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방송은 공공재산이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리고 TV 수신기 소유자가 BBC에 수신료를 납부하고 있어 공중이 BBC를 소유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디지털 브리튼 최종 보고서』에서 주장하는 수신료는 공중이 콘텐츠 시장에 개입하는 제도라는 이념을 생각하게 만든다. --- p.24
BBC의 근거 법령인 특허장은 국왕이 법인 단체나 회사에 부여하는 특권과 설립 조건을 정한 것이다. 특허장에 의거해 독점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선례로는 1694년에 운영을 시작한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과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아시아 무역을 추진한 동인도회사 등이 있다. BBC 특허장은 법인으로서 BBC의 설립과 목적을 결정한다. 현재 BBC는 제8차 특허장(2007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유효)에 의거해 운영되고 있다. --- p.39
BBC는 오래전부터 중립적이고 가장 공정한 방송사로 알려졌다. 이에 국제적인 분쟁이 발생할 경우, 사람들은 BBC의 국제방송을 보려 한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종종 정부와 대립하기도 한다. 유명한 사건으로는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처 총리가 “BBC는 지나치게 아르헨티나 편을 들고 있다. BBC는 영국 국민의 수신료를 재원으로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BBC 경영진은 동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특허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 p.65
BBC는 존립 근거를 특허장과 협정서에 두고, 그 내용에 따라 방송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나아가 중요한 것은 톰슨 사장의 말을 빌리면, BBC는 “영국 국민 모두가 소유하며,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탁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충분히 관리되고, 수신료에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밖에 없다. ‘편집 가이드라인’은 이를 작동시키기 위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 p.88
존 리스는 1924년에 출판된 저작에서 방송의 특질로 “어떤 사람이 많이 취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남는 것이 적어진다는 자연법칙과 상반된다는 점”을 들었다. 즉, 방송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것이다. 여기서 리스는 바흐나 셰익스피어 등 서양의 고전 예술, 이른바 ‘고급문화’를 널리 확산시켰고, 문화 면에서도 계몽을 지향했다. 즉, 일상적인 고급문화 접촉을 일반 사람들도 가능하도록 했으며, “물질적 풍요로움은 아닐지라도, 정신적 풍요로움을 제공해” 더욱 조화로운 사회질서를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p.125
매일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라디오를 켜면, 객석의 웅성거림과 함께 아나운스가 들리며, 짧은 정적이 흐른 뒤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진다. 혹은 식후 단란한 시간에 좋아하는 곡이나 연주가를 골라 스위치를 켜기도 한다. 호화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된 날에는 TV로 볼 수도 있다. BBC가 주최하는 ‘Henry Wood Promenade Concerts’, 통칭 BBC 프롬스(BBC Proms) 중계를 가정에서 듣는 것은 오래된 광경이다. 매년 7월 중순 금요일부터 9월 둘째 주 토요일까지 6000여 명을 수용하는 런던 로열앨버트홀(Royal Albert Hall)에서 매일 열리는 세계 최대의 음악 축제이다. --- p.163
이스트엔더스의 배우는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정권 교체를 다투었던 1998년에 “내 자식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라고 ≪선≫를 통해 노동당 지지를 호소했다. 지금도 TV를 즐겨보는 것은 중산층 이하가 많으며, 노동자계급 중심의 프로그램인 만큼 정당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영향력도 강하다. 블레어 후보는 엘리트 계급이었으며, 뒤에 블레어의 복심으로 알려진 캠벨과 BBC 사장인 다이크는 견원지간이 되지만, 아무튼 이스트엔더스가 시청자 의식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인정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 p.218
