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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520g | 135*210*30mm
ISBN13 9791161251257
ISBN10 116125125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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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가자 내리쬐던 햇빛을 잃은 진리부의 수많은 창문들이 요새의 총구멍처럼 흉측해 보였다. 거대한 위용의 피라미드를 보니 겁이 났다. 로켓탄을 수천 개 투하한다 해도 절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한 모양새였다. 다시금 누구를 위해 이 일기를 쓰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위해서? 아니면 과거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상상 속 세대를 위해서? 그의 앞에는 죽음이 아니라 소멸이 놓여 있었다. 이제 곧 이 일기는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고, 그 자신도 증발해 없어질 것이다. 그가 쓴 글들은 오직 사상경찰만 읽을 것이다. 일기를 읽은 그들은 일기장을 완전히 없앨 것이고, 곧 모두의 기억 속에서 그런 일기장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사라질 것이다. 익명으로 끼적인 글 하나eh 살아남지 못할 만큼 전혀 자취를 남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의 세대에 호소할 수 있다는 말인가? --- p.40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에요.”
그가 말했다.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죠.”
줄리아가 의무적으로 따라 말했다.
“너희는 죽은 목숨이다.”
그들 뒤에서 쇳소리가 났다. 둘은 깜짝 놀라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윈스턴은 창자가 얼어붙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줄리아의 눈동자가 흐려지고 얼굴색이 노랗게 변했다. 아직 뺨에 남아 있는 연지 자국이 마치 피부와 분리된 듯 도드라져 보였다.
“너희는 죽은 목숨이다.”
쇳소리가 다시 한번 반복해 말했다.
“그림 뒤에 있었어요.”
줄리아가 속삭였다.
“그렇다, 그림 뒤에 있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동작 그만. 다시 명령할 때까지 꼼짝 마라.”
그날이 왔다.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둘은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망쳐야 한다든가, 너무 늦기 전에 이 집을 빠져나가야 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벽에서 흘러나오는 쇳소리에 불복종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문이 잠기는 듯 찰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림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 뒤에 숨겨져 있던 텔레스크린이 드러났다. --- p.295

“이제 내가 손가락을 펴보겠네. 자네는 아까 다섯 개의 손가락을 봤었지. 기억하나?”
“네, 기억합니다.”
오브라이언은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숨기고 나머지 손가락을 펴보였다.
“여기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보이나?”
“네, 그렇습니다.”
그는 순간이었지만 그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다섯 개의 손가락을 보았다. 손가락은 틀림없이 다섯 개였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까 느꼈던 공포와 증오, 당혹감도 다시 몰려왔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 빈 곳을 채우고 절대적인 진리가 된 순간이 분명 있었다. 얼마 동안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30초쯤 되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필요하다면 2 더하기 2는 3 혹은 5가 될 수 있었다. 그 순간은 오브라이언이 손을 내리기도 전에 사라졌다. 다시 그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기억은 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상태에서도 과거의 특정 시점에서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듯, 그도 그 느낌을 기억했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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