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날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진이었다. 아직 그가 자리에 남아 있었다. “착각하지 마. 날 물먹였으니 스스로는 만족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밝혀질 일이었어. 나야말로 내 대신 당신이 나서 줘서 고마울 따름이야.”
“만족? 내가 이 따위 일에 왜 만족을 느껴야 하죠?” 하진의 말을 되받아치는 윤우의 말엔 높낮이가 없었다. 정제되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윤우의 눈빛에 하진은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느낀 건 당신이 참 불쌍하고 한심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이혜정 씨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죠?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도 못하고. 아니, 노력은 해 봤나요? 감당도 못 하는 당신의 사랑놀음에 놀아난 이혜정 씨만 불쌍하게 됐군요.”
“입 닥쳐!” 윤우가 혜정을 들먹이자 하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를 참지 못한 하진이 식탁을 쿵하고 내려치는 바람에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식기들이 우르르 엎어지며 힘없이 깨져 버렸다.
“처신 똑바로 하시죠. 일단 저지르고 누군가 해결해 주길 바라는 그런 유아기적 사고방식으로 아무 상관 없는 사람한테까지 피해 입히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