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우리의 만남은 무척 특별한 것이었죠. 운명적인 만남이었어요. 만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만남은 약속된 것이었죠. 우리가 전생에서 서로를 알고 있었다고 당신은 느끼고 있지요. 나도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 무척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당신과 만나면 기뻐서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 요코, 당신은 자신이 전생에서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했을 거라고 했죠. 전생에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 무엇이든, 요코, 관계는 수복되었어요. 당신은 나, 니키 드 생팔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장남 다이스케가 태어났다. 씩씩한 남자아이였다. 아버지 아라에도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된 시즈에는 당혹스러웠다. 쓰지와 함께 살면서 주부 노릇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요리와 청소 같은 집안일은 어려웠다. 여기에 아이까지 태어났다. 시즈에의 어머니는 시즈에가 아홉 살 무렵에 세상을 떠났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시즈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육아에 관한 책도 보는 둥 마는 둥했다. 쓰지는 아이를 보는 일을 전혀 돕지 않았다.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대끼다 보니 본래 지녔던 적극적인 성격은 사라졌다. 결혼을 위해 도망쳤고, 병이 났고, 하는 일마다 안 풀렸다. 무슨 일에도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 거리를 걸으면서도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1978년, ‘여성들의 영화제’가 요쓰야 공회당에서 열렸다. 이걸 보러 갔던 시즈에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시즈에가 본 것은 《남자처럼 해 보는 거야!》(1975년)라는 덴마크 영화였다. 육아를 끝낸 쉰 살의 전업주부가 여자와 남자의 역할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갖고는 직업을 구하고 시위에 참가하며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시즈에는 이 행사를 주최한 여성들, 행사에 모인 여성들과 공감했다.
외국 서적을 파는 서점에 카드를 보러 나갔는데 근처에 갤러리가 보이기에 별 생각 없이 들어섰다. 거기서 한 장의 판화를 보았다. 배경이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림 속의 여자가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왜곡된 여성의 몸과 뱀, 입술과 하트, 손, 태양. 모두가 선명한 색채로 화면 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시즈에는 그 판화에 끌려가듯 다가갔다. 주변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UFO의 광선이 내려와서 둘러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혼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강렬한 체험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갑자기 해방되고 에너지로 가득 차는 것 같은 만남이었다.’
얼마 동안이나 서 있었을까. 시즈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 굳어 있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제목을 보았다. 〈연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이 판화의 작가는 누구죠?” 상기된 목소리로 직원에게 물었다. “니키 드 생팔이라는 아티스트입니다.” 시즈에는 곧바로 말했다. “이 분의 작품을 전부 살게요.” (…) 갤러리에는 그밖에도 몇 점의 판화와 자그마한 입체 작품이 있었다. 전부 꺼내 달라고 했다. 모티프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넓게 보면 모두 여성의 세계를 다루었다. 남자들이 만든 세계를 깨부수는 자유의 여신 같았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 니키 드 생팔이라는 예술가와의 우연한 만남이 시즈에의 내부에서 고루한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유로움과 정열을 불러일으켰다.
날마다 작품을 바라보고 카탈로그를 넘겨보면서 갖가지 의문이 생겼다. 사랑과 자유가 가득 담긴 여유만만한 〈연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는 1968년 작품인데, 이보다 앞선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은 오히려 흐물흐물하고 그로테스크했다. 그런 작품과 니키의 빼어난 미모는 강렬하게 대비되었다. 미녀가 총을 들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쐈다. 패널에는 갖가지 오브제가 붙어 있다. 교회, 심장, 괴물, 남성, 창녀 등을 나타내는 모티프다. 이들 곁에는 물감 주머니가 달려 있어서, 이걸 총으로 쏘아 맞히면 물감이 작품 위로 흩뿌려진다. 알제리 전쟁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가부장제와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보수적인 가치관을 향한 비판이 담겨 있다. 작품과 니키 자신의 폭력적인 관계 방식과 그 ‘사격 회화’의 처참함에 전율했다.
니키는 1930년생으로, 시즈에와는 겨우 한 살 차이였다. 귀족 혈통의 프랑스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929년의 세계 대공황으로 아버지가 파산하여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머니가 니키를 임신했던 동안에 아버지의 불륜이 발각되었다. 어머니에게 니키는 ‘파산과 남편의 외도를 가져다 준’ 반갑지 않은 딸이었다(자서전에 따르면 11세 무렵에 부친에게 성적 학대도 받았다). 니키는 19세에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도망쳐 결혼했다. 두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과는 이혼했다. 출산 뒤에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입원했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치유를 위해 그림을 시작했다가 예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경력이다. 니키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줄곧 싸워 나갈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붉은 마녀〉는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미술관의 컬렉션에 들어왔다. 붉은 하이힐을 신은, 온몸이 새빨간 마녀의 가슴에는 뻥하니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속에서 새파란 심장이 요동친다. 오른쪽 다리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 속에서는 해골이 아이를 잡아먹고 있다. 무섭고 기괴한 작품이다. 하지만 가슴 한복판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요코는 끔찍스러워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것이야말로 니키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니키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요코의 인생을 바꿔 버렸으니 벌을 받을 거야. 다음 생에서는 당신이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되고 나는 당신의 매니저가 될 거예요.” 요코가 즐거워하며 받았다. “맞아.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전생에 당신은 마녀였고 나는 당신을 화형에 처한 재판관이었어요. 그러니까 속죄하기 위해 이번 생에 당신의 미술관을 만든 거예요. 다음 생에는 당신이 내게 봉사할 차례야.” ‘니키, 약속이야. 다음 생에 꼭 만나요.’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