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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빼앗긴 밤 세트

탐, 빼앗긴 밤 세트

[ 전2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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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838쪽 | 140*210*60mm
ISBN13 9788929828882
ISBN10 8929828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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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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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봐요.”
준이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누군지, 나와 어떻게 결혼을 했고 왜 헤어진 건지, 당신의 과거와 현재, 모든 것이 나에게는 중요합니다. 우시연이라는 여자의 존재 자체가 내게 무엇보다 큰 의미란 뜻이죠.”
“…….”
“당신은 지금까지 날 괴롭혀 오던 꿈이 망상이 아니라는 증거고 내 기억을 되찾아 줄 열쇠이기도 합니다. 당신을 만난 후 꿈이 달라졌으니 틀림없어요.”
“꿈이…… 어떻게 달라졌는데요?”
잠자코 듣고 있던 시연이 머뭇머뭇 물었다. 준은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것을 묻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는 그의 꿈에 대해. 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시연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좀 더 뚜렷해지고…….”
빠져들 것만 같은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했다.
“좀 더 선명해졌죠. 향기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시연의 목덜미에 입을 맞출 듯 가까이 다가섰다. 꿈에서 느낀 향기와 같은지 느껴 보려는 듯한 몸짓에 시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 남자의 온몸에서 흐르는 특유의 분위기가 그녀를 압도하고 있었다.
준은 시연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녀에게선 가을 냄새가 났다. 달콤하면서도 쓸쓸한 열매의 향기. 그 향기에 취한 듯 준이 눈을 지그시 내려 감았다.
“이 향기가 맞아요.”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처럼 약간 허스키한 중저음의 보이스가 귓가에 깔렸다. 시연은 옴짝달싹 못하고 거미줄에 묶여 버린 것 같은 느낌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로버트 준 테일러라는 남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면서도 또다시 그에게 휩쓸려 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두 번은 안 돼. 이 손을 뿌리쳐야 해.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준이 고개를 살짝 들어 시연의 눈을 바라보았다. 머리칼을 넘겼던 손이 턱을 가볍게 쥐자 전기를 맞은 듯 찌르르 몸이 울렸다.
“말해 줘요. 거짓말까지 해 가며 날 속인 이유.”
“말할 수 없어요. 아니, 당신은 알 자격이 없어요!”
“과거에 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요?”
“…….”
시연은 결코 대답할 수 없다는 듯 왼손으로 입을 막았다. 얼굴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하얀 손이 의지를 품고 그녀의 입술을 가로막고 있었다.
“말 못해요.”
“그래요, 그럼.”
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대신 한 마디만 해 줘요. 꿈에서 당신이 내게 했던 말.”
그의 목소리는 잔잔했으나 시연의 마음엔 폭풍이 불었다. 시연은 그가 원하는 말이 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시연을 찾아왔던 첫날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 ‘사랑해요’. 준의 꿈에 나타난 자신은 항상 그 얘길 속삭였다 했다. 지금 나한테 그 말을 해 달란 거야?
“응? 다시 한 번 말해 줘요. 확인하고 싶어.”
준의 뜨거운 시선이 끈적하게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다. 시연은 그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난 그쪽을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 말을 해요?”
“그럼 그때는 날 사랑했어요?”
그의 눈빛이 너무 강렬하여 시연은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을 느꼈다. 목젖까지 차오르는 백만 가지 말을 꾹 눌러 담은 그녀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뇨.”


“……못 놓겠어.”
“이거 놔요! 날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요. 당신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는 내가 혐오스럽고 끔찍해요. 그러니까 놔 줘요.”
“당신은 나 없이 살 수 있어요?”
“지금까지 내 곁에 당신이 있었던 순간보다 그렇지 않은 순간이 더 많았어. 그래도 살아왔고 어쩌면 지금보다 행복했어요. 당신 없이 살 수 있냐고요? 네, 그럴 수 있어요.”
……죽지 못해 살아가는 기분, 아빠가 돌아가신 후 매일같이 느껴 왔던 거니까!
시연은 뒷말은 내뱉지 않았다. 준의 손을 거세게 뿌리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가 다시금 손목을 움켜쥐었다. 아까보다 강한 악력이었다. 손목 전체를 잡아챈 그로 인해 트렁크 가방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우당탕탕탕, 탁! 데굴데굴 계단을 굴러 떨어진 트렁크 가방이 1층과 2층 사이 층계를 나뒹굴었다. 싸구려 가방이라 그런지 플라스틱 귀퉁이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짓이에요? 이럴수록 더 도망가고 싶어지는 거 몰라요?”
“난 못하겠어요.”
“준……!”
“당신을 잃으면 죽을 것 같다는 공포,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쩌라고? 당신 없인 도저히 살아질 것 같지가 않은데 대체 날더러 어쩌라고!”
센서등이 다시 꺼졌다. 계단을 가득 채운 어둠 속에서 준은 그녀의 손목을 움켜쥔 채 그대로 서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그녀를 끌어안고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
“당신을 잃을 바에야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게 낫겠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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