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야경국가론夜警國家論이다.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스미스는 ‘국가는 도둑이나 지키면 된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거꾸로 ‘문명이 발달할수록 정부의 역할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방, 사법, 공공사업, 교육 같은 일은 정부(국왕)의 의무임을 명확히 밝혔다. 특히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의 불의나 억압으로부터 최대한 보호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는 스미스의 지적은, 자본권력의 무한 폭주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와는 결이 달라도 한참 달라 보인다. [52~53쪽, 제2장 진정한 부란 무엇인가?]
예컨대 내가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해서 임금으로 10만 원을 받았다면, 나의 노동은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짜리 화폐 두 장에 고스란히 저장된 셈이다. 문제는 이 화폐를 노동을 하지 않은 자, 다시 말해 부를 생산하지 않은 자가 차지할 때이다.……가장 나쁜 것은, 이미 가진 부를 이용해서 타인의 부를 쉽게 빨아들이는 수법이다. 부동산 자산을 이용한 지대 추구, 정보의 편향성을 이용한 시세차익 선점 등 여러 수단이 있다. 환율 등락, 금리 변동, 인플레이션, 거품 팽창 등의 경제현상 뒤에는 시장권력자의 의도적인 조작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월가의 큰손들이 시장을 움직인다. [78~79쪽, 제3장 돈이 많으면 행복한가?]
신용카드가 화폐처럼 보이는 까닭은 상품을 구매할 때 결제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용카드에는 부가 축적되지 않는다. 신용카드는 지불수단이 아니라 ‘지불을 연기’하는 수단이다. 신용카드는 카드 사용자(소비자)와 카드 가맹점(판매자) 사이에서 돈의 이동을 중개하는 단말기에 지나지 않는다. 카드회사는 중개의 대가로 수수료를 얻는다. 카드회사가 가입자에게 온갖 혜택을 주는 데에는 카드 사용을 장려함으로써 수수료 수익을 높이려는 속셈이 숨어있다. 물론 얇은 플라스틱 카드만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가맹점마다 카드 리더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카드와 카드 리더기, 눈도 귀도 없는 두 단말기가 어떤 전자신호를 주고받는지는 카드 주인도 모르고 계산대의 판매원도 관심 밖이다. “한도 초과인데요”라는 말은 판매원이 하지만, ‘결제 불가’ 판정을 내리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수십 킬로미터 혹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카드회사의 컴퓨터 서버다. [98~99쪽, 제3장 돈이 많으면 행복한가?]
세상의 거의 모든 상품은 달러로 값이 매겨지고, 달러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석유는 말할 것도 없고 금·은 같은 귀금속과 구리·납· 니켈 등의 원자재는 대부분 달러로 값을 치른다. 옥수수, 쌀, 밀, 콩 등 사람과 가축이 먹는 곡물도 달러 없이는 구입할 수 없다. 그뿐인가? 세계 모든 화폐의 가치가 달러에 의해 평가되고, 달러 기준으로 환율이 결정된다.……달러가 세상의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 것은, 결정적으로 지상에서 금본위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달러는 금이라는 버팀목을 스스로 치워 버렸다. 하지만 석유를 볼모로 잡고 다시 살아났다. [125~126쪽, 제4장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가 되었나?]
미국의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에서 금을 빌려서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한다. 금괴는 여전히 중앙은행 금고에 있고, 장부상으로만 시중은행에 임대한 것으로 기록된다. 중앙은행은 건물주가 집세를 받듯이 꼬박꼬박 임대료를 챙기고, 시중은행은 중앙은행 금고에 보관된 금을 고객에게 판매한다. 그러나 고객에게 고유번호가 찍힌 금괴가 할당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고객이 소유한 금이 은행 금고에 있다는 증서만 발급해 줄 뿐이다.……현물 금을 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은 같은 금을 여러 사람에게 거듭해서 팔 수 있다. 사기에 가깝지만 불법은 아니다. [168쪽, 제5장 금은 길들일 수 없다]
미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대부분 창업주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다. 그들은 채용될 때 고액 연봉과 함께 스톡옵션stock option을 받는다. 스톡옵션이란 기업의 임직원이 일정 기간 내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자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스톡옵션은 주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살 권리’를 받는 것이므로, 약정된 가격보다 주가가 낮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거액의 차입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증권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의 수량이 감소하므로 주가가 올라간다. 그리고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우리 회사 주식이 저평가되었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면, 귀가 솔깃해진 개미투자자들이 주식 매수 대열에 합류한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가장 좋아한다. 보유한 금융자산이 무럭무럭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가가 올라간 만큼 스톡옵션을 가진 경영자의 이익도 커진다. [240~241쪽, 제8장 도박판으로 변한 세상]
‘민영화’는 생산과 공급과 유지관리를 시장 논리에 맡긴다는 뜻이다. 즉,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재화나 서비스가 제공된다. 돈을 더 많이 내는 사람에게는 더 나은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된다. 골목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골목길에 가로등은 세워지지 않는다. 밤길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은 일찍 퇴근하는 사람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시장 논리에 부합한다. 사설 경찰서에는 범죄 추적의 난이도에 따라 가격표가 불을지도 모른다. 절도범 500만 원, 특수강도 3,000만 원,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범죄에는 할증료 부과. 신변보호 서비스도 요금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고, 범죄예방 서비스는 부촌에 집중될 가능성이 많다. [287쪽, 제9장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거짓말]
오늘날 농업의 석유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인의 식탁을 가리켜 “석유가 차린 밥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극소수의 자연농업 실천가를 빼면 대부분 기계로 밭을 갈고, 기계로 이랑을 만들고, 기계로 비닐을 씌운다. 기계로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고, 기계로 농약을 치고, 기계로 비료를 주고, 기계로 수확하고, 기계로 도정搗精한다.……유가가 오르면 식량생산비용이 따라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312~313쪽, 제10장 식량은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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