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 테왁
강문신
신묘년 새 아침을 서귀포가 길을 낸다
적설량 첫 발자국 새연교 넘어갈 때
함박눈 바다 한가운데 테왁 하나 떠 있었네
이런 날 이 아침에 어쩌자고 물에 드셨나
아들놈 등록금을 못 채우신 가슴인가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물에도 풀리지 않는
새해맞이 며칠간은 푹 쉬려 했었는데
그 생각 그마저도 참으로 죄스러운
먼 세월 역류로 이는 저 난바다… 우리 어멍
서울신문·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제주도문화상, 시조시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조운문학상, 시조집 『어떤 사랑』, 시선집 『나무를 키워본 사람』
숨비소리
강애심
1
제주시 바다에도 영락리 불빛은 있다
친정집 아버지 신열로 켠 등 하나
자맥질 못 해본 내가 숨비소릴 내고 있다
2
한 포대씩 돌린 귤이 자리돔으로 돌아오는
영락리 회귀 못 한 이 가을 연어처럼
내 삶의 지느러미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3
매립된 바다에도 더운 숨결 살아 있어
연체된 갈증 물고 솟아오른 갈매기
폭풍의 그 바다에서 집어등을 낚는다
2004년 『시조시학』 등단, 시집 『다시 뜨는 수평선』 『그 진한 봄꽃 향기로』
우도 여자
강현덕
햇살 출렁이는 우도에서 보았네
한숨의 깊이가 바다의 깊이란 걸
짙푸른 물의 깊이가 한 삶의 넓이란 걸
멈춘 숨 죽인 숨으로 살아온 우도 여자
바다를 다 안았네 천 평 만 평 제 것이네
주황의 테왁 위에선 휘파람 숨비소리
1994년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첫눈 가루분 1호』 등, 역류 동인
잠녀삼촌
강현수
보목리 팽나무도 은퇴를 했나 보다
그 곁에 잠녀삼촌 강씨가 혼자 산다.
팔순의 자리젓 냄새 바다처럼 익었다.
4·3에 잃은 세월이 어디 나뿐이냐며
제비꼬리 같은 오리발 수직으로 꽂힌다.
망사리, 그 눈썹 끝에 걸려오는 풍경 하나
누구나 한 허리는 납덩이 달고 산다.
더러는 진눈깨비 더러는 반짝 햇빛
궤짝 속 짓다만 수의, 바람결에 마른다.
바닷가 키 낮은 집, 뼈마다 물이 들어
바다도 나뭇잎도 흔들리며 가는 시간
섶섬을 마당에 들이고 달려오는 너, 삼월아
제주 서귀포 출생. 2008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등단, 『열린시학』 등단, 정드리문학회 회장 역임, 서귀포시청 근무
테왁, 혹은 물숨
― 우도해녀촌에서
구애영
1.
옹찬 속살 들어낸
구멍 없는 반달
팽팽하게 잠겨있는 목숨의 근처 같은
파도를 바다이게 한
뒤웅박의 저 자맥질
2.
방안에 나 혼자서 가만히 앉앙이시믄
호이 호이 휘파람소리 들리는 거 닮아
가슴이 촐랑촐랑해
막 바다에 가고정허여
3.
물숨은 숨이 아니지
멈춰야 살 수 있지
물안경, 쑥이파리, 씹던 껌, 뇌신 한 갑
버텨온 숨비소리에 맑게 뜨는 우도 하늘
2010년 『시조시학』 등단, 시집 『모서리이미지』 『호루라기 둥근 소리』
하도리 해녀군상*
권갑하
등 뒤로 바르팟* 흰 살결 아롱아롱 피워 올리는
북제주군 하도리 해안도로변 해녀들은
함부로 그 날 얘기를 풀어 놓지 않는다.
뿔 돋은 소라 껍질 밀물 썰물 모래가 되고
젖 불은 엄마는 자꾸 아이 젖을 물리지만
현무암 검은 가슴엔 하얀 포말이 섬뜩하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혼백 상자 등에 지곡
가슴 아피 두렁박 차곡
한질 두질 들어가난
저승길이 왓닥 갓닥
이여싸나 이여싸나*
머리엔 흰 수건, 두 손엔 빗창과 호미
호-이 호-이 숨비질 소리 수평선 띄워 놓고
일 천여 분노의 노래 주재소로 몰려갔다.*
그날 밤 덩치 큰 해일이 섬을 다 삼켰다
불턱에 갈무려 둔 불씨마저 다 지우고
바다는 고요가 잠든 밤 속으로만 흐느꼈다.
* 하도리 해녀군상: 제주시 하도리 해변에는 현무암으로 조각된 5명의 해녀가 젖먹이 둘을 안고 있는 ‘해녀군상’이 세워져 있다.
* 바르팟: 바다밭.
* 이여싸나 이여싸나~: 제주민요 ‘해녀의 노래’ 일부.
* 머리엔 흰 수건~: 일제강점기 일본의 수탈에 대항했던 해녀항쟁 역사.
1958년 경북 문경 출생, 문화콘텐츠학 박사, 조선일보·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시조집 『외등의 시간』 등, 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오후 세 시의 바다
곽홍란
바다를 버릴 수 없어 섬이 된 휘파람새
병상에 홀로 누워 갯바위를 더듬는지
몸 안쪽 허물어져서 휘어 넘는 긴 파랑
밀치며 끌어당기며 건져 올리던 기억
태양마저 몸 사리던 물밭 박차 올라도
수평선 새끼발가락 겨우 닿던 흰 부리
고래심줄만큼 질기고 찰박한 아흔 바당
곱던 손 다 닳아서 지문조차 잃어버린
울 엄마 숨비소리로 오후 세 시를 건진다
조선일보·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조집 『직선을 버린다』, 동시집 『글세, 그게 될까』, 소리시집 『내 영혼의 보석상자』 『가슴으로 읽는 따뜻한 시』 등
상군 해녀
김강호
해녀의
발끝에서
파고는
시작된다
하늘도
출렁거리는
여든 해
할망 물질
바다를
삼켜버린 멍게
그 멍게 담은
망사리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조집 『참, 좋은 대통령』 등
그곳에 그녀가 있다
김계정
세상에는 없는 별 머리 위에서 빛나면
한잎 두잎 꽃잎인 양 물살이 키우는 꽃
차가운 생의 노래에 파도가 지나간다
웃음 한 그릇 풀어 다정하게 나눠 마시면
발끝까지 투명하게 전해지는 뜨거운 피
바다를 등에 업고서 출항을 서둘렀다
햇볕도 쉬어가는 새까만 민낯으로
출렁이는 속울음 쏟아 부은 바닷속
취한 듯 비틀거리며 만선 한 척 들어온다
2006년 백수 정완영 시조백일장 장원, 『나래시조』 등단, 시조집 『눈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