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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베르씨

랑베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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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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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9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06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902548
ISBN10 893290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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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읽히는 랑베르씨
--- 00/02/01 이희인(heen@ktcf.co.kr)
메뉴판이 잠깐 비춘 뒤 이름 모를 거리의 풍경이 몽타쥬된다. 자세히 보면 거리 한켠에 레스토랑이 있다. 이름하여 피카르 레스토랑. 레스토랑 넓은 홀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며 문 정반대 편에 놓인 카메라는 며칠이고 그 자리에서 레스토랑 안의 풍경을 롱 테이크로 잡아낸다. 카메라는 완고하게 고정되어 있다. 어느 누구의 얼굴이나 특정 사물을 클로즈업하는 일은 없다. 우리의 주인공 랑베르씨의 얼굴조차 관객들은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다. (책 표지에 방긋 웃는 그가 아마 랑베르씨일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이야기란 것도 프레임 안에서 직접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단지 프레임 안의 떠들썩한 잡담들 속에 독자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간신히 감지해낼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란 식당 단골손님인 평범한 샐러리맨 랑베르씨에게 애인이 생기고, 연애가 진행되다가 어떤 이유인지 끝나버린 사건이다. 랑베르씨 연애 사건은 그 전모는커녕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조차 알려지지 않는다. 그저 나름대로 짐작하고 나름대로 상상하고 나름대로 킥킥거릴 뿐이다.

랑베르씨 연애사건으로 축구와 정치에 대한 끊임없는 요설들이 잠시 멈추고 레스토랑의 사내들은 저마다 첫 연애의 기억이나 예전 애인들을 회상하는 드문 기회를 갖게 된다. 썰물이 빠져나간 뒤 드러난 너른 모래사장처럼 하얗고 말간 기억들이다. 그러나 랑베르 씨의 연애가 흐지부지 끝나자 또다시 정치와 축구에 관한 요설들이 하얗고 말간 모래사장을 덮는다. 그새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일어난 것도 같고, 아니라면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상빼의 <랑베르씨>는 대만 후샤오지엔 감독의 영화들이나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같은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초점을 멀리 잡아 피사계 심도를 극대화시킨 딥 포커스의 쇼트에는 많은 정보와 이미지들이 숨어 있다. 그것을 얼마나 즐기는가 하는 것은 독자 개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 영화 쇼트의 '장면 만들기, 장면 꾸미기'라 할 수 있는 미장센의 수사학이 그대로 상빼의 카툰에 차용되고 있는 것이다. (혹은 세트가 고정된 무대에서 '제4의 벽'을 뜯어낸 단막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주인공은 랑베르씨 만이 아니다. 레스토랑 안에 모여든 20여명 가량의 60년대 프랑스 사내들 전부가 주인공이다. 그 넓은 레스토랑 홀 한켠에 곧잘 투덜거리기만 하는 카즈나브씨의 존재나, 서빙을 하는 마담의 자잘하고 다이나믹한 행동, 보일 듯 말 듯 식당 안을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존재 등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도 미장센으로 잡아낸 카툰의 매력이다. 일상성을 담아내는 데 이만한 기법이 또 있을까.

이러한 경험을 상빼가 그린 또 다른 책 <좀머씨 이야기>에서도 즐긴 바 있다. 좀머씨는 늘 그림 한 귀퉁이에 지팡이를 짚고 잰걸음으로 스쳐지나가기만 한다. 그가 그림 전면에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독자의 시선은 줄곧 좀머씨를 쫓고 그의 반쯤만 알려진 이야기에 뭉클한 감동을 받는다. 랑베르씨의 성격과 신분, 그가 벌인 연애 사건을 나름대로 그려보는 독자의 상상은 엉터리일 수도 있지만, 한편 그것은 값진 것이다. 작가가 비워둔 여백을 채워 나가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이다.

상빼는 자신의 카툰 작업을 마치 카메라를 들이대듯 진행시키고 있다. 무덤덤하고 잔잔한 일상을 읽어내는 데 상빼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허위에 가득 찬 뉴욕 사교계의 풍경을 엿보려거든 그의 <뉴욕스케치>를 즐기면 된다. 60년대 프랑스 도시의 풍경은 <랑베르씨>의 고정된 프레임 안에 담겨 있다. 1930년대 청계천변을 담아낸 우리 소설의 걸작 <천변풍경>의 시선도 이들과 비슷한 느낌이었지 싶다.

