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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뜬다

태양은 다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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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1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90g | 153*224*30mm
ISBN13 9788984315372
ISBN10 8984315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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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이니.”
- 거트루드 스타인(저자와의 대화 중에서)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건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다시 뜨고 다시 지며, 뜬 곳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바람은 남으로 갔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빙빙 돌고 돌아 그 가던 길로 돌아온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으며, 강물이 비롯된 곳으로 돌아간다.”
- 전도서(1:4~1:7)
---p.9

로버트 콘은 한때 프린스턴 대학의 미들급 복싱 챔피언이었다. 내가 권투 타이틀에 대단한 인상을 받았다고 생각진 마시기 바란다. 하지만 콘에겐 그게 퍽 중요했다. 그는 권투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싫어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권투를 괴로워하면서도 철저히 배운 건, 프린스턴에서 유대인 취급을 당하면서 느낀 열등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자는 누구든 때려눕힐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p.13

그녀(브렛)는 잔을 들고 서 있었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로버트 콘을 보았다. 그는 그의 동포가 약속의 땅을 봤을 때 지었음 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콘은 훨씬 젊었다. 하지만 기대감 충만하고 자격이 있다는 듯한 표정은 꼭 그대로였다.
브렛은 더없이 맵시가 좋았다. 저지 스웨터에 트위드 스커트, 그리고 소년처럼 짧은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차림이었다. 전부 그녀가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경주용 요트의 동체 같은 곡선들을 갖추고 있었고, 딱 붙는 저지 스웨터라 그런 선이 고스란히 다 드러났다. ---pp.36~37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해묵은 유감이었다. 이탈리아 같은 시시한 전방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는 것부터가 한심한 노릇이었다. 나는 온몸이 붕대투성이였다. 대령은 나에 대한 얘기를 듣고 와서 대단한 발언을 했다. “외국인이, 영국인이.” (외국인은 무조건 영국인이었다.) “목숨보다 더한 걸 내놓았구려.” 경이로운 말씀! 금문자로 장식을 해서 사무실 벽에 걸어뒀으면 좋겠다. 그는 웃지도 않았다. 내 입장이 되어본 모양이었다. “케 말라 포르투나(참 안됐어)! 케 말라 포르투나!”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사람들에게 문젯거리가 되지는 않으려고 맞춰가며 지냈다. 영국으로 후송되어 브렛을 만나게 되지 않았더라면, 아무 문제도 못 느꼈을지 모른다. 그녀는 가질 수 없는 것만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뭐, 사람들이 대개 그렇긴 하다. 사람들하곤. 가톨릭교회는 그런 문제를 참 잘도 다룰 줄 알았다. 훌륭한 조언이긴 했다. 마음 쓸 것 없다니. 정말 대단한 조언 아닌가. 언젠가 받아들여 보라니. 받아들여 보라. ---pp.48~49

“그대는 고국이탈자야. 땅과의 접촉을 상실했어. 너무 고급이 돼버렸고. 가짜 유럽 표준 때문에 망쳐버렸어. 죽도록 술 마시고, 섹스에 사로잡히지. 일은 안 하고 말만 하면서 시간을 다 보내. 그런 고국이탈자 맞지? 이 카페 저 카페 전전하고 말이야.” ---p.158

나는 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했다. 값을 치르고 또 치르는 그녀와는 다른 줄 알았다. 응보나 징벌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은 못 했다. 가치의 교환만 있는 줄 알았다. 무언가를 포기하면 다른 무언가를 얻는다고 생각했다. 노력만 하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조금이라도 유익한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값을 치르고서 얻을 수 있다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충분히 많은 것들에 대해 값을 치렀고, 그만큼 즐기기도 했다고. 그런 것들에 대해 배운다거나, 경험을 한다거나, 위험을 무릅쓴다거나, 돈을 들임으로써 값을 치렀다고 생각했다. 본전 찾는 법을 배운다는 것, 그리고 본전 찾은 줄을 안다는 것이라고. 본전을 찾을 수 있다고. 세상은 잔뜩 사들이기 좋은 곳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게 그럴듯한 철학처럼 여겨졌다. 5년 뒤면, 나의 다른 그럴듯한 철학들이 다 그랬듯 어리석어 보일 테지만 말이다.
내 생각과 달랐는지도 모른다. 겪어가면서 정말 무언가를 배운 건지도 모른다.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뿐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발견했다면,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pp.203~204

로메로에겐 뒤틀림이 전혀 없었다. 그의 몸놀림이 그리는 선은 언제나 곧고 깨끗하며 자연스러웠다. 다른 투우사들은 코르크를 뽑는 나사처럼 몸을 비틀었고, 팔꿈치를 들었으며, 소가 지나가면 소의 옆구리에 기댐으로써 위험해 보이는 시늉을 했다. 그런 속임수는 결국 가짜로 드러나기 마련이며,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로메로의 투우는 순전한 감동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동작의 선을 언제나 깨끗하게 유지했고, 매번 소의 뿔이 그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풰 하면서도 차분하고 평온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근접해서 소를 상대한다는 느낌을 주려고 동작을 과장할 필요가 없었다. ---p.229

“브렛 어딨어?” 콘이 물었다.
“몰라.”
“너랑 같이 있었잖아.”
“자러 갔겠지.”
“아냐.”
“어디 있는지 난 몰라.”
조명 아래에서 콘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그는 계속 서 있었다.
“어디 있는지 말해.”
“앉아.” 내가 말했다. “나는 모른다니까.”
“모르긴 뭘 몰라!”
“잠자코 계시지그래.”
“브렛이 어디 있는지 말해.”
“그딴 소리 하고 싶지 않아.”
“넌 알고 있어.”
“알아도 말 안 해.”
“어이, 지옥에나 가버려, 콘.” 마이크가 테이블 맞은편에서 말했다. “브렛은 투우사 친구랑 어디 갔어. 둘은 허니문 중이야.”
“닥쳐.”
“허, 지옥에나 가!” 마이크가 나른하게 말했다.
“맞는 말이야?” 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지옥에나 가!”
“너랑 같이 있었잖아. 딴 데 간 게 맞아?”
“지옥에나 가!”
“말하게 만들어주지.” 콘이 다가오며 말했다. “이 더러운 포주야!”
나는 한 방 휘둘렀고, 그는 홱 피했다.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이 옆으로 쓱 비켜나는 게 보였다. 그는 나를 쳤고, 나는 인도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어서려고 하자, 그는 나를 다시 쳤다. 나는 뒤로 나자빠지며 테이블 밑에 처박혔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리가 없어져버린 느낌이었다. ---pp.259~261

그 정도면 될 것 같았다. 그런 것인가. 한 여자를 딴 남자와 떠나보내고. 그녀를 또 다른 남자와 떠나보내고. 이제 그녀를 데리러 가다니. 그리고 사랑한다며 전보를 보내다니. 아무튼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p.326

“아, 제이크.” 브렛이 말했다. “우리 함께 정말 잘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앞에서는 카키색 제복 차림의 기마경찰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경찰봉을 들어 올렸다. 차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자 브렛이 내게 밀착됐다.
“그래.” 내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지?”
---pp.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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