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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늑대들 1부 세트

하얀 늑대들 1부 세트

[ 전3권, 양장,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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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7월 1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400쪽 | 150*225*8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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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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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되었더라?’
카셀은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히 누워 있어 본 지가 얼마만인지 새삼스럽게 떠올려보았다. 아마도 고향을 떠난 후 처음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최근 한 달간은 낫으로 풀을 베거나 군량을 짊어지고 이동한 기억밖에 없었다.
사흘 전에 창술 훈련 끝난 다음에 누웠던가? 아니, 그다음 바로 이동 시간이 됐다고 해서 군장을 챙겼다.
이틀 치 이동 거리를 하루 만에 강행했으니 수고했다고 휴식 시간을 줄 때 잤던가? 아니, 바로 야식 만들라고 불려 나갔다.
대기조에 껴서 선잠을 잔 건 제외했다. 그건 누운 게 아니니까.
마침내 카셀은 나흘 전에 밀 포대 옆에서 쭈그리고 잤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그것 때문에 뒈지게 얻어터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누워서 자긴 했다. 즉, 나흘 만에 누운 셈이었다.
오늘 아침,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전투가 벌어졌다. 카셀은 그게 적의 기습인지, 아니면 아군의 계획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지휘관이 전진하라고 할 때 전진하고 후퇴하라고 할 때 후퇴한 게 전부였다. 창을 들고 우우 소리를 내며 휩쓸려 다니긴 했는데, 적이 누군지도 몰랐다.
카셀은 창 한 번 찔러보지 못하고 적병에게 떠밀려 쓰러졌다. 카셀보다 어린 소년 병사였는데, 목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숨을 헐떡이다가 카셀의 몸 위에서 죽었다.
‘그게 나였을 수도 있었어.’
카셀은 그렇게 시체에 깔린 채로 누워 있었다. 바로 옆에서 비명과 고함 소리가 요란한 와중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반나절 후 전투의 소음이 사라진 후에야 눈을 뜨긴 했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진 않았다.
어디선가 수십 마리의 말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셀은 얼른 눈을 감고,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길 기다리며 생각했다.
‘애초에 이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했어. 고향에서 얌전히 아버지 따라 밀농사나 짓는 거였는데.’ --- p.14

칼을 먼저 찔러놓고 대화를 시작하려 했던 도적들 중 첫 번째 녀석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 두목?”
“이 녀석은 나한테 자기 친구들이 있는 곳을 안내해주고 있었어. 차라리 나를 죽이지, 이놈들아. 그럼 최소한 난 두목한테 뒈지게 얻어터질 걱정은 안 하고 조용히 죽을 수 있었을 텐데.”
카셀은 혀를 쯧쯧 차며 라우레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친절을 베풀어준 음유시인의 시체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라우레.’
활을 든 도적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너…… 어디 소속이야?”
“그건 내가 먼저 물었잖아! 니들 두목 이름 뭐냐니까!”
카셀이 대담하게 나오자, 그들은 도리어 당황했다.
“타이거다.”
카셀은 잽싸게 용병들에게 들은 도적단 두목 이름을 하나 떠올렸다.
“나는 팔콘님의 부하다.”
--- p.39
“누군데 감히 내 앞을 가로막는 거냐?”
기사가 타고 있는 검은 말은 앞발로 바닥을 긁더니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코에서 하얀 연기가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 리제니는 칼을 뽑으며 소리쳤다.
“나는 검은 사자 백작의 셋째 아들, 리제니 덴 뤼미에르다. 정체를 밝혀라.”
“거, 검은 사자 기, 기사단이냐? 그렇다면, 다, 당장 소속을 밝혀라.”
뒤에 있는 시종이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바보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검은 기사는 어느 쪽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커다란 창을 앞으로 세우고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리제니는 뒤늦게 달아날 생각으로 말고삐를 틀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이미 겁에 질려 발이 얼어붙어 버렸다.
검은 말은 두 번의 도약만으로 리제니와의 거리를 반으로 줄이더니 이후 가속도가 붙어 엄청난 빠르기로 달려왔다. 리제니도 마상 전투를 취미로 즐기곤 했지만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기사도 이렇게 빠르게 돌진해 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의식할 수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검은 기사의 창이 리제니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창에 찔린 채로 허공에 떴다. 창끝에 꿰인 리제니는 고통에 혼미한 정신으로 검은 기사의 투구를 바라보았다. 투구 안으로 눈이나 입은 보이지 않았고 암흑만이 가득했다.
검은 기사가 창을 세게 털자,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리제니의 몸이 바닥에 둔탁하게 떨어졌다.
두 시종은 몸이 굳어 달아나지도 못하고, 입만 뻥긋거렸다. 골목 어딘가에서 메아리처럼 여러 사람의 비명이 들렸다.
리제니는 바닥을 기어서라도 달아나려 했으나 두 걸음만큼도 움직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검은 기사는 죽은 리제니의 등에 창을 꽂았다. 그의 몸은 조금도 반응이 없었으나 검은 기사는 한 번 더 창을 찔러 넣었다.
검은 기사는 두 시종이 달아나는 모습을 보고도 내버려 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무도 감히 성을 빠져나가는 검은 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못했다.
--- p.26
카셀은 가정에 가정을 더한 생각을 이어가다가 쉐이든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창을 짚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하얀 늑대들을 상징하는 모든 단어를 함축시켜놓은 것처럼 멋있었다.
‘누가 봐도 두 명의 하얀 늑대들이 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카셀은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그만 내려가고 싶었다.
“이게 우리의 전투라면 좋겠군. 귀족들의 알력 싸움이 아니라 이 도시 사람들의 목숨을 내건 치열한 전투라면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나가서 닥치는 대로 싸우면 되잖아.”
게랄드가 말했다.
“멧돼지처럼 돌진이라도 하려고?”
쉐이든이 농담처럼 물었다.
“성문을 열어 버리는 거야. 그리고 문 앞에 내가 서 있는 거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할 수 있어!”
“그런 무모한 짓은 뭐 하러 해?”
“그런 게 영웅이니까.”
“죽으면 영웅이 무슨 소용인가?”
“누가 죽는대?”
“그런 짓 하면 보통 죽지.”
“난 안 죽으니까 괜찮아.”
“죽을 거다.”
“안 죽는다니까!”
“죽어.”
둘은 엄청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호기 넘치는 철없는 소년들의 대화가 아니었다. 진짜로 그럴 수 있는 실력을 바탕으로 하는 얘기였으니까. --- p.18

“당신이 아무리 죽음을 되살리는 마법을 쓴다 해도, 영원히 되살아나는 시체들을 조종한다 해도…….”
두려움 없는 카셀의 눈빛과 검은 연기를 흘리는 뤼미에르의 눈빛이 서로 부딪쳤다. 카셀은 뿌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입을 다물었다가 떼며 말했다.
“……하얀 늑대들의 이빨을 보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건 하얀 늑대뿐이다, 뤼미에르.”
검은 기사는 카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허세에 거짓말뿐이구나, 카셀 노이. 루우룬의 농부에 불과한 네 놈이 무슨 하얀 늑대의 이빨이냐? 네 모든 게 가짜다!”
“한땐 농부였고, 한땐 가짜였지만 더는 아니다. 한땐 거짓말로 날 가렸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없다.”
카셀의 목소리는 검은 기사의 음산한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나는 하얀 늑대들의 캡틴, 카셀 울프다!”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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