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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편저자 서문 I. 기초 작업 이 장의 개요 _ 올리버 팔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_ 발터 벤야민 사회구조와 상징적 교환매체 _ 탈코트 파슨스 뜨거운 매체와 차가운 매체 _ 마샬 맥루언 커뮤니케이션의 비개연성 _ 니클라스 루만 매체학(Mediology)을 위하여 _ 레지 드브레 II. A, B, C... 이 장의 개요 _ 클라우스 피아스 구두음과 문자기호 _ 에릭 A. 해블록 구술성과 문자성 _ 월터 옹 언어 _ 마르틴 하이데거 책의 종말과 문자의 시작 _ 자크 데리다 알파벳에서 컴퓨터까지 _ 데릭 드 커코브 III. 길, 채널, 전송 이 장의 개요 _ 로렌츠 엥엘 공간의 문제 _ 해롤드 이니스 커뮤니케이션망: 페넬로페 _ 미셸 세르 탈것 _ 폴 비릴리오 전화하기의 제스처 _ 빌렘 플루서 신호에서 의미로 _ 움베르토 에코 IV. 대중-매체-문화 이 장의 개요 _ 브리타 나이첼 문화산업 개괄 _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유령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 _ 귄터 안더스 쇼 비즈니스의 시대 _ 닐 포스트먼 텔레비전의 순간들 _ 존 피스크 출전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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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 분야에는 대가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당 분야의 근본 방향을 규정하는 문제들의 윤곽을 그려내고 주요 질문들을 구상한 저자들이다. 또는 현재의 학문적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방법론적 도구들을 마련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결국 대가란 학문 영역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위의 첫 번째 항목이나 두 번째 항목에서, 혹은 두 항목 모두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받은 저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식 표현을 쓴다면, 학파를 세운 사람들이 대가인 것이다. --- p.23
가장 완벽한 복제에서도 한 가지는 빠져 있다. 그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 즉 예술작품이 놓여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성이다.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이러한 일회적인 현존성에서 그 작품이 존재하는 동안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이 역사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작품의 물질적 구조에 일어난 변화들뿐만 아니라 그것이 편입된 소유관계의 변화도 포함된다. 물질적 구조에 일어난 변화의 흔적은 복제품에서는 행해질 수 없는 화학적 또는 물리적 방식의 분석을 통해서만 발굴될 수 있으며, 소유관계에 일어난 변화의 흔적은 원작(Original)이 있는 장소에서 추적해야 하는 어떤 전통의 대상이다. --- p.35 아우라 개념을 자연적 대상의 아우라 개념을 예로 들어 설명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으로 자연적 대상의 아우라를 정의한다. 어느 여름날 오후 지평선에 보이는 산맥의 줄기 혹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자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뭇가지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 - 이는 이 산맥, 이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이러한 묘사에서 우리는 오늘날 아우라의 붕괴를 일으킨 것이 사회적 여건들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우라의 붕괴는 오늘날의 삶에서 날로 중요해지는 대중과 연관된 두 가지 사정에 기인한다. 즉 사물을 공간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자신에게 더 ‘가깝게 끌어오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이 지닌 열렬한 관심사인데, 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통해 극복하려는 대중의 경향이 그러한 관심사를 나타낸다. --- p.39 강렬함 혹은 고밀도는 오락과 생활에서 모두 전문화와 세분화를 초래했는데, 이는 왜 모든 깊은 체험이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수용되기 위해서는 일단 ‘잊혀지고’ ‘검열을 받고’, 매우 차가운 상태로 변화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프로이트 식의 검열은 도덕적 기능이라기보다는 학습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다양한 의식 영역에 가해지는 모든 충격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송두리째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우리는 즉시 정신지체를 동반하는 신경쇠약에 걸려, 매 순간 사출좌석의 단추를 눌러대게 될 것이다. ‘검열’은 우리의 생리학적 신경체계를 지켜주듯이, 중심적 가치체계도 보호한다. 그것도 경험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경험을 냉각시키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통해서 이를 성취해낸다.