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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 발행일 | 2018년 08월 07일 |
|---|---|
| 쪽수, 무게, 크기 | 110쪽 | 144g | 114*185*20mm |
| ISBN13 | 9791195872671 |
| ISBN10 | 1195872674 |
마음의 서술어
서현범 저
|
별빛들
|
2018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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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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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지나고 나면
눈이 될 줄 알았다
닿고 나면
쌓일 줄 알았다
겨울은 당연히 추우니까
기온은 영하니까
어는점을 지나
대기권에 닿고 나면
눈일 줄 알았다
너무 무거워
더는 못 견뎌
쏟아낸 것들
눈 되어 차곡차곡 쌓이면
밟히거나 녹아져도
일단은 보기 좋으니까
눈이길 바랐다
이렇게 따듯할 줄 알았나
지나고 나서 녹을 줄 알았나
닿고 나서 철썩
부서질 줄 알았나
터벅터벅
어디다가 힘을 다 썼는지
걸을 힘이 없다
온 힘을 빼고 걷는 나를
지탱하는 아스팔트
새삼 고맙다
터벅터벅 내 발소리
나를 타박하는 것 같아서
터벅터벅 내 발소리
발에서 나는 게 아니라서
발에서 나는 터벅 소리
아스팔트가 받쳐주는데
딴 데서 나는 터벅 소리
나만 듣는 거 같아서
갑자기 북받쳐서
마음의 서술어
마음은
왜 하필
쓰다를 서술어로 취했을까
소모품인 걸까, 마음은
다 쓰면 버려질까, 내 마음은
돛단배
내 안에 수로를 따라
유영하는 돛단배
상류부터 하류까지
하루에도 수십번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어디 하나 빠짐없이
자적하는 돛단배
사공이시여
당신도 사납금을 내시나요
어차피 피뢰침은 맨 위에
피뢰침은 참 뻔뻔하게도
낙뢰를 받아내는 주제에
피(避)를 이름으로 취하는구나.
아차 피뢰침은 뻔뻔한 게 아니구나.
피뢰침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고
우리의 이름이구나.
피뢰침은 피뢰(避雷)하지 않는구나
우리로 피뢰하게 하는구나
아아 피뢰침은 참 다정하구나
어차피 맨 위에는 피뢰침 있는데
맨 아래 우리는 피할 것도 없으면서
땅만 보고 걷는구나
아아 우리는 참 뻔뻔하구나
누룩
멋진 술을 빚고 싶었다.
누룩을 잘 띄어야만 멋져질 수 있는데
누룩만으론 멋져질 수 없었다.
우리 마음 서로 발효되어
적당히 달고 적당히 쓰길 바랐다.
어느 날은 곰팡이가 일었다.
그게 꼴 보기 싫어 모두 걷어냈다.
깨끗하고 싶었다. 다투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고
좀 덜 솔직하더라도
좀 더 깔끔하고 싶었다.
덜 솔직하여서, 너무 깔끔하여서
충분히 따듯하게 데우지 못한 마음엔
남은 말과 마음이 뜨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그저 기다리면 되리라.
시간이 누룩을 띄우고 술을 빚으리라.
우리 서로 불안함을 표하지 않고
시계만 바라보자. 달력만 바라보자.
발효에는 성공했다.
다만 악취가 날 뿐.
썩어지고 썩어졌다.
쓴맛만 남을 뿐.
우리에게 발효이던 것을
사람들은 부패라 불렀다.
누룩 띄운 줄 알았는데
찌꺼기만 가라앉았다.
지나고 나면
눈이 될 줄 알았다
닿고 나면
쌓일 줄 알았다
겨울은 당연히 추우니까
기온은 영하니까
어는점을 지나
대기권에 닿고 나면
눈일 줄 알았다
너무 무거워
더는 못 견뎌
쏟아낸 것들
눈 되어 차곡차곡 쌓이면
밟히거나 녹아져도
일단은 보기 좋으니까
눈이길 바랐다
이렇게 따듯할 줄 알았나
지나고 나서 녹을 줄 알았나
닿고 나서 철썩
부서질 줄 알았나
터벅터벅
어디다가 힘을 다 썼는지
걸을 힘이 없다
온 힘을 빼고 걷는 나를
지탱하는 아스팔트
새삼 고맙다
터벅터벅 내 발소리
나를 타박하는 것 같아서
터벅터벅 내 발소리
발에서 나는 게 아니라서
발에서 나는 터벅 소리
아스팔트가 받쳐주는데
딴 데서 나는 터벅 소리
나만 듣는 거 같아서
갑자기 북받쳐서
마음의 서술어
마음은
왜 하필
쓰다를 서술어로 취했을까
소모품인 걸까, 마음은
다 쓰면 버려질까, 내 마음은
돛단배
내 안에 수로를 따라
유영하는 돛단배
상류부터 하류까지
하루에도 수십번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어디 하나 빠짐없이
자적하는 돛단배
사공이시여
당신도 사납금을 내시나요
어차피 피뢰침은 맨 위에
피뢰침은 참 뻔뻔하게도
낙뢰를 받아내는 주제에
피(避)를 이름으로 취하는구나.
아차 피뢰침은 뻔뻔한 게 아니구나.
피뢰침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고
우리의 이름이구나.
피뢰침은 피뢰(避雷)하지 않는구나
우리로 피뢰하게 하는구나
아아 피뢰침은 참 다정하구나
어차피 맨 위에는 피뢰침 있는데
맨 아래 우리는 피할 것도 없으면서
땅만 보고 걷는구나
아아 우리는 참 뻔뻔하구나
누룩
멋진 술을 빚고 싶었다.
누룩을 잘 띄어야만 멋져질 수 있는데
누룩만으론 멋져질 수 없었다.
우리 마음 서로 발효되어
적당히 달고 적당히 쓰길 바랐다.
어느 날은 곰팡이가 일었다.
그게 꼴 보기 싫어 모두 걷어냈다.
깨끗하고 싶었다. 다투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고
좀 덜 솔직하더라도
좀 더 깔끔하고 싶었다.
덜 솔직하여서, 너무 깔끔하여서
충분히 따듯하게 데우지 못한 마음엔
남은 말과 마음이 뜨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그저 기다리면 되리라.
시간이 누룩을 띄우고 술을 빚으리라.
우리 서로 불안함을 표하지 않고
시계만 바라보자. 달력만 바라보자.
발효에는 성공했다.
다만 악취가 날 뿐.
썩어지고 썩어졌다.
쓴맛만 남을 뿐.
우리에게 발효이던 것을
사람들은 부패라 불렀다.
누룩 띄운 줄 알았는데
찌꺼기만 가라앉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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