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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도시, 런던

문학의 도시,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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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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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7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94g | 150*210*30mm
ISBN13 9791186732373
ISBN10 118673237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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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는 버러 하이스트리트(Borough High Street)의 태버드(Tabard)여관에서 시작한다. 19세기 말에 헐려서 그렇지 이 여관은 실제로 존재했던 곳이다. 초서의 수다스러운 순례자들은 곧 태버드를 나와 켄트로 떠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런던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런던 맥주’를 ‘죽 들이마심’과 같은 표현이 나오고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사제에게 사후에 매일 미사를 통해)‘명복을 빌어달라고 바치는 헌금’ 을 구하는 일로 잡담이 오고가고,치프사이드와 서더크에 위치한 여관들의 이름이 등장한다.(..........)사실 초서도 1343년경에 런던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그 자신이 런던 토박이였던 셈이다.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내로라하는 포도주상인이었는데 할아버지는 1313년에 알드게이트의 집 근처에서 살해당했다. 당시 알드게이트 지역은 날이 저물면 절도와 강간과 살인이 판치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 다행히 초서는 목숨을 잃지 않고 알드게이트 하이 스트리트 2번지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 p.14-15

근대 초기의 런던에서 주목받았던 것은 이런 거리 풍경만이 아니다.인구가 밀려들어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쳤던 수도를 관통하며 흐르는 템스 강 또한 중요한 곳이었다.다만 이 시기의 템스 강은 스펜서의 주장처럼 그렇게 감미로운 곳이 아니었다. 사실상 쓰레기와 오물 때문에 강물이 제대로 흐르지 못할 정도였다.그럼에도 분명 템스 강은 대단한 볼거리였다.당시는 지금보다 강폭이 넓어 양쪽 강둑에 죽 계단과 층계참이 설치되어 거룻배와 나룻배들(아마 셰익스피어는 평상시에 이들 배를 타고 서더크에 있는 극장에 갔을 것이다)로 붐볐다……때때로 강이 완전히 꽁꽁 얼 때면 (버지니아 울프가 《올랜도(Orlando)》에서 떠올렸던 것처럼)빙판 위에 빙상 시장이 열렸다. 댄스파티는 물론이고 음식물을 파는 좌판들이 완비된 터라 1564년에 열린 유명한 행사 때에는 엘리자베스 1세가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 p.22-23

..........물론 셰익스피어의 런던생활에 관해 우리가 아는 내용은 대부분 추측에 근거한 것들이다.일례로, 셰익스피어가 어디서 먹고 잤는지 명확히 알려진 게 없다.하지만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기에 그가 당시 런던 동부 지역과 뱅크사이드를 오갔을 것으로 추측한다.1590년대 말에 셰익스피어는 레든홀과 세인트 메리 애버뉴 근처이자 세인트 헬렌 교구에 속하는 비숍게이트의 어느 집에서 하숙했다. 이후 1604년에는 세인트 폴 교구의 실버 스트리트에서 부유한 프랑스 신교도였던 마운트조이 부부의 집 2층에 살았다. 셰익스피어는 집주인과 집주인의 사위 사이에 벌어진 법정 소송에 휘말린 탓에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 p.32

존 던(John Donne)의 경우 처음에는 자신의 애인들을 칭송하는 저속한 시를 썼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자신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리기’ 위해 원했던 것은 바로 ‘삼위일체의 신’이었다. 던은 심지어 세인트 폴 대성당의 주임 사제가 되었고 1624년에서 1631년까지 플릿 스트리트에 있는 세인트 던스턴 성당에서 유급 성직자로 봉직했다.또한 1620년에는 링컨 법학원(Lincoln’s Inn)부속 예배당의 초석을 놓았다.우리에게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묻지 말라고 한 그의 유명한 시구도 바로 이 예배당의 종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이다. 문제의 이 종은 링컨 법학원의 회원이 사망할 때마다 정오에 울렸다. --- p.56

