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사파티스타 봉기로부터 촉발된 사건들은 신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고,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는 밀접한 동반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섣부른 진단은 잘못된 것이었으며, 수세에 몰린 좌파는 기껏해야 시장경제와 대의민주주의의 변주를 탐색할 것이라는 예측도 잘못된 것임을 일찌감치 보여 주었다. 이 책의 각 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진단과 예측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는 좌파운동들, 정당들, 자치정부와 중앙정부들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증가하고 있으며 세력도 강화되고 있다. 오늘날 자칭 좌파 혹은 ‘진보’ 성향의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쿠바, 칠레, 에콰도르, 니카라과, 우루과이, 베네수엘라를 통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고타와 멕시코 시부터 몬테비데오, 카라카스, 로사리오, 산살바도르, 벨루 오리존치 같은 중요한 도시를 통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좌파 사회운동이 여러 나라에서 핵심적인 정치세력이 되었는데, 가장 두드러진 경우가 볼리비아, 에콰도르, 멕시코의 원주민운동,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아르헨티나의 실직노동자와 피케테로스(piqueteros) 활동이다. --- p.26~27
이 책의 목적에 부합하는 신좌파는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근의 것이기 때문이지 앞선 것들보다 더 좋거나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새로운 것을 묘사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앞선 것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신좌파를 특징짓기 위해서는 구좌파와의 연속적인 요소들(즉 둘 모두를 좌파로 묘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구좌파와 신좌파를 구별하는 특징들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첫번째 과제와 관련해서, 이 글의 명확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노르베르토 보비오(Norberto Bobbio)의 우파와 좌파에 대한 고전적 구별에 의존한다. 보비오의 구별에 따르면, 좌파가 수평적 사회관을 토대로 (계급, 젠더, 인종/종족 집단 등) 개인과 집단 사이의 평등을 촉구한다면, 우파는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을 방어하기 위해서 사회적 위계질서를 긍정한다. --- p.31~32
따라서 사회운동은 단순히 국가적 행위를 방해하거나 ‘아래로부터 압력을 행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회운동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함으로써 사회적 세력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 양상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를 더 용이하게 하고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민감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대의 형식을 변화시킴으로써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앞에서 이미 언급한 비개혁적 개혁의 개념과 변화의 대상으로서의 민주주의의 개념에서 바라보면 사회운동과 국가의 관계는 변증법적 관계이다. 이 때문에 사회운동과 국가의 상호작용 방식은 국가의 제도적 역량과 그것의 전략적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대안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힘과 능력을 결정하는 데도 중요하다.
--- p.76
환경존중 및 지속가능성 개념을 바탕으로 한 발전에 대한 공약은 아주 자주 농산업의 헤게모니와 충돌했는데, 정부는 언제나 농산업 부문, 공격적이고 환경파괴적인 부문들에 투자하는 국내 및 다국적 기업들의 이익을 편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의심의 여지 없이, 룰라 정부가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승인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에 토지개혁에 찬성하는 무토지농민운동과 그 밖의 농촌사회운동들의 수많은 투쟁들은 룰라 정부의 소극적인 시각 앞에서 이 농산업부문에, 특히 농업에 투자된 거대농업자본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 p.86
우루과이, 구체적으로 몬테비데오는 스페인이나 다른 이베로아메리카 나라들과 비교할 만한, 주민이나 지역에 기반을 둔 사회조직의 전통을 갖고 있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의 잣대로 보면, 우루과이 시민사회는 역사적으로 강하고, 잘 조직화되었다. 즉 이 나라의 사회 자본을 구성하는 여러 단체들 가운데 노동조합, 학생회, 협동조합, 스포츠클럽, 인권단체 등이 명백히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단체들은 지역적 관심보다는 오히려 부문적 관심에 따라 조직되고 발전하였다. 좌파 지도자들은 대다수 몬테비데오 주민들의 주요한 정체성이 주민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 - 또는 많은 경우에 단순히 투표자 - 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좌파 정당, 노조, 학생단체 또는 주택협동조합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진 많은 활동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나 시 행정에의 시민적 참여를 제고하는 문제가 완전히 새로운 다른 도전이고, 자신들은 이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 p.199~200
따라서 해방의 길은 반드시 동일한 길을 따를 필요는 없다. 1960년대의 근대화 모델은 착오였다. 그 모델은 성장시대의 메커니즘 뒤에 있는 허위이고, 북(el Norte)의 역사적 경험에서 유래한 보편적 유효성으로 무장한 사회조정자를 창조하는 어리석은 실수이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의해 추동되고, 어느 곳이나 적용되었던 구조조정계획의 전지전능한 방식,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교리문답서이다. 또한 다른 주민의 다양한 역사, 사회구성 그리고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들에게 되풀이되는 모델을 적용하고자 했던 좌파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역사사회학의 끝나지 않는 논쟁에서는, 다양한 시민사회, 토지소유, 교회 영향력의 지속, 농민과 프롤레타리아의 구성비율, 후견인 네트워크의 절속, 외부 영향, 노동 조직의 단결 등이 어떻게 국가권력의 전제적 사용에 대한 민중의 대응을 조건 지었는가를 이야기해 왔다.
--- p.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