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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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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7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218g | 128*208*20mm
ISBN13 9788960213784
ISBN10 896021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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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


우리를 숨죽이게 한 건 3·8선이 아니었다
검문하러 올라온 총 든 군인도
검게 탄 초병들의 날카로운 눈빛도 아니었다
기찻길 건널목에 붉은 글씨로 써놓은 말 섯!
그 말이 급한 우리를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두 다리로 짱짱히 버티고 서 고함을 지르는 섯,
그 뒤엔 회초리를 든 호랑이 선생님이
두 눈 부릅뜨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커다란 방점이 떠억 하고 찍혀 있는 것 같았다
멈춤 정도야 뭐 말랑말랑한 말로 느껴질 뿐이었다
섯에 비하면 정지나 스톱 같은 말도 그저
앙탈이나 부리는 언어로 느껴질 뿐이었다
남에서 올라온 내 발 앞에 꽝,
대못을 박고 가로막는 섯!
그 섯 가져와 자살 바위 옆에 세워두고 싶었다
그 섯 가져와 기러기 떼 날아가는 노을 속에
슬그머니 척, 걸어두고 싶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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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을 겪은 오봉옥 시인은 서사시집 『붉은 산 검은 피』(1989)로 엄혹한 고초를 겪었다. 그 시절 그는 브레히트였고 네루다였으며 김남주의 후계였다.
그로부터 30년의 역사적인 풍화로 “중늙은이가 되어/ 눈물이 많아졌다”는 이 시인. 연륜과 더불어 그의 예지는 “진정한 마술사라면 하늘도 속일 줄 알아야 하지”라는 경지에 이르러 사과에서 별을 보며, 별에서 꽃과 나비를 날려 보내는 환상적 즉물시卽物詩의 세계를 구축했다. 사랑, 죽음, 민주주의, 꽃, 나비 그리고 인간, 이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게 등대임을 깨닫게 해주는 아름다운 명상시집이다.
- 임헌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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