새뮤얼 존슨 박사의 명언을 언급하지 않고는 런던을 주제로 한 제대로 된 책을 완성했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런던이 지겨운 사람은 인생이 지겨워진 사람이다.” 존슨은 런던이 작가에게 좋은 도시가 아닐뿐더러 괜찮은 글감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런던을 다룬 양서들의 상당수는 비소설 분야다.여기저기서 하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야기를 지어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런던에서 일기작가,사전편찬자, 전기 작가, 심리지리학자들이 많이 배출됐다.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헨리 8세(Henry VIII,1491-1547)의 아들 소년 왕 에드워드 6세(Edward VI,1537-53)다.에드워드는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른 뒤인 겨우 열세 살의 나이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그는 틈틈이 햄프턴 코트 궁전을 방문하는 국빈들을 챙기는 와중에도 런던 인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했다. 에드워드 6세는 곰 놀리기 쇼를 보러 다녔고 ‘터무니없이 비싼 물가’ 때문에 일어난 폭동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 p.80

1816년에 셸리를 만났을 당시에도 키츠는 여전히 학생 신분이었지만 점점 문학에 전념하고 있던 상태였다. 문학에서 빛을 발할 날이 머지않아 보였다. 1818년에 살았던 웬트워스 플레이스(Wentworth Place)의 작은 집 정원에서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영감을 받아 쓴 시가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노래〉다.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키츠는 햄스테드 히스의 스패니어즈 인(The Spaniards Inn)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키츠가 이웃집 여인 패니 브론(Panny Brawne,1800-65)과 사랑에 빠진 곳 또한 웬트워스 플레이스였다.얇은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거처에서 지내면서 비극적이게도 끝내 부부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로맨스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편지와 후속 시들이 탄생했다. --- p.119

1800년경의 런던은 이미 인구 100만에 근접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그로부터 1세기 후에는 안개에 갇힌 이 도시에 670만 명이나 북적거렸다.런던은 지형적으로 위험이 내재된 곳이었다.얽히고 설킨 골목,어두컴컴한 뜰,초만원의 공동주택,그을린 듯 거무죽죽한 궁전,매연을 내뿜는 공장,인파로 뒤덮인 부두……그나마 손질이 잘 된 푸르른 공원이 있어 다행이었다.런던은 지상의 어떤 곳보다 크고 분주했고 그에 걸맞게 문학계도 인상적이었다.문학의 거장들이 그 더럽고 매혹적인 거리들을 걸어다녔다.그중에서도 최고의 거장은 찰스 디킨스였다.그는 영감을 찾아,때로는 불면증과 싸우며,때로는 애완까마귀 ‘그립’과 함께 밤낮으로 수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 p.124

디킨스는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런던에서 지내며 런던의 인물들과 런던의 영광은 물론 이 도시에 내재된 공포와 고통을 주로 그렸다.디킨스가 작가로서 절정기를 맞았을 때 런던 주민들의 평균 수명은 27세(노동자계층은 22세)로 런던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의 절반 이상은 10세 미만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고 대부분의 사인은 전염병과 영양실조였다.또한 런 던에 사는 6~7세 아동의 대다수가 전일제 노동에 내몰렸다.런던의 공기는 공장의 매연과 가정용 연료로 오염돼 탁했다(디킨스는 일찍이 오염 방지 운동에 앞장섰다). 생활환경은 불결했고 범죄가 판을 쳤다.이 모든 것들을 목격한 디킨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재능을 발휘해 다른 세상에 사는 수백만 독자들에게 같은 경험을 나누게 해줬다. --- p.127

링컨셔에서 태어난 테니슨은 런던에 오래 살면서 런던에 관한 시도 많이 썼다.그가 상류사회의 구애를 받은 데다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계관시인으로 봉직해서 행복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가 런던을 그린 일부 시들에서는 세계 속 영국의 역할을 대하는 기이하리만치 상반된 감정이 드러난다.테니슨은 경기병대의 돌격을 불행한 결말로 만들어버린 터무니없는 실수를 고발했을 뿐만 아니라(크림 전쟁 때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영국의 무능한 지휘관들 때문에 경기병대가 거의 전멸하는 사태가 일어났다.테니슨은 능력보다 출신을 중시하는 당시의 정치 풍토 때문에 빚어진 이 어이없는 비극을 〈경비병대의 돌격(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이라는 시로 고발했다-옮긴이),오늘날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고 알려진 오벨리스크를 이집트에서 가져와 템스 강변에 세워둘 때에도 반대의견을 냈다. --- p.141

