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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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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28g | 128*205*20mm
ISBN13 9791130813486
ISBN10 1130813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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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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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일(赤日)

해 지기 전에 리어카 좀 끌고 오니라
포대도 몇 개 더 가져오고
병실 천장을 노려보며
고추를 따시더니
나는 총대 세울랑게
너는 밭 가상에서 나물이나 뜯어라
인삼밭을 꾸리시더니

사경에 드신 아버지!

기저귀가 짓무르도록 검푸른
유언을 써놓고
천장에서 흙이 쏟아진다 사다리 좀 가져와라
천장을 노려보며
시치미 뚝 뚝 떼시더니

적일(赤日)이 되신 아버지!

당신이 두고 가신 밭으로
내려오셔서
농산물들을 어루만지시네요


호박꽃 엄마

고추밭 가상
호박꽃 엄마
환하게
웃고 있네

잔가시들 재운 몸으로
노란 꽃등 켜놓고
새끼들 앉을 자리
치우고 있네

엄마, 난 언제 커?

치마폭이 안고 있던
애동대동한
애호박이 말문을 여네

쉬잇, 도둑 들라!

호박꽃 엄마
노란 꽃등을 끄며
치마폭에
새끼들을 숨기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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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전체에 통째로 마음을 내어주는 모습이 시의 전편에 넘쳐 아우성친다. 온 세상이 사랑으로 맺어진 피붙이다. 혈연을 이루는 아버지나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나 어머니가 일하고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농사일의 모든 것 속에까지, 그리하여 부모들이 가꾸는 채소와 과일들이 그 사랑으로 여물고 익어가고 있다. 또한 그것들을 먹고 나누며 사랑으로 충전되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때로는 구럼비로, 때로는 촛불 광장으로, 때로는 저 먼 나라 아메리카로 동남아시아 노동자로 쉴 새 없이 이동한다. 중요한 것은 그 넘침과 보살핌이 사랑의 마음으로 결곡하게 새겨진 언어 속에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 시집은 유순예 시인의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큰 사랑이 어디까지 관통하며 어디에서 머뭇거리며 어디에서 눈물짓는지를 진정성을 거느리고 있는 ‘담백한 솔직성’과 함께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마침내 실현된 시로 세워진 사랑의 왕국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볼 수 있는 구체적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답고 크다.
- 강형철 (숭의여대 교수, 시인)
이 시집을 관통하는 시어는 크게 보아 꽃과 혀로 보인다. 속도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의 세계를 탐방하면서 일구어낸 유순예 시인의 꽃들은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않고, 혀들은 침묵하는 법이 없다. 시인의 꽃은 강인하다. 지천에 피어 있지만 아무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생성된 미지의 세계, 세계의 무관심에서 태어난 대지, 여기가 시인의 전장이다. 주변의 세계라 불리는 공간과 주변인이라 불리는 인간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시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 얼마나 쉬운 일인가. 즐거운 고통, 흥미진진한 슬픔으로 치부될 수 없는 엄연한 삶이 거기에 있다. 그러니 시인의 시에서 주변은, 주변인은 없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시적 주체들은 명랑하게 싸우는 법을 안다. 그 전장이 한 송이 꽃이다.
- 안주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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