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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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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244g | 128*188*20mm
ISBN13 9788960213760
ISBN10 8960213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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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상회

분절된 말들이 이 골목의 모국어다
춥고 높은 발음들이 산을 내려온 듯 어눌하고
까무잡잡하게 탄 말들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는 골목을 만들고
늙은 소처럼 어슬렁거리는 휴일이 있다
먼 곳의 일을 동경했을까
가끔은 무명지 잘린 송금이 있었다
창문 없는 공장의 몇 달이 고지대의 공기로 가득 찬다
마음이 어둑해지면 찾는 네팔상회
기웃거리는 한국어는 이국의 말 같다
달밧과 향신료가 듬뿍 밴 커리와 아짜르
손에도 엄격한 계급이 있어 왼손은 얼씬도 못하는 밥상
그러나 흐르는 물속을 따라가 보면
다가가서 슬쩍 씻겨 주는 손
그쪽에는 설산을 돌아 나온 강의 기류가 있다
날개를 달고 긴 숫자들이 고산을 넘어간다
몇 개의 봉우리가 창문을 두드린다
질긴 노동이 차가운 맨손에서 목장갑으로 낡아갔다
세상에는 분명 돌아가는 날짜가 있다는 것에 경배,
히말라야 줄기를 잡아끄는 골목의 밤은
왁자지껄하거나 까무잡잡하다
네팔 말을 몰라 그냥 네팔상회라 부르는 곳
알고 보면 그 가게 주인은 네팔 사람이 아니다
돌아갈 날짜가 간절한 사람들은 함부로
부유하는 주소에서
주인으로 지내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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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와연의 시는 우리를 따뜻하게 보듬는다. 그의 시에서는 다독거리는 따끈한 손맛이 느껴진다. 시인은 주변의 하찮은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의 눈이 닿으면 모든 것들은 아름다워지고 무한한 의미를 갖게 된다. 「곶감 덕장」에서 덕장은 단순히 곶감을 말리는 곳이 아니라 시를 쓰는 것처럼 ‘나를 말리는 일’이 되고, 「유리를 부는 사람」에서 유리 공장 노동자의 짠한 삶은 ‘폐활량은 쉽게 깨진다 깨지는 순간 숨도 깨진다’라는 표현으로 아름답게 승화된다. 그리고 「돼지감자」에서는 못생긴 돼지감자를 먹는 사람의 단맛 나는 피를 발견한다. 이러한 승화는 「덕장 탈출기」에서 ‘소갈머리는 없어도 아직 뼈는 동강나지 않았다는 것’처럼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갖고 찬찬히 들여다봐 주는 데에서 얻을 수 있다. 이는 삶의 무게를 느껴본 사람이 아니면 얻을 수 없다. 「달리는 이불」의 ‘달리는 이불은 지금 어떤 잠자리인가’는 용달 트럭으로 이사를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보름달 경기」나 「보충 질문하는 꽃」에서 튀는 비유가 전혀 낯설거나 어렵지 않게 가슴으로 녹아드는 것은 그만큼 그가 조곤조곤 얘기하듯 시를 손에 쥐어줄 줄 알기 때문이다.
- 전기철 (숭의여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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