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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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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랑

[ EPUB ]
이윤미 | 가하 | 2012년 02월 0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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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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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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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0.95MB ?
ISBN13 978896647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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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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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명아, 군명아.”
“왜요”
“너는 아비를 염라대왕 앞으로 끌어 앉힐 참이냐? 솔직히 말해봐라, 아비냐, 대장이냐?”
“뭐래.”
털보 장한, 구태가 커다란 몸집을 비비 꼬며 제 딸, 군명에게 물었다. 하지만 군명은 하얀 손가락으로 거침없이 귀를 후벼 팔 뿐이었다.
“그래도 아비지?”
“떽!”
은근히 웃으며 물어오는 구태의 말에 군명이 펄쩍 뛰었다. 말 같은 소리를 해야 상대를 하지.
“아비, 나를 모르오?”
“대장이냐?”
“왜 입 아프게 매번 확인을 해?”
얄궂은 대답에 구태가 솥뚜껑 저리 갈 만큼 두툼한 손을 들어 올려 군명의 머리 위에서 세차게 휘저었다. 바람이 휙 하니 거세게 지나가자 군명이 다시금 구태를 올려봤다.
“말 할까?”
“아니. 잘못했다.”
군명의 작은 얼굴에 개구진 웃음이 흘렀다. 스물 하나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앳된 얼굴이다. 크고 동그란 두 눈은 생동감으로 물결쳤고 입가에는 습관인 듯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구태는 속으로 매정하다, 못됐다, 웅얼거리면서도 그런 딸이되 딸이 아닌 군명의 작은 머리통을 사랑스러운 듯 내려 보았다. 정착하는 곳 없이, 뿌리 없이 이리저리 떠밀리고 떠내려 오는 삶 속에서 이다지도 잘 자라주었으니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눈가에 어리는 눈물을 군명 몰래 소맷부리로 훔친 구태가 목을 가다듬었다.
“큼큼! 그래서 뭘 하려고 한 거야?”
“말용 오라버니가 촐싹대기에, 내 새총으로 따끔하게 똥 침 좀 놔주려 그랬어.”
“어떻게 촐싹댔기에?”
갸름한 얼굴 아래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골이 난 게 분명했다. 속으로 웃음을 삼킨 구태가 소리를 냈다.
“대장?”
“아, 됐소!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아? 아비가 그래서 여태 장가를 못 간 거외다!”
갑자기 성을 낸 군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탈탈 털어내자 그 흙먼지가 모다 구태의 얼굴 위로 흩날렸다.
“웁! 퉤! 캬악!”
구태가 부산스럽게 몸을 뒤채자 군명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새총에 작은 돌멩이를 겨냥해 구태의 건장한 등을 향해 조준했다. 팽팽히 당겨진 줄을 놓는 동시에 딱, 소리가 신명나게 울렸다.
“악!”
구태가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자 군명이 한 손으로 눈을 찢고 입 안에서 앙증맞은 혀를 빼물었다.
“약 오르지!”
구태가 분을 못 참고 나무에 기대 세워 놓은 당파로 손을 가져가자 군명은 뒤도 안 보고 풀숲을 훌쩍 넘어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막사 입구에서 발을 멈춘 구태가 분한 듯 땅 위를 당파 끝머리로 쿵쿵, 울렸다.
막사 안에 들어가 그의 성질대로 군명에게 화를 냈다가는 대장도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딸을 키운 건지 왈짜패를 키운 건지 모르겠다. 매번 당하고 사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얼마 안 있으면 기억에서도 깨끗이 지워질 건 뻔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데려다 키우면서도 치마 한번 입은 적 없이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바지를 입고, 산이고 들이고 강이고 바다고 뛰다니 던 놈이다. 이제는 계집처럼 좀 입어보자 해도 치마는 싫다며 도망만 다닌다. 저것을 어느 세월에 시집보내 출가를 시킬지.
그가 살아온 결코 짧지 않은 세월 중, 인생 최대라 할 만한 두통을 동반하게 하는 군명 때문에 구태는 속이 다 쓰릴 지경이었다.
눈을 돌리면 노름판에 끼어 사기도박을 치고, 저잣거리 왈자 싸움에 내기를 주동하는가 하면, 새총 갖고 사람 골리기도 일쑤다.
그런 왈패 군명이 유일하게 여인마냥 조신해지는 곳은 한 사내 앞에서 뿐이었다. 막사 너머를 보는 구태의 눈이 염려로 깊어졌다.
그리 쳐다보다가는 목이 부러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 왈패는 그만둘 줄을 모른다. 제 맘에 든 것은 지독하게도 그 연이 끊어질 때까지는 놓지 않고 마냥 견뎌내는 성미라 제 숨이 끊어져야 그를 보는 것을 그만둘 테다.
구태로서는 소중한 딸이 그러다 파삭, 부서져 내리기 전에 다른 연분이 나타나 군명을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군명을 유일하게 계집으로 만드는 그 사내는 하늘이 무너져도 군명을 계집으로 보아주지 않으니, 그것이 바람직할 터였다.

“대장!”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 온 군명이 생글생글 웃으며 서탁 앞에 앉아 있는 무영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만 보아도 숨 가쁘게 달음질치는 가슴인지라 떨림이 홍조로 번져갔다.
명경과 같이 맑은 눈이 정순했고, 천산마냥 높은 코가 남자다움을 더했으며 계집마냥 붉은 입술이 색스러웠다. 또한 일어서면 육척을 훌쩍 넘는 키가 훤칠했고 온몸에 찹쌀마냥 달라붙은 탄탄한 근육은 누구보다도 잘났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칼은 먹을 찍어 놓은 듯, 검은 눈동자와 잘 어울렸으며 부드러운 곡선으로 깎아내린 얼굴 또한 관옥 같았다.
