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소설가와 문화 창작 기획자로 활동했으며 약 5년간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의하였다. 근래에는 만화, 드라마로 제작됐던 ‘대물’을 소설로 발표하고, 『이순신의 반역』을 간행하였다.『사야가 김충선』은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팩션으로, 뉴시스(민영 통신사)와 대구 영남일보에 연재하였던 소설 ‘항왜 김충선’을 엮고, 보충 작업을 거쳐 출간하였다. 저자는 일본의 선봉장으로 참전한 출중한 장수가 단 한 차례의 전투도 치르지 않고 귀화하여 조선의 전쟁을 도왔다는데 커다란 호기심을 품으면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3천 명의 부하와 귀화한 조일인朝日人 김충선이 지키고자 했던 조선의 문화, 사랑, 평화는 무엇이었는지 그 감동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정두현이라고 자신을 밝힌 노인은 거듭 고집을 피웠다. “고맙습니다. 감사히 먹도록 하겠습니다.” 사야가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부하들과 더불어 오랜만에 아침다운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정두현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으음…….” 사야가의 철포대원들에게 졸음이 갑작스럽게 밀려들었다.--- 임진년壬辰年 멸사滅私 中
“이것이… 이 아름다운 도자기가 조선인의 손에서 제조되었다고 합니다. 믿어지십니까? 조선에는 이런 보물이 널려 있다고 합니다.” “기무라 아우, 난 지금 사람의 목숨을 이야기 하고 있네.” “형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겁니까, 이 황홀한 자태가!” “그 어느 것도 사람의 생명보다는 위대하지 않네.” 기무라가 주전자를 탁자 위에 공손히 내려놓았다. “조선의 생명은 그러나 하찮은 것입니다. 그들의 넋이란….”--- 음모의 서막 中
“널 살려야 백만 명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천의 희생이 1만, 1십만도 아니요, 1백만을 구원할 수 있다면 어느 누가 선택하지 않겠느냐.” 사야가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고, 손과 발이 맹렬한 기운에 휘감기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눈에서는 광채가 어른거리고 머릿속에서는 화산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단 한 번도 이런 기분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일본을 배신하고 조선으로 귀화를 결심을 할 때에는 오로지 복수심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에 그냥 몸부림쳤을 뿐이었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이었다. 그렇지만 정도인이 던진 말은 일개 필부의 원한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일종의 사명使命이었다. --- 임진년壬辰年 소용돌이 中
“날 노리는 놈들을 난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그의 살의殺意는 미묘한 분노로 점철되어 친구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서아지의 과거를 알고 있는 해정의 친구들은 잠시 무거운 침묵에 빠져 들었다. --- 간자의 길 中
그러나 유키에는 담담했다. “이화의 운명이, 사야가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우린 알 수 없어. 하지만 그들이 만나게 될 수도…… 혹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을 거야. 난 그 마지막 운명을 시험해 보고 싶었어.”--- 임진년壬辰年 철포사신 中
사야가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총신은 여신의 조각처럼 정교했고, 손잡이에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마오의 눈물(まおの淚). “오빠를 그리워하면서 흘린 눈물로 제조된 총이야.” 마오의 설명에 사야가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애잔해졌다. 자신이 유키에로 인해서 번민할 때도 마오는 오로지 사야가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보냈을 것이었다.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 믿었으나 성인이 된 해정오신의 길은 엇갈린다. 서아지와 유키에는 일본의 초간자(초절정의 간첩)가 되었고, 사야가와 아키라는 조선으로 귀화함으로써 일본의 적이 되었다. 조선으로 귀화한 김충선은 냉정하게 역할을 수행하지만 일본에서의 추억까지 없애 버린 것은 아니다. 김충선은 함께 의병 활동을 하다 인질로 붙잡힌 이화를 찾고자 하나, 금산성 탈환이라는 대의를 위해 본대로 복귀한다. 이때 도인 정두현이 김충선을 위기에서 구해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