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상념의 길
S1 오리와 소녀
변화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길을 걷노라면 상념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을 온통 독차지한 상념은 그야말로 천방지축 제멋대로이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전혀 무관했던 것들이 겹쳐져 새로운 상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두 가지 별개의 일이 뒤섞여 뇌리를 맴돌기 시작한다. 새끼를 거느리고 산책 중이던 오리와 짐을 잔뜩 짊어지고 홀로 걷던 소녀가 그 주인공이다.
오리에게 시선이 꽂혀 발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서 있었던 곳은 피레네 산맥 어느 자락이었으니, 첫날(D1)이나 둘째 날(D2)이었나 보다. 인가를 못 본 지 족히 나절이나 되던, 깊고 깊은 산속이었다. 오솔길이 작은 시내에 걸쳐 있는 곳에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었다. 어미 오리가 대여섯 마리 새끼를 올망졸망 거느리고 산책 중이었다. 모든 동물의 새끼가 다 귀여운 법이지만,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만난 오리 새끼들은 내 발걸음을 꼭 붙들기에 충분했다. 새끼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어미가 인기척을 느껴서인지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길이 마주쳤다.
지나라는 소녀를 만난 곳은 덜컹대는 자갈들이 낭자한 언덕바지이니, 아홉째 날(D9)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배낭을 탁송하고 맨 몸으로 걷고 있었다. 그래도 오르기에 벅찬 언덕인데 누군가가 엄청난 짐을 메고서 앞서 가고 있었다. 짐이 몸을 가릴 정도였다. 순례자가 아니라 짐꾼인가 싶었다. 다가가 보니 젊은 여성이었다. 짐만 큰 게 아니다. 몸집도 장난이 아니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가로와 세로가 같아 보였다. 말을 건네니 “한국분이시죠?” 하며 반가운 모국어로 답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완전히 소녀였다. 눈동자는 어린아이처럼 맑았다.
이번에는 어미 오리가 나를 붙잡았다. 아무리 보아도 집오리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지만 집은커녕 사람 흔적마저 전혀 없었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오리들과 똑같은데 왜 산속에 사는지 궁금해 머리를 기웃거렸다. 오리가 말을 걸어왔다.
“왜 그러세요? 뭘 보고 그러세요?”
“넌 집오리니? 들오리니?”
“둘 다 맞아요. 그러니까 그냥 오리에요.”
“뭐라고?”
“원래 농장에서 살았으니 집오리가 맞죠. 그런데 얼마 전 이곳으로 날아와 살고 있으니 들오리가 된 셈이죠. 어쨌든 오리예요.”
“집 나온 오리라고?”
지나는 여러 모로 나를 놀라게 했다. 처음에는 제 몸만한 짐이, 다음에는 가로와 세로가 비슷한 몸집이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놀라게 했다. 가냘프지만 참 고운 음성이었다. 뭔가 조심스럽지만 모든 걸 껴안아 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기억속의 어느 목소리 못지않게 선량한 목소리이었다.
“이렇게 많은 짐을 지고 힘들지 않으세요?”
“물론 힘들지만 어쩔 수 없어요.”
“좀 줄이시지 그러세요?”
“제가 걷는 속도가 늦어 오래 걸리므로 짐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아이러니의 악순환이다. 몸이 무거워 남보다 일정을 두 배로 길게 잡았다. 그러다보니 짐이 많아지고, 짐이 많아지니 걸음이 더 더딜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짐을 줄여야 할 텐데…”
“걷다보면 차츰 줄어들겠죠.”
어미 오리가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농장에서 소문난 우량아였다. 누구보다도 잘 먹고 잘 지내기에, 토실토실 살이 찐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물론 주인아저씨가 가장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장 위를 날아가던 청둥오리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자신과 똑 닮은 청둥오리를 보고 어미 오리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고, 또 어딜 가는 것이에요?”
“나도 오리야, 저 넓은 들판, 저 깊은 산속으로 날아가고 있어.”
“난다고요? 나도 날 수 있나요?”
“왜 없어? 너도 날개가 있잖아?”
“근데 나는 날 수 없던데요.”
“줄이고 줄이면 돼. 날씬하게 우리처럼.”
지나는 등에만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더 큰 짐을 지고 있었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그녀의 삶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실례지만, 어쩌다가 몸이 이렇게…”
“글쎄요, 저도 모르게 그만…”
공연한 질문을 했나 싶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꾼 것은 역시 그녀의 선한 목소리였다.
“저는 마음이 물러요. 거절도 잘 못하고 남 싫은 소리도 못해요. 다 마음에 담아 두는데, 문제는 그만큼 많이 먹게 되더라고요.”
순간 나는 옥죄는 고3 시절을 보내던 딸이 떠올랐다. 온갖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 수밖에 없었던 큰딸의 안타까운 모습을.
“예, 그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어미 오리가 말을 이었다.
“충격이었어요. 그날 이후 저는 완전히 바뀌었어죠. 살찌는 데 연연하지 않고 반대로 뺀 것이죠. 덜 먹고 열심히 움직였어요.”
“어려움은 없었니?”
“주위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죠. 어디 아프냐고? 물론 주인아저씨가 제일 걱정했죠.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그래 지금 만족해?”
“물론이죠. 보시다시피…”
어미 오리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새끼들이 찾고 있었다. 올망졸망 새끼를 거느리고 가던 길을 서둘렀다. 뒤늦게 사진기를 들이대보지만 저만치 사라져 가버리고 없었다.
