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랫동안 영상번역가로 활동한 터라, 종종 받는 질문입니다. 사실, 이 한 문장에 숨은 뜻은 ‘어디에 이력서를 보내야 하나요?’일 때가 많습니다. 직접적으로 좋은 번역 회사를 콕 찍어 알려 달라고 묻는 이도 있죠. 질문의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이력서를 보낼 만한 좋은 번역 회사를 소개해 준다고 해도, 번역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애초에 일을 시작할 수 없으니까요.
제대로 된 대답을 들으려면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번역가가 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외국어 실력과 글쓰기 능력, 탄탄한 배경지식. 이 세 가지만 갖추면 됩니다. (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면 되지요. 그런데 바로 이 ‘실천’이 문제입니다. 백 가지 공부법을 안다 해도 실천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니까요.
번역가가 되면 365일 매일 숨쉬듯이 번역을 해야 하는데, 매일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랜 시간 공부에 매달린다고 반드시 번역가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공부하지 않으면 번역가가 될 수 없는 건 분명합니다. 많은 이들이 번역가를 꿈꾸지만 ‘공부’라는 첫 관문부터 지쳐서 통과하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고 맙니다.
2015년을 바로 며칠 앞둔 어느 날,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단군 신화 속 곰이 동굴 안에서 꾹 참고 마늘만 먹고 인간으로 변한 시간, 100일. 그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한다면 번역가로 살아가는 기초 체력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했죠.
그래서 ‘100일 번역마늘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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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번역가 지망생들이 도전했지만, 여기 세 명의 중국어 번역가도 100일 번역마늘 프로젝트에 도전했습니다. 중국어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입문했지만 좀 더 탄탄한 실력을 쌓고 싶었다는 신노을. 중국어 통역과 번역, 교육 등으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영상번역가를 꿈꿨던 임혜미. 문서번역, 게임번역, 출판번역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년간 번역가로 경력을 쌓았지만 공부를 지속하고 싶어 했던 김정자. 이 세 명은 각자 자신의 목적에 맞춰 계획표를 짜고 100일 동안 따로, 또 같이 공부했습니다.
신노을은 중국어 통번역 대학원 입시 준비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처럼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데뷔했지만 실력의 한계를 느끼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통번역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의 공부법을 100일 동안 실천했습니다. 한창 슬럼프에 빠져 허덕였는데 100일 번역마늘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력하던 출판번역을 잠시 쉬고 중국 드라마 번역에 전념하고 있죠.
임혜미는 영상번역과 웹툰번역에 초점을 맞춰 계획표를 짰고, 100일 번역마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틈틈이 영상번역가로 데뷔할 준비를 했습니다. 과제를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영상번역가로 입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00일 번역마늘 프로젝트 내내, 번역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틈틈이 정리했던 게 번역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50부작이 넘는 중국 사극 드라마도 거뜬히 번역해 낼 만큼 탄탄한 실력을 자랑합니다.
김정자의 100일 계획표는 출판번역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20일씩 총 5개 파트로 나누어, 한국 단편소설 필사, 중국어 원서 필사, 배경지식 익히기, 중국 역사 공부, 실전 번역으로 구성했습니다. 손을 움직여 노트에 기록을 하는 아날로그식 공부에 매료돼, 캘리그라피와 그림을 과제에 접목하기도 했죠. 지금도 매일 습관적으로 공부를 하는 한편, 다양한 분야의 번역을 하며 자기만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답니다.
이 세 명 모두, 입을 모아 말합니다. “번역가로 데뷔했다고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이들의 100일간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중국어 공부법과 번역 팁은 물론, 번역에 대한 애정도 엿볼 수 있죠. AI 번역이 점점 발달하는 상황에서, ‘미래에 없어질 직업’으로 꼽히는 번역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은 번역하는 순간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단순한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나는 왜 번역가가 되려고 하는가?” 이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지고 그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며 왜 번역가가 되려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세요.
번역가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면, 3인 3색 번역가의 공부법을 따라 100일 번역마늘 프로젝트를 실천해 보세요. 100일 후, 번역 웅녀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