이상과 같이 오웰의 인도과 방송은 영국의 식민지주의에는 눈을 감고, 오로지 일본군의 중국, 인도 침략을 비난하는 논조로 채워져 있다. 영국의 정의를 호소한 라디오 방송에는 예전에 『카탈루냐 찬가』에서 보여준 작가로서의 내면적 갈등이 사실 느껴지지 않는다. …… 그런데 오웰의 이러한 체험은 다른 부산물도 낳았다. 이는 공산주의 사회의 공포를 그린 SF 소설 『1984』(1949)의 모티브가 된 검열의 문제이다. 전시에 BBC는 런던 대학 본부에 설치된 영국 정부 정보부의 관리하에 있었는데, 그 정보부 건물은 『1984』에 나오는 ‘진리부’의 이미지와 유사하다고 한다. 자유와 사상을 억압하는 공산주의의 공포를 그린 소설이 전시 영국의 검열제도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 p.247~248
BBC에는 벨기에어 방송 담당자가 시작했다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는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표시하는 V 사인과 관련된다. V 사인은 시가와 함께 처칠의 트레이드마크였지만, 원래 V 사인을 유행시킨 것은 BBC의 벨기에어 담당자였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벨기에어 방송 담당자는 1941년에 실시한 벨기에 대상 방송에서 “V는 승리의 V”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이것이 처음에는 벨기에 사람들, 다음으로 연합국 측의 사람들에게 전해져 확산되었다고 한다. --- p.264
됭케르크 전투는 프랑스 주력 부대와 영국의 지원 부대를 합친 35만 병사가 독일군에게 쫓겨 프랑스 최북단 항구도시에 집결한 뒤 영국 본토를 향해 배로 탈출한 작전으로, 현지에 남은 영국군 병사 3만 명이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기세를 올린 독일군은 그 뒤 파리를 포위해 함락했다. 영국으로서는 최대의 패전이 된 1940년 5월 24일부터 6월 4일까지 ‘사상 최대의 철수 작전’을 BBC의 뉴스 아나운서들이 교대로 원고를 읽게 되었는데, 그때 BBC는 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도록 했던 것이다.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가 전해드립니다(Here is the News, and ○○○ reading it)”라는 도입 멘트를 넣은 뒤, 뉴스 원고를 읽어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도입 멘트를 굳이 넣은 것은 전쟁 상황이 너무나 불리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라디오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듣고 있는 것을 BBC 방송이 아니라 적군의 선전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도 BBC의 보도 태도가 엿보인다. --- p.266
BBC가 미디어 사업을 전개할 때마다 항상 논의를 부른 것이 시장에 대한 영향이다. 신문, 상업방송 채널 4 각 사는 발행 부수나 시청률 감소, 광고 수입 축소에 직면하는 한편, 인터넷 사업에서는 충분한 수익을 얻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BBC에게는 안정적인 수신료 수입이 있기 때문에 민간 사업자와 같은 온라인 서비스에서도 낮은 리스크에서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공중(public)의 강한 신뢰로 지탱되는 BBC 브랜드는 BBC와 경쟁하게 되는 신규 인터넷 사업자 등에게는 위협으로 비친다. 이에 BBC의 새로운 서비스 계획은 항상 반발을 불렀다. --- p.298
빅벤(Big Ben)의 종소리에 이어 “여기는 런던입니다(This is London)”, “런던의 소리(London Calling)” 등의 아나운스로 시작되는 BBC 월드서비스(국제 라디오 방송, 이하 WS)는 1932년에 엠파이어 서비스로 설립되었다. 뉴스와 시사 문제, 특집 보도를 전 세계로 방송해왔으며, 해외에서 BBC의 ‘불편부당’, ‘객관적’, ‘정확한’ 보도의 명성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WS는 전통적으로 ‘문화 외교’의 기능을 발휘해왔으며, 국제 보도와 함께 영국의 가치관도 제공해왔다. “부시하우스(Bush House, WS의 별칭)는 세계의 BBC 청취자에게 아나운서로 상징되는 목소리만으로 진실과 권력, 문화의 중심”으로 간주되어왔다. 필자도 BBC에서 근무할 때 “영국에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세 개 있다. 이는 영어, 옥스브리지(옥스퍼드 대학+케임브리지 대학), BBC 월드서비스(WS)이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 WS는 영국의 자부심이다.
--- pp.329~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