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말은 한마디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때의 너는 세계이기도 하고, 당신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많은 말들이 나와 스승 사이의 사적인 기록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나는 그 말이 처음부터 바로 당신과 우리의 세계로 향하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의 사랑이 내 존재에 온통 스밀 때, 그것이 나를 지나쳐 번져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나? 사랑의 말은 처음부터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책머리에」중에서
나는 마치 연애편지 쓰듯 선생 앞에서 읽은 걸 조잘거리며 말을 배웠으며, 내 일상을 객관화하여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았고, 일상을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허무주의가 선동하듯 이유 없이 내동댕이쳐진 세상에서의 무의미한 소진(消盡)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억압이나 강요 없이, 그냥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
나는 그 배려를 받았다. 비유하자면, 선생과의 그 ‘발견술적 대화’를 통해 나는 한 마리 축생에서 사람으로 조금씩 존재 이전했고, 무엇보다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결핍과 고통과 싸워가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결국 삶이란 의미 없음과의 싸움이며, 문학은 그 의미를 복합적으로 묻는 ‘열린 형식’이란 것을 간신히 알만큼 성숙할 수 있었다.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 Ⅱ」중에서
선생은 내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사랑하는 철학을 남겨주었다. 그의 모든 것이 따듯한 사랑이지만 그래도 굳이 나누자면, 염결과 성실의 학자적 면모보다는 그것을 넘어 꿈꾸고 즐기며 행복해한 비평가로서의 모습이 나는 좋다. 그래서인지 완벽할 것만 같은 모습 못지않게 아프고 쇠해서 고통스러웠던 그 모습까지도 삶이라는 뜨거운 상징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 Ⅲ」중에서
내가 선생에게 배운 가장 큰 지혜가 ‘사랑의 말, 말의 사랑’이라는 것에 생각이 가 닿았다. ‘공감의 비평’이란 부제를 붙일 만큼 그는 타자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탐구한 사람이다. 공감이란 선생의 비평 방법론이자 삶의 윤리였다. --- p.45
귀갓길 내내 선생이 평소에 좋아한 노래 김창완의 [청춘]이 귀에 맴돌았다. 그는 한국문학 평론가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많은 글을 썼고, ‘외국어문학도’로 부지런한 번역과 함께 프랑스 문학의 주체적 연구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가난한 글쟁이들을 모아 글을 쓰도록 원고료를 털어 술을 사먹이며 부추겼다. 마침내 당신이 주신(酒神)이 되어 엄청난 양의 ‘술 길’을 따라 세월을 붙잡듯이 훌쩍 갔다.
그런데 꼭 그렇게 성실해야 했을까?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어린 학생들은 넋 놓고 뻗어서 12시나 되어야 학교에 기어나오는데, 선생은 9시 전에 변함없이 연구실로 나왔다. 어쩌다 술자리가 일찍 파하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원고를 몇 줄이라도 쓰고 주무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철저함이 세월을 앞당겨 쓴 것이다. --- p.104
선생 세대에게는 본(本)이 될 만한 한글 텍스트가 많지 않았다. 그들은 한자와 일본어와 싸워가며 한글세대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애썼다. 거기에 번역투의 문장도 끼어들었다. 그것은 운명이 다. 구어로서의 한글은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지만, 글로서의 우리말은 갑오경장 이후 한일합방까지 잠시, 그리고 해방과 한국전쟁 뒤에야 비로소 자유롭게 쓰인, 불과 수십 년 남짓한 신생의 미숙한 언어이기 때문이다.75 일본어에 짓눌린 앞 세대와 달리, 한글세대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선생과 같은 글쟁이들의 선구적인 작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이 이만한 모습을 갖추기 어렵다. 문어로서의 한글은 지금도 한자, 일본어, 외국어 더미 속에서 담금질을 통해 더 성숙해지고 있다. --- p.123
나는 마치 연애편지 쓰듯 선생 앞에서 읽은 걸 조잘거리며 말을 배웠으며, 내 일상을 객관화하여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았고, 일상을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허무주의가 선동하듯 이유 없이 내동댕이쳐진 세상에서의 무의미한 소진(消盡)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억압이나 강요 없이, 그냥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
나는 그 배려를 받았다. 비유하자면, 선생과의 그 ‘발견술적 대화’를 통해 나는 한 마리 축생에서 사람으로 조금씩 존재 이전했고, 무엇보다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결핍과 고통과 싸워가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결국 삶이란 의미 없음과의 싸움이며, 문학은 그 의미를 복합적으로 묻는 ‘열린 형식’이란 것을 간신히 알만큼 성숙할 수 있었다. --- p.69
선생은 내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사랑하는 철학을 남겨주었다. 그의 모든 것이 따듯한 사랑이지만 그래도 굳이 나누자면, 염결과 성실의 학자적 면모보다는 그것을 넘어 꿈꾸고 즐기며 행복해한 비평가로서의 모습이 나는 좋다. 그래서인지 완벽할 것만 같은 모습 못지않게 아프고 쇠해서 고통스러웠던 그 모습까지도 삶이라는 뜨거운 상징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