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현명하게 살기 위한 삶의 지혜
인생은 계획, 결심, 실천, 이 세 가지가 맞물려야 성장할 수 있다. 계획이란 지금의 상황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세우는 노력이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게 세우면 소용이 없다. 실천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워야 자신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계획을 세웠으면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저 머리로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계획을 세우느니만 못하다. 이러한 성실성이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한 걸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올 한해의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 자기의 발전에 필요한 구체적인 목표들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 실현을 위한 여러 가지 실천 방법들을 생각해,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 갖는 마음가짐 즉 초심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 처음에 가졌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매일매일 최선을 다한다면 그 결과는 훌륭했습니다.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해서 처음에 가졌던 마음들을 잊게 된다면 발전은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세운 한 가지 목표라도 그 목표를 세울 당시의 결심을 간직하면서 추진하십시오. 아침인 젊은 시절을 유혹에 정신을 빼앗겨서 놀고 보내느냐, 아니면 부지런히 일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됩니다. --- pp.13-14
“일 년의 계획은 정초에,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세워야 한다. 봄에 곡식을 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서두르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을 다 하지 못 한다.” -『명심보감』
동서양 전사들의 교훈
마셜, 알렉산드로스 대왕, 오기, 롬멜 등의 이야기를 통해 전투에서 발휘되는 용기와 기개, 투철한 책임감, 그리고 모든 장병이 상하간의 차이 없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진정한 군인 정신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극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1897년 침몰직전에 있었던 영국의 함정 워렌 허스팅(Warren Hursting)호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당시 함정에는 4개 중대의 병력이 타고 있었습니다. 적의 배와 접전을 벌이게 된 허스팅 호의 병사들은 지휘관이 이끄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포격전을 벌였으나 적의 포탄에 기관실이 파괴되어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적함의 접근을 막기 위해 소총병들은 갑판 곳곳에서 사격을 계속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구명보트가 내려지고 질서정연하게 병사들은 장교의 명령에 따라 하선하는 중에도 경계중인 병사들은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한 치의 물러남이 없이 사격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은 병사들이 전부 하선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갑판위로 가려고 했을 때 아래 선실에서 한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장교님. 저도 하선해도 될까요!” 지휘관은 그때서야 소총병들에게도 하선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지휘관이 재빨리 선실로 내려갔을 때 그는 한 병사가 목까지 물이 차 올라와 있는데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p.146
뜨거운 가슴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지켜온 호국영령들의 이야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음의 순간에도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자 했던 김만술 소위, 부하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애를 썼던 채명신 장군, 투철한 군인 정신을 발휘했던 노병 조창호 등 끝까지 책임 완수를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한 희생정신에서 우리는 내가 사는 이 나라의 중요성을 깨닫고 현재의 소중함과 감사함, 대의를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각오를 다짐할 수 있다.
1953년 6월말 휴전직전의 이야기입니다. … 이때는 피·아 쌍방이 모두 휴전을 앞두고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려고 밤낮 없이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베티고지를 사수하라는 상급 부대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전술상 이 베티고지는 매우 중요한 곳으로서 만약 이 고지가 적에게 빼앗긴다면 아군의 작전은 매우 불리해질 것입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 상사는“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고지만은 내가 지켜야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소대원들에게 밤이 되기 전에 개인호를 완성시켜 놓을 것을 명령하고 자기도 삽자루를 쥐고 땅을 팠습니다.
… 이윽고 머리 위에서는 아군의 포탄이 터지고 피비린내나는 혈전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탄환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김 상사는 참호 속에서 뛰어나왔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푸른빛이 튀었고 그 모습은 성난 사자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찌르고 차고 해 그의 앞에는 산더미같이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죽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한 놈이라도 더 죽여 베티고지를 끝까지 사수해야지.”
어느덧 동이 훤히 트고 중공군들은 퇴각하기 시작했으나 김 상사는 기관총을 난사하여 최후의 한 놈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뒤쫓았습니다. 베티고지는 48시간 동안의 혈전 끝에 완전히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위대한 투지와 감투정신의 결과였습니다. --- pp.201-202
국가의 정체성
우리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제 한 몸을 기꺼이 희생했던 애국자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어린나이지만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어리지 않았던 유관순, 나라를 사랑하고 기꺼이 제 목숨을 바친 그 희생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죽어가는 순간에도 나라 걱정을 하던 김구, 안중근, 안창호, 도시락 폭탄을 만들었던 윤봉길까지. 눈을 감는 그날까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한이 서린 애국심에서 우리는 진정한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유관순은 16세의 어린 소녀답지 않게 대열을 정비하며 시위 군중들을 지휘했습니다. 정오가 조금 지나자 독립 선언문이 낭독됐고 이어서 유관순은 독립의 당위성을 군중들에게 역설하였습니다. 기습적인 만세 시위가 벌어지자 일본 헌병들은 허겁지겁 출동하여 시위 군중들을 무력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칼을 휘두르며 가혹한 행위를 통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려 했고 이때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피살되었습니다.
유관순은 만세 시위 현장에서 부모를 잃었지만 이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헌병들에 의해 체포되었고 만세 시위를 모의하고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구금돼 혹독한 고문을 당합니다. 유관순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고서도 끊임없이 만세를 외쳐 수감된 사람들을 격려했으며 간수들은 그때마다 유관순을 끌어내 심한 매질을 하고 혹독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1920년 10월 12일, 유관순은 평소와 같이 만세를 불렀고, 또 매를 맞기 위해 끌려 나갔습니다. 짧은 생애를 뜨겁게 살다 갔지만 그녀의 희생과 애국의 혼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