와일드는 1878년에 옥스퍼드대학에서 (그가 쓴 대로 ‘교수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역대 최고에 속하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성공가도를 달렸다.(마지막 남은)아버지의 유산으로 빠르게 사교계를 드나드는 독신남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첼시의 타이트 스트리트 1번지(현재의 44번지)에 하숙했다.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런던의 사교계를 매혹시키기 시작한 와일드는 1884년 5월 말경에 희곡을 썼고, 시집을 출간했으며 패딩턴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성공회 교회에서 콘스턴스 로이드(Constance Lloyd)와 결혼했다.와일드는 이 결혼으로 (콘스턴스 아버지에게서)1년에 250파운드의 수입이 더 생기자 윗동네인 타이트 스트리트 16번지로 이사를 가서 집을 사치스럽게 꾸몄다. --- p.150-151

홈스가 알고 있던 런던은 자갈길에 안개가 자욱하고 어두침침한 골목과 끔찍한 기습이 판치는 곳이었다. 일례로, 1902년 작 〈고명한 의뢰인(The Adventure of the Illustrious Client)〉에서 셜록 홈스는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습격을 당해 두 명의 남자에게 곤봉으로 ‘머리와 몸통을 두들겨 맞고’,의사가 보기에도 ‘아주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또한 〈마지막 사건(The Final Problem)〉에서는 옥스퍼드 스트리트 인근과 벤팅크 스트리트와 웰벡 스트리트의 합류지점에서 폭주하는 밴 때문에 거의 죽을 뻔한다.왓슨이 런던을 ‘거대한 시궁창’이라고 할 만하다.그는 런던의 대로에서 심하다 싶을 만큼 많은 시체와 살인자와 사기꾼과 도둑들을 보았다.그러나 좋은 면 또한 존재한다.홈스가 나오는 소설에서 런던의 호텔은 늘 흥미진진한 것들로 가득하다(〈보헤미아의 스캔들〉에서 보헤미아의 왕이 머무는 랭햄 호텔처럼 말이다). 또한 (홈스가 토트넘 코트 로드에서 발견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처럼)런던의 가게들은 큰 기쁨을 주며,홈스와 왓슨이 ‘영양분’이 필요할 때마다 즐겨찾는 심슨스 인 더 스트랜드(Simpson’s-in-the-Strand)라는 짙은 색의 목조 식당이 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 이들과 똑같이 해볼 수 있다. --- p.160-161

아가사 크리스티는 데번(Devon)을 고향처럼 여겼다.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평생을 런던 곳곳의 다양한 아파트에서 살았다(가장 오래 살았던 집은 1934년부터 1941년까지 거주했던 셰필드 테라스 58번지였다). 크리스티는 또한 웨스트엔드 무대에서도 이름을 떨쳤다.소설가 못지않게 극작가로서도 승승장구했던 그녀는 자신의 추리소설을 여러 편 각색해 런던의 극장에 올렸을 뿐만 아니라 살인을 다룬 추리극 《쥐덫(The Mousetrap)》을 집필했다.이 희곡은 1952년 11월 25일에 앰버서더 극장에서 초연된 뒤 꾸준히 인기를 끌어 2만 6천 회가 넘는 공연기록을 세웠다(.........)1976년 1월 12일에 크리스티가 사망했을 때 웨스트엔드 극장가는 1시간 동안 조명의 밝기를 낮추고 그녀를 기렸다. 현재 레스터 스퀘어 역 근처이자 크랜본 스트리트와 그레이트 뉴포트 스트리트가 합류하는 지점인 극장가 중심부에는 그녀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하지만 1975년 8월 6일에 에르퀼 푸아로가 소설 속 인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뉴욕 타임스〉의 1면에 실린 사망기사의 주인공이 되면서 크리스티에게 가장 멋진 헌사를 바쳤다. --- p.169-170

