다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행승어언(行勝於言), 즉 말보다 행동이 우선이라는 가르침은 『논어』 전반에 걸쳐 확실히 드러난다. “젊은이는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손해야 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믿음직스럽게 해야 한다. 널리 사람을 사랑하고 어진 이를 가까이 하라. 이렇게 하고도 남는 힘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弟子, 入則孝, 出則弟, 謹而言, 汎愛衆, 而親人. 行有餘力, 則以學文).”(學而篇 1.6)이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을 바꾸어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고, 힘을 다해서 부모를 섬기고, 몸을 다 바쳐 임금을 섬기며, 벗들과 사귐에 말이 미더우면 비록 배우지 못했다고 해도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부르리라(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末學, 語必謂之學矣).”(學而篇 1.7)와 같은 구절이 강조하는 것들도 모두 실천이다. 행동이 인과 의에 부합하면 그것이 곧 배움이요, 부합하지 않으면 그것은 배워도 배우지 않은 것과 같다.
두 번째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다. 여기서 말하는 벗(朋)은 누구일까? 주자(朱子)는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에서 벗을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같은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벗들은 어째서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을까? 정자(程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수양이 널리 퍼져 유명해지면 자연스레 따르는 자가 생겨나고, 멀리서도 그 명성을 듣고 찾아와 학문을 구하며 수양을 쌓으려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배움의 두 번째 가르침이다. 남다른 학문과 수양을 쌓아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배우고 교류하고 토론한다면 큰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핵심은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소통하며 교류하는 행위다.
세 번째는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이다. 이는 학문의 소양과 기개에 대한 말이다. 학문이 출중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지만 고처불승한(高處不勝寒)이라는 말처럼 정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내 학식을 남들이 몰라준다고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덕이 부족한 것이다.
공자는 불온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군자라고 했다. 『역경(易經)』 주해에서는 불온에 이른 사람을 잠룡(潛龍)이라 했다. 세상을 피해 숨어 살면서도 번민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아도 번민하지 않는(遁世無悶, 不見是而無悶) 사람이야말로 용의 덕을 가지고 있으면서 숨어 있는 자(龍德而隱者也)라는 것이다.
잠룡은 즐거운 것은 행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행하지 않으며, 확실히 제거할 수 없는(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其不可拔) 존재다. 이는 결국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천에 옮기고,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실천에 옮기지 않는 굳은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