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설화,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라틴아메리카 구전 전통의 채록 작업은 500년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흐름이 연속성을 띠지는 못해서 두 시기가 존재한다. 첫 번째 시기는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 수십 년에 걸친 식민지시대 초기이며, 또 다른 시기는 20세기이다. 두 시기 사이에는 기록자와 자료 수집자들의 활동이 뜸해졌던 거의 300년의 세월이 존재한다. (이야기꾼들이 이야기를 끝마칠 때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바람이 앗아 간 세월이었다. 그래서 두 시기는 비교 불가능하다. 첫 번째 시기는 식민지시대 초기이자 개종의 시대인 반면, 두 번째 시기는 사회과학의 발전과 낭만적 민족주의의 흔적이라는 비교적 최근의 두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각각 선교사들과 민속 연구자들에 의한 이 상이한 기획들은 내용과 문체에서 상이한 결과를 낳았다.--- p.21
20세기에는 구전 이야기 채집자들이 잠에서 깨어나 유럽 이야기들 - 예컨대 공주를 얻는 가난한 청년이라는 플롯을 지닌 이야기들 - 과 전능한 군주 이야기들의 표준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 식민지시대 선주민 이야기들도 군주들이 토착민 옷만 입고 있을 뿐이지 플롯은 유사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많은 곳에서 선주민 군주가 숨어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복의 연대기들의 전통적인 언어를 다시 듣고 있기라도 한 듯, 토착민들의 민간신앙에서 ‘군주’는 생포, 처형당하거나 땅속에 숨어 버린 아스라한 인물이며, 해방자로 다시 태어나거나 재출현한다.--- p.24
20세기가 진행되면서 설화 연구가들은 점점 더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야기꾼에 대한 정보도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리하여 라라 피게로아가 “이야기의 삶”이라고 부른 것, 즉 사회적 맥락이 보존되게 되었다. 20세기, 특히 초반 수십 년간의 대부분의 설화집은 그 중요한 사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적어도 몇몇 경우는 이야기꾼의 이름을 알 수 있기는 하다. 그래서 아무개는 남성의 시각을, 바르바라라는 여자 이야기꾼은 여성의 견해를 보여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끔 필요에 따라서는 이야기꾼을 사회의 반향으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 인적 사항을 숨기기도 했다.--- p.33
놀랍게도 여성 연구자들은 남성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채집에 어려움이 덜했다. 여성 민속학자 일레인 밀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에스파냐어 이야기를 요청하기 위해 가가호호 초인종을 누르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에게 가장 훌륭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남성들이었다. 어떤 남성은 녹음기가 작동하자 매너를 발휘하여 다음과 같은 서설을 늘어놓았다. “나는 밀러 양이 자신의 책에 … 이 이야기를 넣기를 원하기에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그러고 나서 시작한 이야기가 이 책의 10번에 해당하는 「생매장」이다.--- p.38
정복의 역사는 라틴아메리카의 근간이 되는 역사이다. 주로 멕시코와 페루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국경을 넘어서는 공통의 유산으로 공유되고 있다. 세계사에는 이에 견줄 만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이처럼 심각한 문화 간 충돌, 그 결과 빚어진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상실을 다루는 이야기는 없다.--- p.43
초상집에서 이야기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잠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다고 말한다. 초상 절차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망자의 혼령은 저승을 향해 길을 떠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지만, 더 진지한 구전 전통 이야기들은 혼령이 반쯤 잠든 조문객의 몸 안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심오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어울려 음식, 술, 놀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상을 치르는 데 도움을 준다.--- p.87
20세기에는 히스패닉의 영향에 대항하여, 아메리카 토착민 전통에서 기원한 이야기 문학이 꽃을 피웠다. 이는 사후(事後) 평가가 아니다. 실제로 뉴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역에서 그러한 문학이 만개했다. 인류학자들은 구대륙에서 이식된 전통에 관심을 갖고 민속을 연구하는 한편, 잘 알려지지 않은 토착민들의 문화를 지속적으로 기록했다. 이렇게 채록된 이야기는 식민지시대에 에스파냐어로 기록된 것보다 훨씬 많았다.--- p.517
「집기의 반란」이라는 신화는 불완전한 인간 종족이 사라진 대지, 즉 문화적 파괴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음식을 조리하는 냄비, 접시, 맷돌, 무기 등의 집기가 반란을 일으켜 주인을 살해함으로써 세계는 자연 상태로 되돌아간다. 비록 이 이야기는 현재까지 발굴된 마야 토기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와 유사한 이야기가 페루의 고대 냄비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다리가 달린 집기가 화가 치민 얼굴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그림이다. 이 책에 실린 볼리비아 타카나 선주민의 집기 이야기에서는 집기가 사물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며 장난을 치고 있는데, 이는 미약하나마 자연과 문화 사이의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전쟁에서는 문화가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 p.519~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