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냉각체계는 평생 동안 일종의 사후경직(Tottenstarre)이나 몽유병의 상태를 초래하는데, 이러한 상태는 특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시기에 잘 관찰된다. --- p.73 매체학의 요구는 분리를 폐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벡터와 가치의 상호교차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 목표는 이데올로기를 탈이데올로기화하고, 신성한 것을 탈신성화하는 것에 있으며, 그리고 역으로 물질적 운반체를 정신화하고, 우리의 도구를 심리화하는 데 있다. 또한 동일한 운동 안에서 우리의 기억기술 장비를 정신화하고, 우리의 정신적 장치를 테크놀로지화하는 데 있다. --- p.119 고대나 원시시대의 구술성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새로운 문자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문자의 세계란 무엇이며, 문자화된 인간이란 원래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자화된 인간이란 사고 과정이 단순한 자연적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는 기술로 각인된 방식에서 형성되는 존재를 말한다. 문자화된 의식은 문자가 없다면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생각을 구술할 때도,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쓰기는 다른 어떤 발명보다도 인간의 의식을 더 많이 변화시켰다. --- p.151 우리는 이제 더는 정보의 시대가 아닌,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사회’나 ‘정보문화’와 같은 형식적인 말들은 매우 기억하기 쉽지만,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컴퓨터는 정보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 자극들을 조작하는데, 이것들은 기본적인 작동방식에서 본다면 신경 시스템의 자극들에 비견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게 통용되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비유들은 신경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전신에서부터 인공위성까지 과학기술적 감성의 지구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정보 개념(이것은 어떤 인간적 경험을 ‘의미’로, 또는 언어와 유사한 형식으로 바꾸어놓은 것의 결과를 지칭한다)과 커뮤니케이션 개념(이것은 훨씬 포괄적이며 또한 강제되지 않은 채로 어떤 의미론적 독해작용을 거치는 일종의 교환 과정을 의미한다), 이 두 개념을 구별하는 일이다. --- p.186 길가에 서 있는 자동차는 네댓 명이 앉는 소파와 다름없다. (…) 그러나 그것이 출발해서 전속력으로 도시의 거리를 달릴 때, 가구이기를 그치고 입구가 열리기 시작할 때,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사실 자동차는 일종의 영사기다. 우리가 스위치로 속도를 조절하는 영사기. 그런데 이렇게 스위치를 작동시키는 것, 속도의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속도의 의미와 중요성을 전혀 모른다. 하나의 이동 상태에서 다른 이동 상태로 옮겨갈 때 우리는 그러한 상태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어떤 목표, 어떤 장소를 향해 가고 지나온 노정의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속도와 가속화가 일어나는 ‘지금 이곳’은 우리를 벗어나 있다. 그것이 우리가 횡단해온 풍경의 이미지를 가장 강력하게 규정하는데도 말이다. --- p.264~265 대중매체가 왜 수십 년간 (매체--- p.)문화의 요소라기보다는 비--- p.문화(Un--- p.Kultur)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가능한 원인을 들 수는 있다. 그 하나는 여기 어떤 특정한 문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개념은 오랫동안 의문시되지 않은 채 시민적인 고급문화의 산물들과 연관되어왔고, 문명의 개념과 구분되었다. 이런 산물들의 독창성과 유일성은 언제나 동시에 재생산 매체이기도 한 대중매체의 공격을 받으며, 이런 산물들은 특정 지역에 생존하는 희귀종 같은 존재로 밀려나게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문화 파괴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매체문화와 대결하게 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개인적인 놀라움이 특별한 사회활동에 참여하도록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논의되는 것은 매체철학이나 예술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매체의 편재성 - 달리 표현하면 일상 - 이기 때문이다. 즉 매체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규정하며 모든 순간 현존하는 그 일상, 그리고 매체가 매일 변화시키면서 또 그 안에서 모두와 끊임없이 마주치는 일상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 p.313~314 상호텍스트성은 텔레비전만의 고유한 속성은 아니지만, 바로 여기에서 고유하고 특수한 방식으로 기능을 발휘한다. 문화가 상호텍스트성의 연결망이고, 모든 텍스트는 오로지 그리고 항상 다른 텍스트를 지시하며, 이 지시성은 결코 궁극적인 실재에 가닿지 못한다는 바르트의 사상은 우리의 문제와 관련된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이것은 재현된 사건이나 인물이 상호텍스트적 관계의 개념성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예컨대 범죄드라마에 그려진 ‘살인’은 뉴스나 신문에 보도된 다른 살인사건이나 소설, 영화, 연극, 동화 등에 그려진 살인사건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상호텍스트적 의미의 연결망으로서의 문화는 장르의 경계나 매체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 p.3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