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은퇴를 앞당겨 광화문을 탈출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나는 별다르게 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아이들도 성장해 스스로를 책임질 나이들이 되었으니 엄마인 나도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원했다.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품어 주는 산속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임지수’ 나 자신으로 살아 보고 싶었다. 그 열망이 너무도 강했기에 나는 가족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꿋꿋하게 산골로 향할 수 있었다. ---「꽃과 나무를 가꾸는 산골 농부의 꿈」중에서
독립 선언 후, 나는 혼자 묵묵히 산으로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주말마다 땅을 알아보러 다니고, 농사에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해 틈틈이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동시에 회사를 정리하기 위해 조금씩 업무를 축소해 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갈 엄마로서 아내로서 미래의 내 위치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내 존재가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 자존감을 지키며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불과 몇 년 뒤면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완전히 독립할 것이다. 이미 스무 살 넘은 자식들에게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남편은 늘 그래왔듯 일과 취미를 조화롭게 즐기며 지낼 것이다. 그러니 내가 곁에 없으면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빈자리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은 더욱 산으로, 산으로 내달렸다. ---「내 인생의 중심은 바로 ‘나’」중에서
직장을 갖게 되자 완전한 자립은 아니어도 조금씩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작은 변화는 생활에 활력을 가져왔고, 다시 웃을 수 있게 했으며, 나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토대가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을 얻고 싶을 때 스스로 해결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하고 좌절감을 불러오는 일임을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산골살이를 하겠다고 가족에게 떳떳하게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도 자립적으로 생활을 꾸려 갈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산골살이를 계획하면서도 최우선 과제는 역시 경제적 자립이었으므로 어떻게든 몇 년 안에 안정적인 수입이 나오는 구조를 만들 방도를 찾느라 애썼다. 그리하여 땅을 사자마자 몇천 주의 묘목부터 심었는데 그때 심은 회초리 같던 묘목들이 어느덧 큰 나무로 자라 이제는 해마다 일정 정도의 수입이 되어 돌아온다. 기본적인 생활을 꾸려 갈 수 있는 귀한 자산이다. 처음 산골로 들어올 때는 도시와 달리 마음먹기에 따라 그리 큰돈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도 했었다. 하지만 산골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경제적 자립이 곧 인격의 독립」중에서
모든 일을 혼자 해내고 견뎌야 했던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그 사이 나는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으로 건너왔고, 두 아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했다. 요즘은 가족 모임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의 정원에서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이제는 남편이나 아이들 모두 근심 걱정 없는 건강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내 모습을 좋아한다. 남편은 볼 때마다 달라지는 나의 정원에 감동하는 눈치고, 딸아이가 전해 주는 말에 따르면 밖에 나가서는 ‘마누라 자랑’까지 한다니 그야말로 세월이 약인가 보다. 결혼한 아이들 부부가 남편과 함께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부부가 만들어 낸, 조금은 다르면서도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 그대로가 참 좋다. ‘졸혼’이라는 말을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선택한 삶이었지만 평화로운 공존, 또 다른 ‘백년해로’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또 다른 백년해로, 졸혼에 대하여」중에서
메마른 야산을 농장으로 가꾸기 시작한 지 4년 만에 나의 농장에 이름을 달아 주었다. 판자에다 f‘arm 나무와 풀’이라고 흘려 쓴 간판을 농장 대문 앞 돌 더미 위에 걸쳐 놓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어느덧 농장에는 무엇 하나 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바위 하나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겨울 눈밭에서도 어디쯤에 어떤 구근이 묻혀 있으며, 어디에서 무슨 꽃이 피어날지, 나는 다 안다. ---「나무와 풀이 주인인 산속 농장」중에서
나는 여전히 해마다 묘목을 심는다. 작년 봄에는 겹벚나무 묘목 100주를 심었고, 블루베리와 아로니아, 똘배나무, 살구나무, 산목련나무 묘목도 심었다. 올봄에도 산수유와 블랙커런트 묘목을 100주씩 심었다. 나무를 심는 일은 그 자체로 내가 보낸 시간의 기록이다. 나무를 심으며 보낸 봄날의 하루가 어딘가에서 새로운 의미로 뿌리내리는 기쁨을 알기에 나무 심기를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내가 기른 나무들은 어딘가에서 새잎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시선을 머물게 하고 누군가의 땀을 식혀 주는 쉼터가 될 것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조경수 가꾸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