무영은 막사로 뛰어든 그녀를 흘깃 보고는 서탁 위캷 다시 눈을 돌렸다.
“뭐 해요?”
군명이 서탁으로 다가가며 묻자 무영이 눈을 들었다.
“좋아해요, 대장.”
“뜬금없는 녀석.”
관옥 같은 얼굴 위에 미소가 부드럽게 떠올랐다. 언제나처럼 그 말을 농으로 되돌린 무영은 서책을 접어 서탁 밑으로 내려놓았다.
무영은 아무리 한 식구라도 그의 개인적인 일은 타인으로부터 철저히 차단했다. 그 분명한 선을 긋는 태도에 심술이 난 군명이 입술을 뾰족하게 비죽였다.
“정말인데요?”
“그래, 구태도 좋아하겠지?”
군명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네, 말용이도, 장예도, 미려, 경운, 소요, 마루 모두 좋아요.”
그것보다 대장을 훨씬 많이 좋아해요.
속말로 뱉어놓은 마음이 벌써 9년이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가 불구덩이에서 자신을 번쩍 들어 올려 안았을 때부터 그녀에겐 그 뿐이었다. 군명은 그녀답지 않게 두 손가락을 얽어 비비꼬았다. 구태가 보았다면 꼴에 부끄러움을 탄다며 배꼽을 잡고 비웃었을 행태였다.
“용건이라도 있는 거냐?”
“네? 아니요…….”
“또 무슨 말썽을 부린 거냐?”
“대장도, 참. 제가 애인가요, 뭐.”
군명은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무영을 살폈다. 저를 보고 있되 서탁 위에 펼쳐진 종이에서 손을 떼지 않는 걸 보니 궁에서 온 서신인 듯싶었다. 조금 전, 막사 위를 빙빙 돌던 매 한 마리가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홍라국이에요?”
군명이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리자 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에 닿을까 말까 한 머리를 한 손으로 슥슥 문질렀다. 그러자 빨개진 군명의 얼굴 위로 배시시 웃음이 떠올랐다.
“대장, 아비를 불러 올까요?”
“그 얼굴 좀 해봐라.”
“네?”
무영이 갑작스레 군명의 얼굴을 마주하며 부탁해 오자 그녀의 작은 머리통이 모로 기울었다.
“내가 화났다, 할 때마다 네가 했던 그 괴상한 얼굴 말이야.”
“대장, 저도 시집 갈 나이에요. 언제까지 그런…….”
“그래서, 싫으냐?”
입을 꼭 다문 군명이 미미한 웃음기가 스며든 무영의 눈을 바라봤다. 평소 그가 잘 웃기는 한다. 하지만 그 웃음이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 껍데기마냥 공허해 보이는 것이 빈번한지라, 그를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랴 싶었다.
군명은 결국 두 손을 들어 올려 양 뺨의 살을 밀어올리고 두 눈을 가운데로 모았다. 그리고는 혀를 빼 물어 입을 작게 오므렸다.
“하하, 역시 걸작이다, 녀석. 네가 사내아이가 아닌 것이 아쉽구나.”
눈앞에서 햇살을 머금은 듯 하얗게 부서지는 얼굴에 군명 역시 따라 웃었다. 무영의 모양 좋은 입술이 둥근 호선을 그리며 휘어지자 그에 따라 눈가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그 얼굴을 만져보고 싶어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내리누르며 군명이 머리를 긁적였다.
“참 멋진 사내가 아니겠느냐, 누가 너를 보고 계집이라 하겠느냐?”
웃음을 삼키며 저를 보는 검은 눈동자에 군명은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 생글생글 웃어 보이며 습관처럼 입술을 삐죽였다.
“어느 모로 보나 이리 어여쁜 여인을 어찌 사내라 하십니까?”
“됐다, 그 모양을 해가지고서는.”
“……제 모양이 뭐요? 그래도 시전에 가면 사내들이 저 보느라 목이 막 팩팩, 꺾인다고요!”
“호, 거 보도 듣도 못한 괴사로구나?”
그가 다시 한 번 거칠게 군명의 머리를 슥슥 훑었다. 헝클어진 머리에도 좋다, 웃은 군명이 막사 밖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대장!”
“응?”
“막사에서 이러지 말고 대장도 마을로 들어가요.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 봐 그래요?”
무영은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그에게 따지는 작은 아우를 보았다. 토끼마냥 사방을 휘젓고 돌아다녀 모두 고개를 내젓게 만드는, 무보단 내 최고 왈패가 그녀였다. 그러나 유난히 그의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마냥 얌전하게 돌변한다. 그 온순함이 귀여워 무영은 몇 번이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게 되었다.
사람 수가 팔십은 능가하는 대 인원이 머무는 곳이 바로 이 대웅산의 한 자락에 만든 작은 촌락이었다. 궁에서 명이 떨어질 때만 소규모의 인원을 차출하여 행동한다. 거의 모든 임무를 주관하는 그로서는 일정한 거처보다 곧 스러질 것 같은 막사가 더 편했다.
“말용 오라비가 임무 나가고 싶다 아주 기를 쓰던데…….”
군명은 무영의 눈치를 살피며 볼을 긁적였다. 말용의 부탁으로 이야기를 꺼내긴 했는데 그 후 처사는 무영의 몫이다. 무영의 입 꼬리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그리 나가고 싶으면 아주 영영 나가게 한다고 해라.”
“에?!”
또 한 번 군명의 머리를 다독인 무영이 돌아섰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군명은 말 한 자락이라도 더 붙이고 싶어 몇 번이나 입을 오물거렸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그리고 뒤 돌아선 무영의 등이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기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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