피터 래빗을 창조한 (베아트릭스) 포터는 유모가 (처음에는 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실망한 베아트릭스를 달랠 목적으로)얼스 카운트의 볼턴 가든스의 집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왔던 작은 생물체들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동물들을 그려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1901년에 푸른 제복을 입은 당근 도둑,피터 래빗이 세상으로 나왔다.그러자 곧바로 대형 출판사가 뛰어들어 피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했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베아트릭스는 런던을 떠나 잉글랜드 북서부의 호수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늘 가슴 한켠에 런던을 간직하고 있던 베아트릭스는 유언을 통해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많은 재산을 남겼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인 글로스터의 양복장이가 입고 있는 재킷은 그녀가 1903년에 켄싱턴 박물관에서 봤던 외투를 본떠 만든 것이었다. --- p.188

곰돌이 푸(Pooh)이야기는 밀른이 1924년에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런던 동물원에 갔던 행복한 날에 시작됐다.밀른 가족은 그곳에서 미국산 흑곰을 보았는데 어린 크리스토퍼 로빈이 특히 즐거워했다.(.......)위니펙이라 불리던 이 곰은 1914년에 프랑스의 참호에서 전투를 벌이던 어느 캐나다 부대가 발견해 런던 동물원에 보낸 것이었다.사육사가 꿀을 한 숟가락씩 떠먹여 주는 것을 좋아했던 이 곰돌이는 현재 런던 동물원에 동상으로 남아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위니펙을 본뜬 소설 속 곰돌이는 192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런던 이브닝 뉴스〉에 실린 〈어딘가 잘못된 꿀벌들(The Wrong Sort of Bees)〉에서 첫선을 보였다.이즈음 밀른 가족은 도망치다시피 시골로 떠났지만 (로빈이 태어난)첼시의 맬로드 스트리트 13번지의 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p.193

이제 문학의 도시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기차역은 해리포터가 호그와트행 급행열차를 탔던 킹스 크로스역이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잘 알고 있듯, 9와 3/4 플랫폼이다.요즈음 킹스 크로스 역에는 해리포터 기념품 가게뿐만 아니라 9와 3/4플랫폼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 돼있다.조앤 롤링(J.K. Rowling,1965-) 또한 해리포터 시리즈에 런던을 등장시켰다.예를 들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에서 해리는 리젠츠 파크의 런던 동물원에 가서 자신이 뱀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안타깝게도 리키 콜드런(Leaky Cauldron)펍은 많은 이들이 채링 크로스 로드에 있다고들 하지만 찾기가 좀 어렵다.리키 콜드런과 이어져 있는 다이아곤 앨리(Diagon Alley)는 보행자전용도로인 세실 코트(Cecil Court)를 본떠 만든 것이라는 말들이 있다.레스터 광장과 가깝고 런던에서 유일하게 순수 빅토리아풍 점포들이 자리하고 있는 세실 코트는 분명 다이아곤 앨리에 잘 어울린다. 그 외에도 플뢰르와 빌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허마이어니(헤르미온느)와 론과 해리가 토트넘 코트 로드(Tottenham Court Road)로 도망칠 때처럼 런던의 다른 많은 길들이 등장한다. --- p.201-202

모더니즘은 이미 19세기 말엽에 《암흑의 심장》 같은 작품들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하지만 스물다섯 살의 젊은 T.S. 엘리엇이 1915년에 옥스퍼드에서 런던으로 이주할 무렵에 급부상했다.새롭게 만들기에 런던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런던은 여전히 빽빽하게 들어선 부두와 공장과 창고에서 세계 곳곳에 기술을 퍼뜨리는,세계의 작업장이자 연기가 자욱한 도시였다. 엘리엇은 런던에 온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명시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The Lovesong of J. Alfred Prufrock)〉를 완성했다. 이 시에는 황폐한 거리들과 하룻밤용 싸구려 호텔들,그리고 희미하게 다가오는 누런 안개 같은 런던의 풍경이 담겨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1922년에 이 ‘비현실적인 도시’는 엘리엇의 위대한 걸작 〈황무지(The Waste Land)〉의 배경이 돼줄 뿐만 아니라 죽음이 런던 브리지를 넘어가는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을 처연하게 묘사한 시구를 탄생시켰다. --- p.206-207

