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를 버텼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드디어 이 무모한 여행을 시작한 지도 일주일째가 된다.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었지만, ‘과연 가능할까?’ 하며 시작했 던 일을 한 걸음씩 해나가고 있다. 조금씩이지만 가까워지고 있다. --- p.61
나는 멈추고 싶었지만, 계속 나아가야 했다. 나아가지 않으면 돌아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더 힘들고 외로울지도 모르지만, 갈 수 있는 만큼 더 가보고 싶었다. 누군가 걱정해주고 조언해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멈춰 서더라도 내 의지로 멈춰서고 싶었다. 그래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길 위에서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그 선택의 순간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p.81
지독한 맞바람이었다. 상대가 마주 보고 화를 내니, 나 또한 화가 났다. 울분에 받쳐있는 얼굴 위로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홀로 이 비바람 속을 걷고 있다는게 너무 서러웠다. 순간 다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날씨가 험악해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고 다시 안나네 집으로 돌아가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버스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악 같은 것이 치고 올라왔다.
‘좋다 한번 불어봐라. 힘껏 밀어내 봐라.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 p.84
고민 끝에 결국 마음 가는대로 하고 말았다. 나중에 보지 않은 걸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힘겹게 마음을, 발걸음을 폭포 쪽으로 돌렸다. 잠시 후 도착한 그곳에서는 거센 비바람과 함께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가 흔들리고 있었다. 과연 엄청나게 물을 뿌려댔다. 덕분에 시야는 엉망이지만, 마주한 폭포는 굉장했다. 거대한 물줄기가 가슴을 관통해 울분을 씻어주는 것만 같았다. 살면서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다. --- p.85
단지 나는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을 뿐이고, 행동했을 뿐이다. 무언가 돌려주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정작 행복해진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건네는 인사에 돌아오는 환한 미소를 보며 가슴 속 깊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길 위에서 행복해졌고, 누군가도 행복하길 바랐다. --- p.93
“이렇게 여행하는 거 너무 힘들지 않아? 주린 배 잡아가면서 걸어다니고, 추운 곳에서 매일 밤 잘 곳을 구해야 하잖아. 가끔은 구걸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스스로 불쌍하거나, 비참한 적은 없었어?”
어떻게 멋스럽게 대답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형이 먼저 멋진 답을 내줬다. “아니다. 괜찮겠다. 어쨌든 전부 네가 선택한 거잖아.”
정말 그랬다. 전부 스스로 선택한 거였다. 배고프고, 춥고, 외로운 것도 전부 내 가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거였다. 스스 로 선택한 것이기에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면 아마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그렇다고 스스로를 원망할 수도 없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여행을 하는 중이다. --- p.119
화장실은 기대 이상의 선택이었다. 일단 화장실 밖으로는 테이블이 있어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전등, 전기도 있고 물까지 나와 씻을 수가 있었다.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을 때는 눈 뜨면 바로 화장실이니 얼마나 편리한가 하고 스스로를 참 많이도 위로했다. 마음을 비우니 멋진 곳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 p.94
“그래. 너 지금 굉장히 빛나 보여.”
‘빛나 보인다고?’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씻지 않아 기름이 번들거리는 게 아니라 행복이 나를 빛나게 한다니. 그녀의 말이 맞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빛나는 시절을 사는 것이었다. 여행이 끝나면 언젠가 이 빛을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에게는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고 소중히 추억하고 싶다. --- p.230
‘무슨 놈의 나라가 이렇게도 따뜻하단 말인가? 내가 전생에 이 나라를 구한 것 도 아닐 텐데.’ --- p.312
아이슬란드어에 가만히 귀 기울였고, 때론 주인공이 되어 나의 여행기를 들려줬다. 나는 혼자 여행하고 있지만 사람이 있으므로 여행은 더 풍요로워지고, 인생은 더 따뜻해짐을 느낀다.
--- 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