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칼데라 한가운데에는 오래전 어둠의 마법으로 엄청나게 많은 뼈를 뒤틀고 한데 엮어 만든 커다란 궁전이 있었다. 바로 이 궁전에서 마녀들의 여왕인 칼비나가 기다란 의자에 앉아 손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프롤로그」
손님이 떠나자마자 잡화점 주인은 키가 크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현재의 모습에서 눈이 작고 노란색이며 발톱이 뾰족하고 몸은 쪼글쪼글한 도깨비, 그러니까 원래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일흔 살 된 ‘잡화점 주인’은 그가 변장하는 수많은 모습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흉내쟁이, 어떤 상대를 만나든 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였다. ― 「1장. 워런이 발을 헛디디다」
“당신은 누구예요?” 워런이 물었다.
“날 워린이라고 불러!” 워런의 복제 인간은 이렇게 말하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목소리까지 워런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 「2장. 워런이 잠깐 멈추다」
잠깐 동안 탈출 방법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워런은 눈을 번쩍 뜨고 창밖을 보았다. 상점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까 워런이 호텔에서 보았던 화려한 자동차, 호텔 손님들을 솔방울 마을로 태우고 갔던 그 자동차였다.
워런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여기로 와줘요, 제발, 제발, 제발?. ― 「4장. 워런이 거래를 하다」
스케치가 다시 머리를 두드리고 나서 그림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다정한 워런이 똑같이 생긴 못된 악마와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었다. 페툴라가 물었다. “흉내쟁이가 워런으로 변장한 거야?”
스케치가 날카로운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아 맙소사! 넌 워런이 아니라 사기꾼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 「8장. 페툴라가 진실을 알아내다」
페툴라는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자동차보다 빨리 움직이는 호텔을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해봐야만 했다. 우리는 워런을 위해서라도 그 호텔을 구해야 해, 페툴라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워런이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야, 워런이 어디에 있든……. ― 「10장. 페툴라가 포위되다」
이제 아무 방해 없이 앞으로 갈 수 있긴 했지만, 그래도 워런과 수액 대장은 수호자의 거북이 다시 물 밖으로 나타나 그 억센 입으로 둘을 우적우적 씹어 먹을까봐 마음 한편으로 걱정하면서 조심스레 다리를 건넜다. 다리는 굉장히 길었고 꼭대기는 굉장히 높이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쉬기 위해 워런과 수액 대장은 걸음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있으니 멀리까지 잘 보였다. 워런의 눈에 동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호텔이 보였다. 호텔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으므로, 워런의 마음속에 시간이 다 가기 전에 호텔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
이 생겨났다. ― 「12장. 워런이 위험한 다리를 건너다」
워런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나무들은 워런에게 숲에서 나가라고 겁을 주거나 경고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나무들은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워런은 당장 수액 대장을 깨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그 수액인간에게는 잠이 필요했고, 워런의 마음속에 있는 호텔 경영자는 손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워런이 동굴 밖을 보니 비가 이미 그쳤다. 어쩌면 지금이 나무들에게 얘기를 해보고 대답을 얻을 기회였다. 워런은 스케치북을 쥐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동굴 안에서 불이 아직 타고 있었기 때문에 워런은 동굴 밖으로 몇 킬로미터 걸어가야 했다. ― 「14장. 워런이 암호를 풀다」
워런이 말했다. “하지만 네가 호텔을 여왕에게 넘겨주면, 여왕이 네게서 호텔을 빼앗아갈 거야. 여왕은 워런 호텔을 혼자 차지하고 싶어 해. 여왕이 정말 네가 호텔에 남아서 호텔을 경영하도록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절대 그럴 리 없어!”
흉내쟁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 네가 내 이를 돌려주면, 내가 호텔 권리증을 넘겨줄게.”
흉내쟁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권리증?”
“그래, 그 권리증을 가지고 있으면 네가 진짜 주인이 되는 거야. 네가 누군가가 되고 싶다면, 네게는 무엇보다 그 권리증이 필요해.”
“좋아, 그렇게 하자.” 흉내쟁이가 말했다.
워런이 스케치북을 집었다. “내가 지금 계약서를 작성할게.”
워런은 새 페이지에 둘의 합의 조건을 적었다.
“자, 이제 이를 줄래?”
흉내쟁이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워런을 보았다. ―「16장. 워런이 워린과 맞서 싸우다」
하지만 워런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 오두막 너머, 저 아래 땅에서 칼비나 여왕이 씩씩거리며 정신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왕의 드레스에 흙이 줄줄이 묻어 있었다. 여왕이 허공에 대고 비명을 지르자 마녀 몇 명이 그쪽으로 쏜살같이 내려갔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설령 마법을 쓴다고 해도 흘러나오는 수액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녀들은 주문을 걸려고 허둥대다가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더니 끈적끈적한 액체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몇몇이 다급한 마음에 동물로 변신하려고 하면서 공기에 유황 냄새가 번졌고, 잠시 뒤에 블랙 칼데라는 여우, 수퇘지, 곰, 고양이, 족제비, 뱀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렇게 변신한 마녀들도 전혀 나을 것이 없었다. 수액이 몸의 털에 들러붙었고, 비늘에서 뚝뚝 떨어졌고, 날개를 뒤덮었다. 그리고 마녀들은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갇혀버렸다. ―「19장. 마지막 비밀이 드러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