20세기 초반의 런던에는 모더니스트와 소용돌이파 외에도 (자주 겹치긴 하지만)또 다른 유파의 작가들이 있었다.그런데 이들 유파는 공유하는 사상뿐만 아니라 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로도 규정된다.토트넘 코트 로드의 동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네는 런던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지성의 심장부였다.당대의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인 작가들의 상당수가 그러했듯 대영박물관과 브리티시 라이브러리,그리고 런던대학교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지역이 유명세를 탐에 따라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학유파에도 지역의 이름을 붙여 ‘블룸스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으로 불렀다.블룸스버리 그룹은 이해관계와 전문분야가 제각각인 다양한 작가들과 출판업자들의 느슨한 연합체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공통 된 게 있었다.바로 버지니아 울프와 바네사 벨 자매와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 p.220

런던에서 술과 문학은 진과 토닉이나 맥주와 친밀감처럼 늘 함께 해왔다. 《캔터베리 이야기》도 런던의 어느 술집(태버드 여관)에서 시작된다.셰익스피어의 희곡 속에는 포도주가 혈액처럼 퍼져 있다.새뮤얼 피프스는 아침으로 맥주를 마셨고,낭만파는 장밋빛의 포도주를 사랑했으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항구에서 거나하게 취했다.이와 같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술집의 역사에서 어느 한 시점을 절정기로 꼽는 것은 안일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그럼에도 술집이 런던 문학에 전에 없이 강한 영향을 미친 때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1920년대의 작가들은 술집이라는 좋은 재료를 받아들여 현기증이 일어날 만큼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 p.232

딜런 토머스 역시 유명한 주당이었다.런던에서 술에 관한 한 이 웨일스 출신의 시인을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3년에 요절하면서 술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줬다.행복했던 시절에 딜런 토머스는 랭햄 스트리트의 비비시 포틀런드 플레이스 스튜디오에서 술에 취한(그러나 여전히 눈부신)모습으로 종종 발견되곤 했다.한번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낭송회를 앞두고 곯아떨어져서 코까지 곤 적도 있었다.다행히 방송 2분 전에 깨어난 토머스는 발음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성 세실리아 축일(Saint Cecilia’s Day)〉을 읊었다.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언젠가는 안타깝게도 방송 중이던 토머스가 뜬금없이 ‘누군가 나를 넌더리나게 하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이 나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딜런 토머스는 오랫동안 (첼시의 만레사 로드에 위치한)웬스워스 스튜디오의 집에서 책을 가구삼아 살았다. --- p.243-244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1737-94)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런던의 책방과 할인판매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라고 말했다.조지 오웰은 책방이 선사하는 다른 혜택들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런던 같은 도시에는 언제나 온전한 정신이 조금은 남아 있는 미치광이들이 많은데,이런 사람들은 책방에 쉽게 끌린다.그 이유는 책방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오랫동안 어슬렁거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유명한 서적상이었던 오웰은 캠든 타운 인근의 서점에서 일했던 터라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오웰은 또한 책을 파는 사람들 중에 정말 멋진 괴짜가 많다는 사실도 눈치 챘을 것이다. --- p.250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런던은 계속해서 맥밀런과 펭귄 같은 대형 출판사들의 본거지로 남았다.하지만 더 새롭고,유행에 밝고,더 작은 출판사들 또한 쏟아져 나왔다.그중에서도 특히 존 콜더(John Calder,1927-)와 마리온 보야즈(Marion Boyars,1928-1999)는 소호의 브루어 스트리트 18번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20세기 문학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다.콜더보야즈(Calder and Boyars)출판사는 헨리 밀러(1891-1980),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1914-96),윌리엄 버로스 (William Burroughs,1914-97) 그리고 새뮤얼 베케트의 작품들을 출간했다. --- p.264

