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향후 수십 년간 세계 지정학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 책은 국제 체계에서 동시에 신흥 강대국으로 조명받는 이 두 나라를 비교 분석한다. 또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나라인 중국과 인도가 권력정치의 정의와 묘사, 본질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다. 또한 이러한 현상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역사적, 이론적 관점으로 살펴보는 한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대국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정의를 연구함으로써 두 나라의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적 입지를 보다 포괄적이고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뛰어난 경제적 역량과 갈수록 늘어나는 군사비 지출, 점점 커지는 외교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비장한 각오를 드러내며 급부상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정치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두 나라에 특히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중국과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가 동시에 부상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아시아라는 매우 복잡한 지역에서 두 나라 모두 지리학적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따라서 중국과 인도를 함께 분석함으로써 공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두 나라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 21세기에 강대국이 의미하는 바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 [서론] 중에서
중국의 과거는 중국 공산당의 외교 정책과 자아상의 토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오쩌둥은 권력관계와 위협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가난한 중국을 부유한 나라로 만드는 것, 즉 권리를 박탈당하는 나라에서 권리를 누리는 나라로 바꾸는 것(루이스, 1963:261)”을 목표로 삼았다. 중국 공산당의 긴 개혁의 역사는 조직의 밑바탕이 되는 원리를 구상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중국 공산당은 기본적으로 레닌주의적 원칙을 따랐기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의 구조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세 가지 중요한 이념이 중국 공산당 조직의 틀을 뒷받침했는데 민주집중제, 소수자에 대한 보호, 마오쩌둥의 집권이 끝난 후에 자리 잡은 집단지도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민주집중제란 소수의 지도자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즉 강제성이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소수자에 대한 보호는 의견의 다양성과 이를 표출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일치된 의견에 따라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집단지도체제는 한 사람의 지도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한다. 이런 레닌주의적 관점에 중국의 전통적인 세계관이 더해져 중국 고유의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네이슨&로스, 1997:33)”가 발현했다
--- [제1장 국내 결정 요인] 중에서
역사는 또한 자국에 대한 인도 지배계층의 인식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인식은 고대 문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무굴 제국(16세기 중반~19세기 중반)은 절정기에 오스만 제국의 다섯 배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했다. 중국 황실과 마찬가지로 외부 세력의 영향력이 “문화적 융합을 통해 수용되고 동화(말론, 2012:19-20)”되었고, 이는 통합적 다양성과 종교적 포용으로 이어졌다. 1700년 인도는 전 세계 경제 생산량 중 3분의 1가량을 차지했다(매디슨, 2003:239). 당시 인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며, 문화와 문명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외국 문물이 흘러들어와 기존 문화에 영향을 미치면서 흡수되는(네루, 1946:62)” 곳으로 간주되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국제 사회 속에서의 존재감이 더해졌고 지배계층 사이에 인도가 “지역적 그리고 국제적으로 전략적 역할과 권력(탄함, 1992:129)”을 행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때문에 강대국을 향한 인도의 열망은 자국에 대한 인식과 인도 제국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또한 외부 세계와의 지속적인 관계와 남아시아에서의 전략적인 중심성도 관련 있다.
--- [제2장 전략적 문화와 정체성] 중에서
중국의 물리적 크기와 경제적/군사적 역량은 오랫동안 중국이 아시아의 주요 국가로 활동해온 배경이 되었다. 과거 제국 시절 중왕국이라는 입지와 패권주의적 우월성을 추구했던 것처럼, 중국은 다시 한번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고자 한다. 수 세기에 걸쳐 지역 내 다른 국가보다 중국 문명이 훨씬 뛰어나다고 믿는 중국 예외론은 오늘날 중국의 지도층과 국민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권력과 안보, 존경을 얻기 위한 ‘국제적 입지’에 대한 열망은 1990년대부터 중국의 외교 정책을 지배해왔다. 이러한 요소는 중국 외교 정책과 2만 2,447킬로미터에 달하는 국경과 접해있는 주변국의 인식(육지로는 14개국, 해상으로는 7개국)에 영향을 미친다. 1만 4,500킬로미터 정도인 해안선을 비롯해 중국은 세계에서 토지 경계선이 가장 긴 국가이며 인접국의 숫자도 가장 많다. 또한 태국, 아루나찰프라데시(인도와의 분쟁), 여러 소규모 섬(일본과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분쟁)을 둘러싼 영토 분쟁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중국은 자국 영토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을 ‘신성한 헌신’이라고 여기는데, 이를 통해 위대한 국가적 통합(대일통)의 영광을 재현하고 과거의 굴욕을 만회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은 1950년 10월 티베트에 침입했고 중국 영토의 일부로 흡수했다.
--- [제5장 주변국과의 관계] 중에서
인도의 경우 국가적 정체성과 전략적 문화(제1장, 제2장 참고), 주요 가치관이 다자주의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개념을 바탕으로 인도의 지도자들은 절대주권에 대한 신념을 형성했다. 이는 인도가 국제정치에서 독립과 불개입, 비동맹을 고집하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불개입의 원칙은 식민지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반식민지주의 정서를 전파했으며 외교 정책의 자주성에 있어 제한적인 그 어떤 외부 개입도 차단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또한 비동맹 전략을 통해 이러한 자립성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이는 “완벽하게 현실주의적이면서도 개념적(바즈파이, 1998:162)”인 전략적 목표였다. 결정적으로 인도 지도층은 자국의 접근법이 단순한 중립적인 태도가 아닌 국제 시스템에서 인도의 이익과 가치관, 전반적인 세계관을 도모할 수 있는 행동주의적 입장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마하트마 간디의 스와라지, 즉 자결권을 가진 국가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비전이 강대국 또는 패권국에 의해 억압받지 않도록 하는 자치라는 개념과도 관련 있다.
--- [제6장 다자간 상호작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