다행히 지나는 언짢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원래 그런 위인이 아니었다. 지금껏 싫은 기색 없이 궂은 것을 다 마음에 담아 두던 그녀였다.
“이제는 덜어보려고요. 매일매일 조금씩 걷다보면 등짐이 조금씩 줄어들겠죠. 덩달아 제 몸도!”
마치 보여주려는 듯이 그녀는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결코 빠르지 않지만, 든든한 발걸음이었다.
“그럼요! 당연하죠.”
나도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나라고 덜어내야 할 게 없을 리가 있나?”
스스로가 돌이켜 보아졌다. 다시 지나를 돌아보며 서로 다짐했다.
“힘냅시다. 우리 꼭 완주하게요.”
“예, 완주하세요.”
지나를 만난 지 열흘이 넘는 스물둘째 날(D22) 사리아(Sarria)에 도착했다. 시내를 가로질러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닥이 다 들여다보이는 물 위에 오리들이 물놀이에 한창이다. 오리의 몸놀림에 물풀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물풀에 물결이 일고, 그 물결에 오리가 둥실댄다. 순간 궁금해진다.
“너희들은 집오리이니? 들오리이니?”
“뭘 쓸데없는 걸 물으세요. 우리는 그냥 오리라니까요.”
지나는 얼마나 왔을까? 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S2 대환(大患)
그해 가을 특별건강진단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석회화가 시작된 폐는 심하지 않으니 조심하면 되지만, 심장은 훨씬 심각하니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심장 혈관 중 하나가 많이 막혔고, 부정맥도 심하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단축마라톤에 출전하여 입상한 경험도 있어 최소한 심장만은 누구보다도 건강하다고 자부해왔는데 말이다.
“이건 비상약이니 항상 휴대하여야 합니다. 만약 발병하면 혀 밑에 넣으세요.”
의사가 건네주는 비상약을 받아들면서 나는 J교수가 떠올랐다. J교수는 대학 후배이자 동료 교수이다. 수줍은 듯 짓는 미소가 매력적인데다가, 나와 같은 중국학을 전공하기에 남다른 친근감을 느껴왔다. 그가 그해 봄 급사한 것이다. 건강 증진을 위해 무등산을 올랐는데 그만 발병하여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변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평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시간이 희석시켜준 덕분에 충격이 가라앉자, 나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고 스스로를 달래고 북돋았다. 그러면서 [노자(老子)]의 ‘귀대환약신(貴大患若身)’을 되새겼다. “큰 병을 자신의 몸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뜻이다. ‘대환’이를 친구로 삼기로 했다. 친구가 싫어하는 것들, 흡연, 과음,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 등을 멀리했다. 담배는 과감히 싹둑 끊었다. 술도 줄이고, 심장에 우호적인 포도주를 가능한 마셨다. 식습관도 대폭 바꿨다. 물론 지속적인 운동, 특히 걷기를 ‘죽자고’ 실천했다. ‘대환’이 덕분에 몸 상태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다.
그렇지만 J교수 충격 이후 나는 높은 산은 아예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산띠아고 까미노의 여정을 기획하면서 제일 먼저 길의 고도(高度)를 체크했다. 무등산 높이를 훌쩍 넘는 산이 세 개나 된다. 잠시 망설였지만 결론은 도전하자는 것! ‘대환’이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치의의 생각은 달랐다.
“걷는 것은 좋지만, 무리하면 오히려 심장에 부담을 줍니다. 게다가 높은 산들도 있다면서요. 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의사는 환자를 걱정하는데 나는 아무튼 가야한다고 우겼다. 무리하지 않고 처방약을 충실히 먹겠다고 다짐을 거듭한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았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중단하셔야 합니다.”
“예!”
내가 택한,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산띠아고로 향하는 코스는 첫 날에 1,450m의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숨이 가프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덜컥 겁이 났다. 의사의 당부와 우려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 나와 같은 증상인지 아닌지를. 같다는 말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숨소리도 차분해지고 가슴도 탁 트이기 시작했다. ‘대환’이도 걱정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발아래 펼쳐지는 환상적인 경치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첫날 성공적인 등정 이후, 스스로 잘 걷는다고 자찬하면서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걸었다. 나는 ‘대환’이를 깔끔히 잊어버린 것이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라는 의사의 당부도 잊은 지 오래였다. 물집이 생기고 발목이 시큰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포로 걸었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발목의 통증이 심해져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D14). 또 하나 다른 ‘대환’이가 찾아온 것이다. 길손에게 발병이 생겼으니 이보다 더 큰 ‘대환’이 있겠는가? 버스로 이동하려고 했더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일요일이라 운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쌤통이다.”
아마 ‘대환’이가 심술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다. 서둘러 나는 ‘대환’이에게 화해를 청했다.
“약도 바르고 보호대도 채워줄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와 상의해서 걸을게. 조금씩 천천히 걸어보자.”
참 신기했다. ‘대환’이가 말을 알아들었나 보다. 꼼짝달싹 못하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대환’이가 가자고 해야 걸었다. 그리고 50분이 되면 멈췄다. 다시 가자고 할 때까지 쉬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나는 ‘대환’이와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발목을 다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무리하게 걸었을 것이고, 그러면 심장은 어찌 되었을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