울스턴크래프트가 살았던 다른 곳들도 대부분 그렇듯 커밍 스트리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이들은 세인트 판크라스 묘지로 가서 그녀의 무덤이 있던 자리를 찾아보라.그리고 그곳을 찾으면 메리 셸리의 발자취도 따라가게 될 것이다.메리 셸리가 글을 깨치고 맨 처음 읽은 문구는 어머니의 묘비명에 적힌 ‘여성의 권리 옹호의 저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다고 한다.이 묘지는 또한 (겨우 열일곱 살이었던) 메리가 퍼시 셸리와 처음으로 밀회를 나누고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곳이기도 하다.(이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시신은 딸의 시신과 함께 본머스의 묘지로 이장됐지만 세인트 판크라스 묘지에는 아직도 기념비가 있다.) 메리는 그 어머니에 그 딸임을 입증하며 당대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았다. --- p.292-293

이언 플레밍(Ian Fleming,1908-64)또한 2차 세계대전 때 스파이로 활동했다.그러나 1950년대에 소설가로 전향한 그는 임박한 핵절멸의 위기 앞에서 러시아 스파이를 집중적으로 다뤘다.그의 냉전 첩보소설은 매력적이었다.세련된 복장과 화려함을 선호하는 제임스 본드의 취향에는 이언 플레밍의 생활방식이 반영돼 있다.플레밍은 1930년대 거의 내내 빅토리아의 에버리 스트리트에 위치한 독신자 아파트에서 상류 생활을 누리면서 완벽한 식사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회원제로 운영되는 남성전용 만찬 클럽까지 만들었다. --- p.322

1849년에 런던에 도착한 허먼 멜빌(Herman Melville,1819-91)또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그는 스트랜드 근처 크레이븐 스트리트 25번지의 하숙집에서 지냈지만 멜빌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실제 장소는 타워 힐이었다.그곳에서 그는 조잡하게 고래가 그려진 포스터를 목에 건 거지를 만났다.포스터 속 고래는 그의 배를 파괴하고 신세를 망치게 한 고래였다.그 순간 《모비딕(Moby-Dick)》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사람들이 아주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는 곳이 세상에 두 군데가 있는데, 바로 런던과 남태평양이다’라고 말한 사람 또한 멜빌이다. --- p.338-339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마다 런던을 반이상향과 종말을 맞은 도시로 그렸다.이후 파괴되거나 변화된 런던을 담은 책들이 수백 권이나 나왔고 그중 상당수가 명작이 되었다.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제1 활주로’의 수도로서 빅브라더의 감시를 받고 전쟁과 전체주의의 만행으로 피폐해졌지만 여전히 알아볼 수 있는 반이상향적인 런던을 그린 《1984》다.이 소설에서 트라팔가 광장은 승리 광장으로 등장한다. 말레 스트리트의 (런던대학교의 일부인)거대한 평의원 회관은 진리부가 되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때 이곳에 차려진 정보부에서 오웰의 아내 에일린 블레어가 몇 년 동안 근무했던 데에서 영향을 받아 설정된 대목이다). 101호는 오웰이 재직할 때 정치 기사 원고 때문에 끝없이 계속되는 회의를 견디며 앉아 있었을 포틀랜드 플레이스의 BBC 방송국 내 장소를 본뜬 것이다. 《1984》는 1949년에 출간됐다. --- p.359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의 주인공은 뒤집힌 세상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앨런 무어의 유명한 ‘브이’는 웃는 얼굴이 그려진 하얀색 가면을 쓰고 1982년에 만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그러나 가면 속 미소는 가짜다. 브이는 화가 나 있다,그것도 아주 많이. 핵전쟁 이후의 세상에서 파시스트들이 정부를 장악했고 폭력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것만이 유일한 저항 방법이다. 브이는 국회 의사당을 파괴할 음모를 꾸미고 우체국 탑 같은 명소들을 폭파한다.그는 어둠이 짙게 드리운 위험한 런던을 누비고 다니며 빅토리아 기차역 아래의 지하 은신처,섀도 갤러리에 산다.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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