상빼의 매력은 바로 이런 작품들에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나, <라울 따뷔랭> 같은 캐릭터 위주의 작품들보다는 <뉴욕스케치>, <속 깊은 이성친구> 같은 르포르타주 식 작품에 더 끌린다. <랑베르씨>는 말하자면 이 두 가지 경향을 비슷하게 버무려 놓은 것 같다. 그의 장기인 르포르타주 기법을 위주로 하면서 캐릭터의 묘미도 아울러 담아낸 작품이다. 그렇듯 정갈하다. 산뜻한 단편영화를 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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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는 주방장의 테린과 비프 스튜(혹은 비엔나 식 송아지 요리)가 나온다. 그리고, 화요일인 오늘, 1시 45분이 되었는데도 랑베르는 아직 도착하고 있지 않다. 대단한 랑베르! 그녀석은 진짜 낙천가다.....! 그는 즐겨도 된다. 젊을 땐 즐겨야 한다! 우리 중 누구도 그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을 거다!
--- p.104
우리는 그가 다시 기운을 차리기를 바랐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랑베르는 <그 여자> 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회복할 것이다. 여자들한테 너무 큰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우리는 한 번도 그녀들에게 많은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 p.94
언제나 우리를 열광시키는 건 축구다. 그건 모두들 즐긴다. 축구에 대면 여자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고 지금 역시 그렇다. 축구는 언제나 우리의 삶이었다. 그건 무엇보다도 단결심을 필요로 한다(여자들은 그 단결심이란 걸 이해하지 못한다). 축구란 늘 함께 모여 경기를 벌이는 걸 좋아하는 열한명의 친구들이다. 그건 조금 우리들 같다. 우리도 매일 정오에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월요일이면 프렌치 드레싱의 파 샐러드와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 퐁네프 그리고 쌀과자를 먹고 .... 화요일에는 주방장의 테린과 비프 스튜(혹은 비엔나 식 송아지 요리)가 나온다. 그리고 화요일인 오늘, 1시 45분이 되었는데도 랑베르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대단한 랑베르! 그 녀석은 진짜 낙천가다......! 그는 즐겨도 된다. 젊을 땐 즐겨야 한다! 우리 중 누구도 그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을 거다!
--- pp.98-104
어제는 주방장의 테린, 비프 스튜 혹은 비엔나식 송아지 요리 그리고 제철 야채 샐러드가 나왔다. 화요일이니 당연하다. 화요일의 메뉴는 늘 그랬으니까............... 수요일인 오늘은 레물라드 소스를 끼얹은 셀러리, 백포도주에 절인 고등어 그리고 라팽샤쇠르가 나왔다. 샐러드, 치즈, 몽블랑, 파이등과 더불어. 스요일의 메뉴는 항상 그랬으니까. 하지만 평소와 달랐던 건 랑베르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벌써 한 시 반이 다 되어가는데.... 물론 랑베르의 부재가 눈에 띄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에 부어진 다소간 음험한 질무들에 우리는 자존심으로 맞섰다.
--- p.
수요일인 오늘은 레물라드 소스를 끼얹은 셀러리, 백포도주에 절인 고등어 그리고 라팽샤쇠르가 나왔다. 샐러드, 치즈, 몽블랑, 파이 등과 더불어. 수요일의 메뉴는 항상 그랬으니까. 하지만 평소와 달랐던 건 랑베르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벌써 한 시 반이 다 되어 가는데...물론 랑베르의 부재가 눈에 띄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에 부어진 다소간 음험한 질문들에 우리는 자존심으로 맞섰다.
--- p.12-14
물론 랑베르의 부재가 눈에 띄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에 부어진 다소간 음험한 질문들에 우리는 자존심으로 맞섰다.
--- p.14
랑베르가 우리의 배려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는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질문이나 충고로 그를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걸...
--- p.92
대단항 랑베르. 이젠 그의 차례인 것이다. 우리처럼 그 역시 젊음을 맘껏 누렸으면! - 사실 랑베르가 젊음을 즐기는 것은 잘하는 일이야! 우리역시 그랬잖아! 난 아무런 후회가 없다고.파트리샤와 함께 했던 일을 생각하면... 알지? 내 하아이 여자... - 아냐, 파트리샤는 내 여자였어. 게다가 그 여잔 하와이 여자가 아니라 타이티 여자야!
--- pp. 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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