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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만큼의 눈물로 너를 기다렸다

바다만큼의 눈물로 너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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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32g | 138*203*20mm
ISBN13 9788954438865
ISBN10 895443886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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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등을 선교관 벽 쪽으로 강하게 밀쳤다. 석재 벽에 코를 찧는 사태를 막기 위해 나는 반사적으로 두 팔을 뻗쳐 손바닥으로 벽을 짚었다. 승민 오빠가 내 손목을 낚아챘을 때부터 그가 하려는 행동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극적인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푸른 표정과 얼굴빛이 무섭기도 했고 또 그만큼 그가 슬프고 아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거나 제발 이러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에 동조한 것 역시 아니었다. 그저 눈을 질끈 내리감음으로써 나를 방치했을 뿐이다.
(……)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나는 승민 오빠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확히는 선교관 후미진 곳에서 그 일이 있었던 날, 그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새벽녘에 목을 맸다. --- p.23~24

그래서였을까, 눈을 감고 만족감으로 한껏 고양돼 있던 어느 순간 울컥했다. 온몸의 세포가 눈을 뜨는 것 같았다. 지금껏 벙어리로만 살아온 내 몸이 내 마음에 말을 거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야. 너무나 오랜만이지.
응, 나도 말할 수 있어. 네가 내 말을 들어 줄 귀를 아예 열지 않아서 지금껏 기나긴 침묵을 지켜 왔을 뿐이지.
그래, 마음이 소리를 내듯이 몸도 당연히 소리를 내.
그런데 희진아, 넌 왜 지금껏 그렇게도 몸을 혹사시키고 살았니? 종 부리듯 일만 시키고 가둬 둔 채 살았잖아?
나와의 대화는 낯설었다. 그렇게 몸이 마음보다 먼저 느껴진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이곳이 천연이고 야생이어서 자연의 원형질로 이뤄진 몸이 먼저 반응하는구나 싶었다. 낯설고 아주 색다른 느낌이자 경험이었다. --- p.57~58

수면에 한쪽 뺨을 댄 나와 앤디의 눈빛이 어느 순간 마주쳤다. (……) 그의 까만 눈동자와 젖은 나의 눈이 설핏 흔들렸다. 그의 눈 속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그 빛을 읽은 순간 나는 눈을 지르감았다. 그의 두 손이 내 어깨와 뒷머리를 부드럽게 받쳐 안았다. 동시에 그의 젖은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맑고 촉촉했다. 이윽고 부드러운 혀가 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우리는 조금씩 퍼덕거리기 시작했고 수면 위로 커다란 물방울들을 튀겨 냈다. 나는 해조류같이 신선한 그의 혀를 혀끝으로 휘감았다. 두 팔로 그의 목과 뒷머리를 강하게 부둥켜안았다. 태양 빛과 물방울이 녹아 있는 그의 붉은 혀끝이 목을 타고 내려올 때 나는 불과 얼음의 촉수를 동시에 느꼈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각이 전신의 살갗에서 도톨도톨 일어나는 것 같았다. 사위가 물임에도, 내 안 어디엔가 단단히 재워진 마른 섶에 불꽃 하나가 던져져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 아니었다. 우리 두 사람의 버둥거림으로 인해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은 푸르고 투명한 불꽃이었다. 그의 입맞춤이 너무나 뜨거워 나는 사막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온몸을 퍼덕거렸다. --- p.100~101

그 불안정함의 정체는 내 안에 갇힌 욕망과 욕정이었다. 그의 싱싱하고 활기찬 물고기를 한 번만이라도 더 내 안에 들이고자 하는 갈증. 그러면서도 그런 나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또 다른 생각…….
(……)
나는 느낌으로 알았다. 2층에 있는 그 또한 나처럼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방 문을 열고 그림자처럼 빠져나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그래서 가족이 모두 잠든 시간, 나는 차를 끓인다는 것을 명분 삼아 그의 잠 못 듦에 기꺼이 부응한 것이었다.
역시나 그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
앤디가 내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나는 그에게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가 입술을 누를 때마다 화인(火印) 찍히듯 뜨거워진 나는 몸을 꿈틀거렸다. 내 등을 품은 그의 탄탄한 가슴이며 엉덩이께에 닿는 그의 튼튼한 허벅지가 내 숨결을 단숨에 덥혔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혀 허겁지겁 그의 입술을 찾았다. 그의 젖은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혀가 입술을 밀고 들어와 나의 혀를 뿌리째 휘감았다. 그가 거실 소파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 p.160~162

“오 기자님, 대체 무슨 동영상이 떴길래 그래요? 어떻게, 내가 나오기라도 한답니까?”
근처에서 수석 보좌관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얼굴이 파랗게 질려 난감해하고 있었다. 나는 오 기자와 통화 중인 휴대폰을 한 손에 든 채, 다른 손으로 보좌관에게 휴대폰을 가져오라고 손짓을 보냈다.
“일단 의원님 이름이 제목으로 들어간 동영상입니다. 그런데 이거…… 절대로 사실이 아닌 거죠?”
오 기자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보좌관이 건네주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기절할 뻔했다. 표정을 들킬까 싶어 곧바로 몸을 유리 벽 쪽으로 돌려세워야 했다.
어,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누가 목을 힘껏 조르는 듯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동영상 속 여자는, 나였다. 분명했다. 영상 속 장소는 평범한 나무 침대 하나가 흰 벽을 배경으로 놓여 있을 뿐이었지만, 필리핀 민도로 섬 사방 비치의 앤디 숙소가 틀림없었다. 그 침대 위에서 중년 여자와 젊은 남자가 발가벗은 채 거친 섹스에 몰입해 있었다. --- p.184~185

나는 필리핀행 비행기를 타기 전 싱가포르 창이 공항의 화장실 쓰레기통에다가 휴대폰이며 주민등록증을 버렸다. 그것은 나로부터 내 나라를 완전히 지워 내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남편도, 자식도, 지위도, 명예도 다 잃었다.
내 탓인 것을 알면서도 그 상실감은 죽음처럼 깊었다. 모든 죄와 벌의 끝은 혼자가 되는 것이다. 철저히 혼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혼자라는 것은 얼핏 무한 자유를 느끼게 하지만 결국 삶으로부터의 소외고 죽음과 친화력을 가지게 되는 독자적 상태를 뜻한다. 내가 겪을 이후의 고독은 상실감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매 순간 죽어 가는 존재라는 냉엄하지만 단순한 진리를 넘어서, 보다 구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치러 내는 죽음과의 친화 과정일 터였다. --- p.243~244

어느 순간이었다. 그 어떤 둔중한 느낌이 지극해져서 목이 메었다. 사위가 온통 물인 그곳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지금 내 목젖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공포인지 두려움인지,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몸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도 정하지 못하는 동안 내 안에서 난데없이 흐덕거리는 울음이 솟구친 것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아무도 없는 검은 밤바다 위에서 이러고 있는 내가 가엾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인가?
진정 나는 누구인가?
그런데 내 목숨은 과연 내 것일까?
내 선택이 내 존재를 지나친 건 아닐까?
새삼스럽게 그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 질문들은 분명 삶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기인되었다.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 분명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또 서러워 다시 눈물이 흘렀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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